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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없는 대학생,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연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제3부 소년의 꿈 (15)

등록 2020.11.16 11:25수정 2020.11.1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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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 집 마당에 피었던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국화로 장모님 유품이다. ⓒ 박도

     
고마웠던 친구와 스승님

청소년 시절 나는 주거 문제로 어려움에 처했다. 마침 같은 반 친구(이건규)가 자기 막내동생 가정교사로 지내길 권하기에 그 친구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친구 어머니는 동대문시장 노점에서 떡장수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댁에서 6개월 정도 신세를 졌다. 그 어머니는 참으로 고마운 분이었다. 당신 아들처럼 똑같이 대해주셨다.

6개월 뒤 그 친구 집을 떠나 다시 신문배달을 하고자 동아일보 세종로보급소로 찾았다. 보급소장은 당신 보급소 배달원으로 한 번 나간 사람은 다시 채용하지 않는다는 내규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예외로 재취업을 시켜준다면서 사직동 구역을 배정해줬다. 나는 가능한 시간을 아끼려고 사직동에다 하숙을 잡았다. 대학진학을 앞둔 어느날 홍준수 선생님 수업시간이었다.

"요즘 문과 학생들 중 우수한 자는 죄다 법대, 상대만 진학하려 한다. 법대에 가서 잘되면 판·검사지. 판검사란 범법자들의 죄나 추궁하는 직업이다. 상대에 가서 잘되면 은행원인데, 은행이란 돈놀이 하는 곳이다. 성적 우수자들이 순수 학문도 하고, 교육계로 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도 학문적으로 선진국이 될 수 있고, 다음 세대를 위한 훌륭한 인재를 기를 수도 있다."

선생님의 말씀은 나의 장래 문제를 많이 생각하게 했다. 어머니는 내게 안정적인 교사가 되라고 했다. 고교 은사 박철규 선생님은 만날 때마다 말씀했다.
 

고교시절 은사 박철규 선생님의 만년 모습 ⓒ 박도

  
"박군은 국문과로 가서 작가가 되라."

나는 고1 때 교내 백일장에서 차상을, 고2 때 교내문예현상 모집에서 소설부문에 당선되고, 중동학보 학생 기자로 교내에서 문명을 한창 떨쳤다. 그래서 나는 교사도 되고, 작가수업도 할 수 있고, 등록금도 싸고, 졸업 후 취직이 확실히 보장되는 서울사대 국어교육과를 목표로 삼았다.

고교 졸업 때 서울사대를 지원했지만 내 실력 부족으로 낙방했다. 집안 형편상 도저히 재수할 처지가 아니라 그해만 후기였던 고려대 국문과에 지원해 합격했다. 나는 고교도, 대학도 후기만 다녔다.
   

학훈단시절(1967년) ⓒ 박도

    
학훈단(ROTC)에 입단하다


대학에 입학한 1965년은 한일협정이 체결된 해로, 입학 초부터 한일굴욕외교 반대시위가 계속 이어졌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마지막 학기만 조용했을 뿐이다.나머지 학기는 한일회담 반대데모, 6.8부정선거 규탄, 삼성 밀수사건 규탄, 3선 개헌 반대 등 각종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휴업이나 휴교 등이 반복됐다.

대학 재학 중에도 가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대학 4년 8학기 등록 때마다 매번 곤욕을 치렀다. 대학 재학 중, 한 학기조차도 한 곳에 제대로 정착치 못한 채 서울 곳곳을 떠돌아다녔다. 동생과 자취, 입주 가정교사, 고모 댁에, 고교시절 친구(이건규) 집에 신세를 지면서 어렵게 학교를 다녔다. 대학 4년 동안 아마도 10번 이상은 거처를 옮긴 듯하다.

대학을 입학하자마자 눈 앞에 병역문제가 닥쳤다. 대학 재학 중에 입대가 싫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고교시절 집안 사정으로 남다르게 4년을 다녔기 때문이다. 입대로 휴학을 하면 복학하지 못할 것 같았다. 게다가 졸병으로 군에 가면 매 맞는다는 말과 다달이 집에서 돈을 가져다 써야 한다는 것도 싫었다.

그런 가운데 재학 중 학훈단(ROTC)에 입단하면 대학 졸업 후 장교로 임관하기에 그 모든 게 한꺼번에 해결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학훈단에 입단키로 작정했다. 학훈단에 입단하기 위해서는 대학 1, 2학년 때 줄곧 병역 연기원을 내야 했다.

2학년 때인 1966학년도 1학기 초 병역 연기원을 내고자 학생처에 갔다. 하지만 내가 1차 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병역 연기원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1차 등록 마감일까지 등록금을 백방으로 구했으나 허사였다.

나는 다시 학생처에 가서 꼭 2차에 등록을 할 테니 병역 연기원을 받아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담당 직원은 딱 잘랐다. 낙담을 한 채 대학 본관 앞을 지나는데 그날은 1차 등록 마감일로, 많은 학생들이 줄지어 있었다.

나는 그 줄에 서 있는 한 고교동창이 눈에 띄었다. 그는 고교시절 밴드부원으로 호른을 불었던 윤기호란 친구였다. 그때 나는 무척 절박한 탓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낯이 화끈거릴 정도로 염치도 없이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기호야, 네 등록금 나한테 양보해주라. 나 학훈단 입단하려고, 병역 연기원을 내고자 그래. 내 2차 등록 전까지는 꼭 갚을게."
"그래? 알았다."
 

그는 자기 손에 쥐고 있던 등록금을 내게 선뜻 건네주면서 아예 자기 자리까지 양보해줬다. 솔직히 그런 온정은 서로 처지를 바꿔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그 친구 덕분으로 그날 등록한 뒤, 즉시 학생처에 가서 병역 연기원을 낼 수 있었다. 

마침내 학훈단 후보생이 되자, 고3 수험생 못지않게 일과가 팍팍했다. 전공 학점이 20여 학점에, 교직과목을 매 학기 4~6학점 이상 취득(총 24학점)해야 했고, 학훈단 군사학도 주당 6시간 정도였다. 주당 30시간이 훨씬 넘는 교육시간이었다.

대학시절 내내 찌든 가난으로 입주 가정교사나 시간제 가정교사로 나의 대학생활에는 낭만이라는 것은 전혀 없었다. 좀 창피한 얘기지만, 그 시절 나는 '세시봉'이니 '르네상스'니 하는 음악 감상실은 물론, 대학 앞 당구장에도, 제기천 막걸릿집에도 한 번 출입치 못한, 대학시절의 낭만과는 거리가 먼 촌놈이었다.

아무튼 나의 대학시절은 가난에다가 군사교육 등으로 멋과 낭만도 없었던, 그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동자상 ⓒ 박도

   
문학의 힘

내가 해방둥이로 일흔이 넘는 오늘까지 살아오는 동안 인생 길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보통으로 살기조차도 힘든 세상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가족과 이별로, 혈육을 떠나보내는 일이었다. 나는 1967년에 어머니를, 1992년에 어버지를 잃었다.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니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효한 자식이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어버이를 봉양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이 고사를 교단에서 제자들에게 수없이 가르쳤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실천치 못한 채, 두 분을 떠나 보냈다. 

내가 살아보니까 가난은 별 게 아니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육군 장교로, 교사로 다달이 꼬박꼬박 단 하루도 어김이 없는 봉급을 받자 극심했던 가난의 굴레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혈육을 아프게 잃은 불행의 늪에서는 그저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도 부족함이 많았다.

'인간 세상 고해'라는 불가의 말씀을 절감했다. 뒤늦게 수행의 길을 걷고자 어느 날 출가를 결심하고 산문을 찾았다.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다고 받아주지를 않았다. 내가 크게 낙담하자 스님은 출가에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 하나는 마음 출가인 심출가(心出家)요, 다른 하나는 몸 출가인 신출가(身出家)라고. 스님은 나에게 마음 출가를 권하면서 이제까지 가졌던 인생관이나 생활습관을 확 뜯어고치라고 조언했다.그래서 그날부터 삭발했다. 

하지만 세속의 번뇌는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번뇌와 아픔 속에서 문학의 힘으로 살아왔다. 만일 그게 없었다면 여태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예술가 가운데는 불행한 이가 많다는 것도 알았고, 그게 위안이 되었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선생의 '갈대' 한 구절이 새삼 절구임을 절감하면서 나의 아집과 교만, 그리고 무지 무명을 깨우쳐 달라고 하늘에 기도 드린다.

(*다음 회는 제4부 '작가 ․ 기자생활'이 이어집니다.)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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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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