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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식장애와 잦은 두통·짜증... '영재 만들기'를 파헤치다

[리뷰] 다큐멘터리 영화 <디어 마이 지니어스>

20.10.24 09:46최종업데이트20.10.2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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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어 마이 지니어스> 포스터 ⓒ 필름다빈

 
영화는 집안 막둥이이자 리틀 영재를 꿈꾸는 '윤영'을 '나(구윤주)'가 4년 동안 관찰한 밀착 일기다. 맏딸이자 영화감독인 윤주는 동생만은 자신과 같은 길을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부모님께 적극적으로 피력하지만, 10년 넘게 학부모로 살아온 엄마(문선숙)는 여전히 자식 공부에 일생을 바친다.

한 가정 두 영재를 목표로 오늘도 '젊은 엄마들'보다 열과 성을 두 배로 기울인다. 영화는 그런 동생 윤영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뿐만 아니라, 자신이 못다 했던 학업을 보상받으려는 듯하는 엄마의 심정도 적극적으로 담았다. 

영재 육성 프로젝트의 시작은 '나'

16년 전 엄마의 영재 만들기 시초는 '나'였다.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시험을 통해 법으로 영재를 지정하기 시작했고, 이에 엄마는 백방으로 매진했다. 그때는 너도나도 영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영재 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들만의 리그는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한다. 그 반에서 1등을 한다고 해도 상위 클래스에서 또다시 경쟁해야 하는 구조였다.

그렇게 꽤 자주 영재 소리를 들었던 '나'는 전교 1등에 과학 영재로 뽑혀 그야말로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 후, 과학과는 다른 영문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평범한 4학년이다. 그리고 졸업을 유보한 채 다시 본가로 돌아와 캥거루족이 되었다. 어깨가 마냥 처져 자신감은 떨어지고 무기력해졌을 때 '나'는 동생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감독은 자신과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동생을 보며 한국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막냇동생은 첫째 언니를 부러워하며 '나도 영재가 되고 싶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초반 윤영은 자신이 영재가 되면 서울대도 가고 좋은 직업도 가질 수 있다며 들떠 있었다. 공부해 이룰 꿈이 있어 보였고 공부를 즐기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윤영은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영재 인증이 목표였지만 그 목표를 갱신하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기는 반복적인 상황에 차츰 힘겨워하기 시작했다.

동생이 일과는 그야말로 틈새가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의 하루라고 하기에 상상하기 어려운 일정이었다. 윤영은 새벽부터 일어나 영어 듣기를 BGM으로 깔고 아침을 먹고 등교한다. 3시쯤 하원 하면 피아노, 컴퓨터, 주산, 영어 회화, 독서 프로그램 등 꽉 찬 일정을 소화하고 해가 질 때쯤 들어와 다시 공부하다 잠들었다. 학원 테스트를 1등으로 통과하겠다는 목표를 위해 밤늦게까지 공부하던 동생은 과부하에 허덕인다. 윤영에게 한 끼를 먹는 일은 어느덧 큰 일과가 되어 있었다. 음식물을 잘 삼키지 못하고 2시간이나 밥을 먹기도 했고, 잦은 두통을 겪었다. 울고불고 떼쓰기의 반복. 그야말로 공부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꼬였나, 근원을 찾아보니
 

영화 <디어 마이 지니어스> 스틸컷 ⓒ 필름다빈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엄마의 영재 만들기 시작이 궁금해졌다. 엄마는 1960년대 생으로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에 공부를 더 하지 못했다. 아쉽게도 인문계가 아닌 상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더 배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안타까움을 자식들의 교육에 쏟아붓는 듯했다. 하루를 쪼개 계획을 짜려 했고,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을 혐오했다. 열심히 해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에 희열을 느끼면 바로 그게 학생의 본문이라 생각했다. 점수가 자신의 인생을 증명이라도 해줄 것처럼 자식 뒷바라지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윤영이 버거워하자 엄마도 한계가 왔다. 세 딸을 공부시킨 프로 학부모도 슬슬 지쳐갔다. 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갱년기라는 복병이 찾아왔다. 

영화는 엄마의 갱년기와 윤영의 학업 스트레스로 소강상태로 접어든 듯싶었으나 2막이 곧 시작됨을 암시한다. 졸업하고 작은 집을 구해 소소한 작업으로 벌이를 하다 잠시 집을 찾았을 때, 상황이 요만큼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아이다움을 잃어가는 동생이 걱정돼 엄마와 설전을 벌였지만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엄마는 막내딸의 미래를 포기할 수 없고,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동생의 심리 전반을 불효라는 죄책감이 차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의 노파심일까? 좀 더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놀면 안 되는 걸까.

구윤주 감독은 뜻밖에도 동생 윤영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일을 후회 없이 해볼 용기를 얻는다. 과거 부모님에게 떠밀려 알아듣지도 못하는 수업을 아는체했고, 잔뜩 주눅 들어 자존감도 떨어졌던 때의 자신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동생에게 대물림된 영재교육의 실체를 찾아 나선다. 신나게 뛰어놀아야 할 초등학생들이 영재 인증에 매달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게 과연 옳은 것지 물음표를 던진다.

자기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디어 마이 지니어스> 줄곧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담아냈다. 대한민국 교육열과 과도한 영재 시스템의 근원을 찾아가는 탐구생활이다. 세월이 흘렀지만 한결같은 입시전형부터 감독이 겪었던 스트레스를 답습하고 있는 동생을 바라보는 걱정 어린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고무적인 것은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화를 찍고 싶었던 감독이 동생을 구하겠단 핑계를 동력 삼아 결국 자신을 구하며 자신감을 얻는다는 점이다.

한국 영재 교육의 산증인이자 현재진행형인 세 자매와 엄마, 그리고 가족 갈등, 꿈과 미래라는 진지한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젊은 여성 감독의 등장을 반겨주듯, 올해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 추천작 10편에 선정돼 좋은 평가를 받았다. 중간중간 삽입되는 애니메이션, 아카이빙 자료, 핸드 드로잉은 적재적소에 쓰여 완성도를 높인다. 특히 윤시내가 부른 노래 '공부합시다'는 그 시대상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면서도 메시지를 함축하는 재미 요소로도 손색없다.
디어 마이 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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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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