인공지능 시대 수학은 무엇을 가르쳐야하는가?

이제 계산력보다 사고력을 길러야 한다

등록 2020.10.28 18:10수정 2020.10.2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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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부터 과학고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햇수로 7년째라 일반고보다 과학고 상황이 내겐 더 익숙하다. 오늘부터 2학기 1회고사가 시작되었다. 잔뜩 긴장한 아이들이 50분 내내 시험 문제와 씨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50분 문제 풀이하기엔 짧고 감독하기엔 긴 시간이다. 감독하는 시간 내내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오늘은 시험 시간에 대하여 적어 본다.

과학고 수학 시험

고등학교는 수업 시간과 마찬가지로 시험 시간도 50분으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1학기에 담당했던 3학년 (AP)미적분학은 시험 시간이 120분이었다. 대학과목 선수이수(AP) 과정인 까닭이다. 시험 시간이 길면 문제도 어려워지기 때문에 마찬가지라 여길 수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다. 시간이 길면 시간에 쫓기며 빠르게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 수능 시험도 120분이지만 워낙 어려운 문제가 많아서 기계처럼 빠르게 계산하는 능력이 필요하지만 미적분학은 그렇지 않도록 문제를 출제했다. 시간이 충분해서 좋다고 말하는 학생이 많았다.

특목고인 우리 학교 수학 시험은 시간을 두고 깊이 생각해야 하는 문제가 많아 아이들이 수학 시험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수학 교사 협의회를 통해 다른 학년도 시험 시간을 더 주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서 시험 문제를 10문제 내외로 줄이고 객관식을 없앴다. 여전히 학생들은 짧은 시험 시간이 부담스럽지만 적어도 기계처럼 계산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뻔한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훈련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학 선생으로선 계산이 너무 느린 아이를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들지만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다른 학교로 옮기면 이렇게 적은 문제로 평가하기 힘들 것이다. 같은 학년을 가르치는 다른 교사와 공동 출제를 해야 하는데 마음이 딱 맞아 떨어지기 어렵고 학교마다 성적관리지침으로 정기 고사 문항 수를 정해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침을 개정할 수도 있지만 감독을 맡아 줄 다른 교사들까지 설득하는 일을 쉽지 않은 일이다.

일반고 수학 시험

올해 고등학생이 된 아들은 일반고에 다닌다. 어제 수학 시험을 보았다. 수학엔 왕도만 없는 것이 아니라 유전도 없다. 지난 학기 생각보다 아주 낮은 점수를 받았던 터라 이번 학기엔 가끔 생각날 때마다 같이 수학 문제를 풀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조심스럽게 수학 시험 어땠냐고 물으니 2문제만 못 풀고 다 풀었다고 한다. 궁금한 마음에 시험지를 받아서 확인을 했다. 2문제 모두 거의 다 풀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마무리를 못한 것이었다. 몇 번으로 찍었냐고 물었더니 그냥 빈칸으로 냈다고 한다. 아 이런 고지식함을 닮다니 이건 유전이다. 다음엔 모르면 그냥 3번으로 찍으라는 도움말 아닌 도움말을 건넸다.


사실 수학은 단위수가 높아서 한 한기에 상당히 많은 내용을 배운다. 어쩌면 2번밖에 없는 정기 고사에서 10문제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등급제 때문에 교사들은 '줄 세우기'를 위한 변별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지침이 아니더라도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풀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시험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을 반대하는 교사가 많다고 생각한다.
 

픽사베이 pixabay에서 ⓒ Gerd Altmann

  
수학 시험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가?

요즘 수학 문제를 찍으면 풀이를 찾아 주는 인공지능인 '콴다'라는 애플리케이션이 있다. 초등 중등은 물론 대학 과정에 있는 문제도 검색이 된다. 전문직 가운데 으뜸인 의사도 프로그램 앞에서 클릭 몇 번으로 처방전을 발급하는 세상이다. 과연 이런 세상에 기계처럼 빠르게 계산하는 능력이 쓸모가 있을까? 어쩌면 문제 해결을 위한 답이 어디에 있는지 빠르게 찾아내는 능력이 더 쓸모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주 먼 옛날 최첨단 계산 도구인 주판이 있어서 계산에 능했던 동양에 비해 서양은 계산에 매우 취약했다. 로마 숫자와 아라비아 숫자를 비교하면 서양은 계산으로 뭔가를 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계산보다 공리를 바탕으로 한 증명에 몰두했던 서양의 수학이 오히려 더 높은 성취를 이룬 것은 아이러니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단순 영역에선 인간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인공지능이 현실이 된 오늘날 수학은 오히려 그리스 시대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타고라스나 유클리드처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 앞으로 수학 교육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말

일반고에서 우리 학교처럼 객관식이 없는 문제로 평가하기는 매우 어렵다. 위에 적은대로 공동 출제와 성적관리지침으로 제한 받는 까닭도 있지만 채점이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학급 인원이 20명에 불과하고 3개 반을 교사 2명이 나누어 지도하는 우리 학교와 달리 교사 한 명이 40명에 가까운 학급을 서너 개 맡고 있는 일반고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대학에 진학하면 계산력보다 사고력을 기르는 문제로 평가받고 (AP)미적분학까지 배운 과학고 학생이 평범한 일반고 학생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하루 빨리 학급 당 인원을 20명 이하로 줄여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더해진다.
덧붙이는 글 블로그(https://suhak.tistory.com/1187)에도 같이 올립니다.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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