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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이라서 털어놨는데 알고 보니 수사관

[피해자 구술, 수상한 섬 수상한 이야기 6] 테스트

등록 2020.11.29 12:08수정 2020.11.2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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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시절에는 누구든 간첩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제주에는 공권력의 고문과 폭력에 간첩으로 조작된 사람들이 많다. 제주에 사는 조작간첩 피해자의 피해 사실과 그들의 삶과 기억을 기록해 현대사의 비극에 직면하고 이를 통해 파괴된 공동체와 인권의 회복을 돕고자 한다. [편집자말]
간첩을 만드는 행위는 간단하지가 않다. 간첩 행위뿐만 아니라 간첩 행위를 공모해야 하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그 조직의 담당자가 상부선이고 주범인 것이다. 

따라서 간첩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지령'을 전달 받고 탐지한 '정보'를 전달할 상부선이 필요하다. 요즘처럼 휴대폰이나 인터넷이 발달한 시절이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을 대면해 정보를 주고받는 일은 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정보를 직접 사람끼리 주고받아야 하므로 반드시 간첩 행위에는 상부선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간첩으로 조작되는 사람으로서는 이것 또한 막막한 일 중 하나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지도원이나 상부선을 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조사를 받는 동안 피해자가 이러한 조사에 대해 막막해하며 답을 하지 못할수록 고문은 점점 더 심해졌고, 수사기관에 잡혀있는 시간은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상부선, 지도원을 대라고 할 때 말하지 못하면 고문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 이름 전체를 지어내지 못하는 경우 '성명불상자', 그나마 성씨라도 대면 그냥 '김 명불상자', '박 모' 등과 같이 특정되지 않는 가상의 이름들이 진술서에 기재된다.

그리고 그렇게 조서에 기재된 가상의 인물들은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인정되어 검찰의 공소장과 법원의 판결문에 그대로 인용되게 된다. 이러한 '불상자'들은 결국 가상의 인물이며 이들의 존재에 대해 재심 과정에서 수사기관 역시 입증하지 못한다.

완벽한 '소설'의 탄생
  

105일간 불법감금되었던 제주경찰 자리를 탁본한 강희철 ⓒ 한톨

 
강희철의 구술 = "내가 대공분실에 105일 있었는데 경찰 유치장에서는 잠만 자고 나머진 시간에는 대공분실에 가서 조사받고 고문 받았지. 처음에 잡혀갈 때는 길어야 한 달이면 조사가 끝나겠지 했어. 옛날에 일본에서 불법 체류자로 잡혀서 강제송환될 때 부산에 도착해서 부산 보안사에서 조사받은 적이 있거든. 거기서도 전기고문까지 받으면서 조사를 받았는데 그때도 한 달 정도 조사받고 풀려난 적이 있어서 경찰 조사받을 때도 한 달이면 끝나겠지 했던 거지.

그런데 두 달이 넘고 석 달이 넘어가니까 '아 여기서는 죽어서나 나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105일이라는 날짜는 잊을 수가 없어. 정말 하루가 천년 같았거든. 언제 나갈지 모르는데 얼마나 막막해. 군대에 가더라도 훈련소에서 몇 주 있는 것도 하루가 천년 같은데 고문 받으면서 매일 맞는 생활을 하면 오죽하겠어. 지금도 자다가 악몽을 꿔.

처음 끌려가서 3일 동안은 물 한 모금, 밥 한 숟가락도 안 주고 잠도 안 재웠어. 잠 못 자는 게 그렇게 고통스럽더라고. 거기서 자도 몇 시간 안 재워. 길어야 세 시간. 그렇게 고문을 받다가 교도소로 갔는데 너무 편한 거야. 왜냐면 그 사람들(고문하던 수사관) 얼굴 안 보고 잠을 잘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때 교도소 들어가던 첫날 단잠을 잤다니까. 맨날 불안 속에서 세뇌를 당하는 조사를 받았으니까. 대공분실에서는 달력도 없고 시계도 없으니까 며칠 몇 시 이런 거 모르고 밝으면 낮이구나, 어두우면 밤이구나, 이러면서 시간이 흐르는 줄 아는 거야."


고문의 시간은 기약이 없다.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난다고 정해진 것이 없다. 누군지 모를 그저 수사기관의 저 높은 사람이 그만하면 사건 내용이 완성됐으니 종결하라는 지시가 내려와야 그 고통의 시간이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가는 '송치' 시일이 다가오면 수사가 종결되는 것이고, 그때서야 고문의 흔적을 없애는 일도 한다.

다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타박상 약이나 소고기를 붙이기도 하고 목욕이나 면도도 한다. 그렇게 고문이 멈추기 위해서는 수사 책임자가 만족할 만한 완벽한 '소설'을 작성해야 한다. 비록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간첩 생활이지만, 내가 간첩으로서 직접 경험한 것처럼 숙지하고 익혀야 한다. 그러려면 완벽하게 내 경험으로 일체화시켜야 하는데 이것이 또 보통 일이 아니다.

수사관들은 처음에 피해자들로부터 허위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을 가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완벽한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연극배우처럼 극본을 외우듯, 허위 조작된 수사내용을 외우게 하기 위해 고문을 가했다. 범죄를 저지른 시간 순서, 내용, 이름, 숫자 등과 같은 수사 내용의 모든 것을 완벽히 외워야 한다. 만약 하나라도 틀리면 모진 고문을 당한 후 처음부터 다시 외워야 한다.

그리고 한 번 외운 내용은 어디에 가더라도 달라져서는 안 된다. 검사 앞에서든, 판사 앞에서든, 그의 가족 앞에서든 그는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 사실을 자신이 직접 저지른 범죄자인 것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고통보다 더한 고문이 그를 기다린다.
  

고문당했던 장소에서 당시를 설명하는 강광보 ⓒ 한톨

 
강희철의 구술 = "북한이란 데를 안 가봤는데 2주 동안 간 걸로 됐어요. 조사기록을 다 외웠어요. 검사한테 가면 틀리면 안 되니까 연도 별로 외우라 하더라고. 고재우 실장이라고 죽어버렸는데 그 사람이 테스트 하는 거예요. 연도 별, 날짜 별로. 나중에 고재우가 검사한테 이 걸 딱 주면서 이 사람이 쓴 거라고. 그때 담당 검사가 휴가를 갔는가 다른 검사가 조사를 했는데 내가 조작됐다고 해도 무시해 버리더라고. 자기는 담당검사가 아니라면서."

강광보의 구술 = "오죽했으면 내가 교도소 들어가니까 보안과라고 써졌더라고. 그걸 보고 '야 여기도 보안대가 와 있구나' 해가지고 교도관하고도 내가 말을 안 했다니까. 나를 고문한 보안대 놈들하고 같은 놈들인 줄 알아가지고. 보안대에서의 협박이 끝까지 따라다녀. 실제로 내가 교도소에 있을 때 나 고문했던 수사관이 두 번이나 접견 왔더라고. 그래 가지고 제주에서 1심 끝나고 내가 억울해서 항소해 가지고 광주고등법원으로 가려고 완도까지 가는 배 타 가지고 광주교도소로 간 일이 있어요. 아침 6시에 일반 재소자와 함께 완도로 가는 배에 올라타니 날 조사했던 보안대 수사관 세 놈들이 또 나타나더라고. 그러니까 광주 가도 지금까지 한 것처럼 해라 이 식이야. 위협을 주더라고." 


대통령이 와서 도와준다 해도 믿지 못해
  

옛 제주보안대가 있던 마을에 붙어있는 '범죄없는 마을' 표식 ⓒ 변상철

 
기억의 훈련은 쉬지 않고 계속된다. 피해자는 검찰이나 법원에 가서, 검사나 판사를 만나더라도 수사기관에서 달달 외운 내용대로 이야기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몇 번의 테스트를 거치기도 한다.

그렇게 고문을 받으며 외우는 중에 조사실로 찾아오는 의문의 외부인이 있었다. 때로는 변호인으로, 때로는 검사로, 심지어 시민단체에서 찾아 온 활동가라며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진실을 이야기 해달라는 이 수상한 외부인들은 사실 수사관이었다. 조력자로 위장한 수사관들이 나타나 '당신을 도와주러 왔다', '여기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고통당한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에게 모든 진실을 이야기 해달라'고 회유한다.

피해자는 정말 자신을 도와주러 온 사람으로 생각하고 수사 받는 동안 당했던 고문 내용과 허위자백하게 된 과정을 털어놓게 된다. 피해자가 진실을 말하는 순간 모든 수사의 과정은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다시 시작되는 고문의 시간을 다시 견뎌내고 나면, 또다시 누군가에 의해 검증을 받게 된다. 그러한 과정을 몇 번 거치다 보면 피해자는 대통령이 와서 도와준다 해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가 가는 어느 곳이라도 구타하고 고문했던 수사관들이 출현한다. 수사관을 볼 때마다 피해자는 언제라도 다시 보안대로 연행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결국 그는 검찰, 법원 어디에서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간첩이 된다.

강광보 = "그놈들도 위에서 시키니까 할 수 없이 하긴 했는데, 너무 무자비하게 하더라고. 고문도 여러 가지 받다보니까 요령이 생기더라고. 가만있으며 당하는 거야. 그럼 이제는 예를 들어 몽둥이로 때리려고 하면 그놈을 안아버리는 거야. 그럼 자기도 힘드니까 때리지 않고 나를 놓더라고.

내가 그냥 허위진술을 쓰면 처음부터 이렇게 쓰면 당신도 편하고 우리도 편할 텐데...왜 이렇게 안 썼느냐고. 전기고문 할 때는 하도 사고가 나니까 군의관이 와가지고 신체 검진을 하더라고. 혈압도 재고 청진기로 심장박동을 재고 이상 없다고 하니까 옷 벗으라 해서 전기고문 들어가는데. 아휴 힘들어.

지금도 깜짝깜짝 놀라는 버릇이 있어. 하도 이놈들이 갑자기 와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고문을 하니까. 자다가도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 버릇이 있어. 정말 교도소 가니까 조금 안심이 되더라고 그 사람들 얼굴을 안 보고 말을 안 들으니까. 그런데도 교도소에 두 번이나 와가지고 나를 보고 가니까 이놈들이 나를 어디까지 감시를 하는가. 그러니까 어디 가서 함부로 말을 못 하겠더라고 또 잡아갈까 봐. 그렇게 불안하더라고.

내가 보안대 수사관들 보고 그랬거든. 당신들이 나를 의심해서 조사하는 건 이해를 하겠으나 당신들이 알다시피 나는 일본에서 오면서 자술서를 썼고 오자마자 중앙정보부에서 3일간 조사 받고 나오고 나온 후에 경찰서에서 60일간 고문을 받고 나왔는데, 당신들은 왜 7년 후에 잡아놓고 나를 간첩으로 만들려고 하느냐니까. 아, 그런 말을 한다고 고문을 하는 거야.

지금까지 중앙정보부나 경찰 대공과에서 조사 받은 걸 우리랑 비교해서는 안 되고 우린 현역 군인이라 우리는 우리 식대로 하니까, 우리가 말한 것만 대답하라는 식으로 조사를 하는데 너무 잔인하게 고문하는거야. 이 조사관이 나가면 끝났는가 하면 다른 조사관이 들어와 가지고 같은 말 안 하면 왜 내 날 우습게 아느냐면서 고문을 하니까. 누구 앞에서라도 똑같은 말을 해야겠더라고. 그런 요령이 생기더라고. '야 이걸 벗어날 수 없겠구나' 하니까 결국 그 사람들 말을 따를 수밖에 없더라고."


초등학교 시절 내가 살던 시골 마을에는 영화관이 없었다. 대신 여름에 한번 군인들이 영사기를 들고 와 스크린 대신 흰 학교 담벼락에 영사기를 틀어 영화를 보여주곤 했다. 영화를 상영하는 날이면 주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영화를 보곤 했다.

물론 그렇게 보여주는 무료 영화는 주로 이름 없는 전쟁영화이거나 주먹깨나 쓰는 깡패들의 뒷골목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영화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남파 간첩 훈련을 받는 북한 간첩을 다룬 반공 영화였다. 남파 공작 훈련을 마친 공작원이 임무를 띠고 남파되어 어느 섬에 도착하지만 그는 곧 체포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진 고문을 받는다. 온갖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그는 아무런 정보를 발설하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박수를 치며 방을 들어온다. '테스트'였던 것이다.

조작 간첩도 같은 과정으로 반복된다. 누구도 믿지 않고, 어딜 가든 같은 말과 행동을 하게 만든다.

강광보의 구술 = "참 소름이 끼치지. 보안대에서는 훈련을 시키더라고. 허위 자술서 쓴 걸 재판장에서 번복할까봐 며칠에 한번씩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 가지고 지금까지 조사한 것이 진실이냐 재차 묻더라고. 한 번은 내가 거짓이라고 한 적이 있어. '내가 고문으로 허위진술 했습니다'하고 말했거든. 말하니까 그 사람이 지하실로 내려오더니 '다시 시작해!' 그리고 다시 고문을 받는데 어디 가서 내 앞에서 한 말 번복하지 말라 이거야. 그러니까 세뇌 되어 가지고. 교도소에서 교도관이 친절하게 와서 말해도 이거 같은 끄나풀인가 해가지고 말을 못하겠더라고. 광주(교도소) 가니까 조금 안심이 되어서 조금씩 말을 하게 됐는데, 그전에는 아이고 구분을 못하겠더라고 매일 반복 고문을 시키니까."

범죄 없는 사회를 만든다며 범죄를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범죄 없는 사회는 역설적으로 만들어진 범죄로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강광보씨는 범죄를 만들었던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어떤 말을 꺼낼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2004년 12월 국정원 진실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근무하기 시작했고 2006년 4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으로 위원회를 옮겨 2010년 12월까지 과거사 조사를 계속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해체된 뒤에도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피해를 밝혀내는 일을 꾸준히 해왔고 지금은 국가폭력 피해자 지원단체인 '지금 여기에'에서 일하며 국가권력으로부터 부당하게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의 진실을 규명하고 이들의 사법적 회복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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