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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 중인 16세 소녀... 우리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리뷰] 영화 <베이비티스> 예상치 못했을 때 오히려 삶은 빛난다

20.10.19 14:47최종업데이트20.10.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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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길에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16세 학생 밀라(일라이자 스캔런)는 우연히 한 소년을 만난다. 어딘가 불량스러워 보이는 소년 모지스(토비 월레스)를 만나고 밀라의 삶에는 변화가 찾아온다.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16세인 밀라(일라이자 스캔런)는 등굣길에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쿵' 하며 누군가 밀라의 몸을 밀치며 총알처럼 튀어 나간다. 급기야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에 부딪힐 뻔한 소년. 셔츠 한 장과 반바지를 입었고 어딘가 불량스러워 보인다.
 
분명 첫 만남이었다. 밀라는 소년과 서로의 헤어스타일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밀라가 갑자기 코피를 흘린다. 소년은 밀라를 바닥에 눕히고 셔츠를 벗어 피를 멎게 했다. 밀라는 누운 채 소년을 응시한다. 피가 멈추자 소년이 주춤거리며 말을 꺼낸다. 강제퇴거를 당했는데 돈을 좀 줄 수 있냐고. 밀라는 대신 부탁을 들어달라고 한다. 소년의 이름은 모지스(토비 월레스).
 
모지스가 밀라의 머리를 엉성하게 밀었다. 밀라는 그날 가족과의 저녁식사에 모지스를 초대했다. 엄마 애나(에시 데이비스)와 아빠 헨리(벤 멘델슨)는 정체도, 나이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모지스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밀라의 생각은 달랐다. 모지스가 돌아가려고 자리를 뜨며 말을 건네자 아쉬움 투성이다. "또 보자", "어디서", "그냥 여기저기", "안 가도 돼" 밀라의 마음 속에 모지스가 훅 들어와 버렸다.
 
영화 <베이비티스>(감독 섀넌 머피)는 삶의 경쾌함과 자유로움을 그려낸다. 주인공 밀라에게 느껴지는 활기와 에너지 덕분이다. 섀넌 머피 감독은 밀라를 감각적인 방식으로 스크린에 풀어놓는다.

로맨스물처럼 출발하는 이 영화는 이내 관객의 예상을 비틀어놓는다. 바이올린을 켜는 그의 뒤통수와 함께 '암 재발 밀라 항암치료 시작'이라는 문구가 뜬다. 그런데도 밀라는 자신의 삶을 생기있게 꾸려나간다. 모지스를 사랑하고 갈망하며, 그를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부모의 간섭에는 맞선다. 이는 반항이 아니다. 선명하게 자기 생각을 어필한다. 밀라의 눈빛과 말투에는 강렬함이 묻어 있다. 때로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춘다. 그는 몽환적인 화면과 음악 속에서 자유를 온몸으로 적셔낸다. 온전한 자신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밀라가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가장 자유롭고 해방된 순간이다. 밀라를 연기한 배우 일라이자 스캔런은 올해 초 국내 개봉한 <작은 아씨들>(2019)에서 네 자매 중 막내 베스 마치를 연기한 바 있다.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이 영화는 아픈 소녀가 겪는 슬픔이나 비극, 쓰라림을 전달하기 보다 10대 소녀가, 아픈 소녀가 삶을 어떻게 마주하는지 포착해 나간다. 나는 민머리의 밀라를 봤음에도 자기의 삶에 적극적인 태도에 그가 아프다는 사실을 여러 번 잊었다.

모지스도 밀라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거처도 제대로 없는 그가 놓인 현실은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대신 가능성은 커다랗다. 밀라의 아빠가 물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뭐니?" "비정식적인 일은 뭐하는데?" 모지스가 답했다. "제가 해야 되는 일이 있는 거예요?" 이어지는 대답. "이렇게 넓은 세상인데 한 가지 일만 하는 게 이상하죠. 그렇게 사는 순간 아름다움보다 기능에 집착하게 될 걸요?"
 
서로가 엮인 세상... 풍성하다

삶은 순서대로 흐르지 않는다.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때때로 우리의 감정을 요동치게 한다. 어느 날 훅 들어온 사랑이라는 감정에 기쁨을 찾은 밀라나 그가 항암 치료를 받는 사실을 갑자기 알게 되는 관객도 비슷하다. 혜성이 갑자기 떨어지듯 세상은 예측불허의 연속이다. 서로가 엮이면서 다양한 일이 터진다.

감독은 밀라의 주변인들을 통해 풍성한 서사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아픈 밀라를 바라보면서 심리적으로 괴롭지만 밀라 덕분에 웃기도 하는 부모가 있다. 유머러스함이 있지만 때로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가족의 이웃인 애견미용사, 피아니스트, 싱글맘도 주목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밀라의 가족과 엮이는 사람들이다. 위로와 웃음을 주고 조언을 건넨다.

이렇게 삶은 무엇이라고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 이렇게 모두가 엮여 왁자지껄한 이야기가 탄생한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베이비티스>의 한 장면.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그래서 나는 밀라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머리를 갑자기 잘라도, 집을 갑자기 나가버려도 괜찮은거다. 밀라는 자신에게 찾아온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기쁨을 찾았다. 그 원동력으로 자신의 삶을 찬란하게 만들어나간다.

감독은 실제 배경을 근거로 입체적인 인물들을 만들어냈다. 영화 배경이 호주 시드니 근교 빈민가 근처 중산층 동네다. 실제로 마약중독자, 이민자, 치료사,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이웃이다. 감독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엮이는 공간에서 투병 중인 밀라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봤다.
 
<베이비티스>는 밀라의 혼자만의 이야기 같기도 하며, 밀라 가족의 이야기 같기도 하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생각해본다. 나는 언제 살아있음을 느꼈을까? 나는 주변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자유롭고 싶었던 나의 10대 시절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계속 궁리를 해보지만 그런 시절과 순간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22일 개봉. 117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진수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베이비티스 일라이자 스캔런 청소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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