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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 섞인 '바아압'을 먹으며, 우리는 시를 썼습니다

[서평] 홈리스들의 삶이 담겨 있는 시와 산문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

등록 2020.11.01 18:02수정 2020.11.0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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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객관적인 서평이 될 수 없다. 나는 2년 동안 성프란시스대학에서 자원활동가로 함께했기 때문이다. 이 책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에는 나와 2년 동안 함께 글쓰기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시를 쓰며, 조금씩 꺼내 서로의 속을 나누었던 선생님들의 글이 실려 있다. 이 글들에 객관적일 수가 없다. 나는 또한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결국 객관적인 거리를 잃어버리기를 바라고 있다.

성프란시스대학은 서울역 거리홈리스('홈리스'는 부정적 어감을 지닌 '노숙인'이란 명칭의 대체어다. 거리뿐만 아니라 시설, 쪽방, 고시원 등 비적정한 주거환경에서 사는 주거취약계층을 포괄한다)를 지원하는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설립한 일종의 시민대학이다. '노숙인'이라고 불리는 이 사회의 구성원, 시민들을 위한 대학이다.


사실 '노숙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따로 있지 않다. 어떤 이유로든 위기상황에 처해 집과 가정을 잃고 거리로 나오면 '홈리스'다. 그렇게 보면 단지 '주거 위기상황에 놓인 시민'이라 불러야 맞다.

그이들을 '시민'이 아닌 존재로, 밥과 '숙소'(집이라 할 수 없는)만 제공해주면 되는 잉여의 존재로 대접했을 때 '노숙인'이 될 뿐이다. '노숙인'이라는 호칭은 그 개인이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말해 주지 않고, 오히려 사회가 '위기에 처한 시민'을 어떤 식으로 대우했는지, 그 사회의 수준을 보여준다.

그이들 역시 인간적 존재라는 것, 사생활이 중요하고, 배움과 우정을 나누는 관계가 필요하고,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를 원하는 존재라는 것.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한 번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기를 포기한 적이 없으며,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 사회의 '시민'이었다는 것. 이것이 성프란시스대학이라는 '시민' 대학이 가지는 의미이고,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에 담긴 글 하나하나의 내용이다.

우리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책에는 2005년부터 2019년까지 15기에 걸쳐 성프란시스대학을 거쳐간 졸업생들의 시와 산문 167편이 수록되어 있다. 1년 동안 글쓰기, 철학, 예술사, 문학, 역사 수업을 들으며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비판하고,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고, 남아 있는 날들에 절망하고 희망하기도 하며, 예술이 되는 삶을 꿈꾼, 낱낱의 기록이 담겼다.

인간의 얼굴이 모두 다르듯 나의 삶이 '노숙인'이란 하나의 이름으로 묶일 수 없음을 증명하는 글들이다.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 책 표지 ⓒ 도서출판 삼인

 
이 글들은, 자신을 '노숙인'으로 호명하고 취급하는 사회와의 불화(不和)를 끊임없이 표현한다. 비 오는 날 야외 무료급식에서 빗물 섞인 '바아압', '구우욱'을 먹는 '인간 존재'.
 
장대비 속에 긴 배식줄/ 빗물바아압 빗물구우욱 비잇무울 기이임치이/ 물에 빠진 생쥐새끼라 했던가./ 물에 빠져도 먹어야 산다./ 이 순간만큼은 왜 사는지도 호강이다 왜 먹는지도 사치다./ 인간도 네 발 짐승도 없다 생쥐도 없다./ 오직 생명뿐이다./ 그의 지시대로 행위할 뿐. (권일혁 '빗물 그 바아압')
 
가로 8줄 세로 7줄 침대 16칸, '노숙인' 일시보호쉼터에서 탱크 지나가는 소릴 들으며 잠을 청하는 '인간 존재'.
 
밤 11시 04분/ 드디어 TV가 꺼졌다 자자 오늘은 좀 푹 자자./ 순간 들려오는 탱크 지나가는 소리,(전쟁 났다)/ 속았다 사람이 코로 낼 수 있는 최고의 소음/ 잽싸게 일어나 눈동자와 고개를 동시에 사방으로 돌려본다./ 가로 8줄 세로 7줄 침대 16칸 꽉 찼다./ 재수 옴 붙은 날이다,/ 전생에 나하고 무슨 원수를 졌기에 하필이면 바로 내 옆에서. (동O호, '밤 11시 04분')
 
한겨울, 5000원을 들고 시장을 다니면서 '저 이불을 덮고 자면 얼마나 따뜻할까' 눈물 짓는 '인간 존재'.
 
2016년 겨울에 방을 구하기 위해 용산구 동자동에 위치한 조그만 고시원을 찾아다니던 중 아무개 고시원에 들어가 주인을 찾아서 가격을 물어 보았다. (...) 17만 원이었다. 주머니에 있는 돈은 십팔만 원. 일단 가격이 맞아서 들어가 지내기로 했다. 문제는 이불이 낡고 얇아서 너무 추워 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인을 찾아가 이불을 바꿔 달라고 해도 안 바꿔주었다. 내 주머니에는 오천 원뿐. 시장을 돌아다녀 보면서 저 이불을 덮고 자면 얼마나 따뜻할까 생각하며 울기도 했다. (전영한  '겨울나기')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노숙인'이라는 호칭을 완강히 거부하는 '인간 존재'.
 
노숙인이라는 호칭은 정말 듣기 싫은 호칭이다. 주변에서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정신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게 된다. 인간의 삶 자체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적대적인 사회 인식이 안타깝다. 사회에서 인식을 바꿨으면 하는 생각에 노숙인이라는 호칭을 없애고 다른 호칭을 만들었으면 한다. (빼빼로 '노숙인이라는 명칭')

'노숙인'이란 하늘을 가리지 않는 곳에 잠을 자는 사람을 말한다. 이 용어가 적당하지 않은 이유를 적어본다. 성프란시스 인문대 6기 중에 한데서 자는 사람은 없다. 다시서기센터에서 한데서 자는 것을 면하게 해주었는데, 노숙자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은 맞지 않다. 더욱이 인문학을 배우면서 희망과 삶을 배우는 우리에게 노숙자라는 용어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안빈수분 '노숙인이라는 명칭')
 
이들의 시와 산문은 권위화된 '문학'에 대한 반항이기도 하다. 시를 쓸 수 있는 '시인'들이 따로 있고, '책'으로 낼 수 있는 글들이 따로 있다는 믿음에 대한 반항. 중학교, 고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이들의 글은 애초에 '시가 되지 못한 시'이고, '문학이 되지 못한 문학'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글쓰기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여전히 '인간 존재'라는 걸, 아직 이렇게 기쁨과 고통을 느끼며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써 내려간 글들이다. 모든 '인간 존재'의 진실한 목소리는 그 자체로 호소력을 가진다는 걸 보여준다.
 
어느 날 거울을 볼 수 없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기가 너무 두려웠다.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고, 벗은 내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그만 그 거울을 주먹으로 내리쳐 버렸다. 고독했다. 외로웠다. 슬펐다. 안타까웠다. (故 고성원 '거울 속의 나')

사랑하자 미치도록, 아니 죽도록/ 해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아직도 남은 저 먼 길을 걸어가자/ 나는 살아 있다// 사랑하자 미치도록, 아니 죽도록 낙엽 떨어진 그 먼 길을 걸어가자/ 추운 겨울 내리는 흰 눈은 얼마나 아름답더냐/ 해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사랑하자 미치도록, 아니 죽도록 (故 김대인 '나')
 
글은 지워지더라도, 사람은 잊히지 않기를 

얼마 전, 작년에 인문학 수업을 같이 들은 김OO 선생님과 식사를 같이 했다. 김OO 선생님은 인문학을 배우며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졸업 후로도 계속 시를 써서 모 자원활동가에게 문자로 보냈다.

그런데 김OO 선생님은 자신이 시를 쓴 적이 없다고 했다. 그저 자신이 '살아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뿐이라고. 매번 '잘 지내니?'라고 보낼 수는 없으니, 그때그때 다르게 보내는 것뿐이라고. 서툴게 한 시간 걸려 문자를 보내고, 다음 날이면 지워버린다고 했다.

어떤 시의 수명은 단 하루이고, 어떤 시의 의미는 존재 증명이다.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에 담긴 다른 글들도 그럴 것이다. 누군가 봐주지 않고 기억해주지 않고 간직하지 않으면 잊히는 글들이다. 잊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렇게 세상에 남을 '책'으로 출간된 것이 더없이 기쁘다. 누군가에게 가닿는 편지글이 된 것이. 부디 당신에게 전하는 이 편지글들을 읽어주시길. 그리고 객관적인 거리를 잃어버린 '인간 존재'로 다가와 답장이 되어주시길.
 
배워라 여인숙에 사는 사람들이여/ 배워라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여/ 배워라 부엌의 여자들이여/ 배워라 60세의 여인들이여/ 여러분은 앞장서야 한다./ 학교를 찾아라 집 없는 사람들이여/ 지식을 손에 넣어라 추위에 떠는 사람들이여/ 굶주린 사람들이여 책을 잡아라, 손에 그것은 무기의 하나다.// (...) 하나하나의 터득 속에서 손가락을 짚어가며/ 질문하라, 이게 어째서 이러느냐고/ 여러분은 앞장서야 한다. (브레히트 '배움을 찬양한다')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 북콘서트 포스터 ⓒ 성프란시스대학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 공식 블로그(https://stfrancishumanities.tistory.com)에도 게재됩니다.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

성프란시스대학 편집위원회 (엮은이),
삼인, 2020


#홈리스 #인문학 #성프란시스대학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 #빗물 그 바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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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행동 회원입니다. 2014년 11월부터 서울역에서 거리와 쪽방의 홈리스분들을 만나며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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