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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땡겨서" 한국에 눌러앉은 미국인, 대통령 훈장까지 받은 사연

한국의 탱화장이 된 미국인 브라이언 배리... 그가 한국 불교에 남긴 선물

등록 2020.10.20 10:18수정 2020.10.2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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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평화봉사단 사진 브라이언 배리의 유품 "In memories of Brain Barry"에 수록된 사진. 전라북도에 파견된 평화봉사단원들로 보인다. 방역관련단체로 보이는 입간판이 군대식 용어인 'ㅇㅇ사령부'로 되어있다. ⓒ 서치식

[이전 기사] 봉사하러 부안에 왔다가 '한국 엄마' 찾은 23살 미국 청년 


"부안에서 나락 키우고 살다가 보스턴에서 양복 차림으로 일하려니 답답해서 환장할 노릇이더랑게."

궁벽한 부안군 산내면에서의 생활이 그리워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국행을 선택한 전라도 촌놈 배리씨가 당시를 회상하며 한 말이다. 벽안의 미국 청년을 자신이 어려서 잃은 아들이 환생한 것으로 철썩 같이 믿었던 독실한 불교신자 김 여사의 믿음이 배리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것일지도 모르겠다. 
 

브라이언 배리의 유품 "in memories of Brain Barry"중 김초례여사와 배리씨의 유품 "in memories of Brain Barry"중 "with BUAN family"에 있는 어머니 김초례 여사와 찍은 사진으로, 생전에도 늘 소장했다고 한다 ⓒ 서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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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씨가 컬러사진으로 찍은 6.70년대 부안의 모습 모습 배리씨가 평화봉사단으로 처음 오던 때 그의 형이 선물한 카메라로 손수 찍은 컬러사진을 현상할 수 없어 배편으로 미국에 보냈으나 바로 현상하지 못하다가 수 십년이 지나서 이삿짐 사이에서 우연히 발견돼 세상에 빛을 본 사진으로 만든 동영상(배리씨의 조카 조기현제작) ⓒ 서치식


"그냥 확 땡겨서" 눌러앉은 한국 

고향에 돌아간 지 6개월 만에 다시 고향보다 더 좋은 한국 땅에 평화봉사단 교육위원 부단장(K22)으로 돌아온 그는 "그냥 확 땡겨서" 한국에 눌러 앉게 된다. 그리고 독실한 불교신자인 김 여사를 통해 접한 불교에 점점 심취하게 된다.

평화봉사단 임기를 마치고 당시 해외 수출을 시작한 대우의 해외광고부 홍보 파트에서 1979년부터 1998년까지 근무하며 대원정사 불교대학에서 불경을 공부한 그가 탱화와 운명적으로 만난 것은 1986년. 한 미국 건축가의 통역을 맡아 서울 신촌 봉원사에 갔을 때라고 알려져 있다.

복잡한 여러 패턴이 엉켜 있으면서도 질서를 유지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는 단청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멎고 온몸이 굳어오는 전율을 느꼈단다. 그에게 이는 두 번째 운명적 만남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길로 우리나라 최고의 금어(金魚: 단청이나 불화를 그리는 일에 종사하는 승려, 중요무형문화재 48호 단청장) 만봉 스님과 인연을 맺고, 탱화를 배우기 위해 그의 제자가 된다. 
 

탱화장 만봉스님과의 만남은 두 번째 운명적 만남이었다 . 탱화장 만봉 스님과 인연해 탱화를 배우겠다고 발원하고 그의 제자가 된 배리씨. ⓒ 서치식

 
연필 잡듯 붓을 잡고 시작해 9개월에 걸쳐 1000장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는 배리씨. 그는 뿌듯한 마음에 만봉 스님을 찾아가 그림을 내보였지만, 한눈에 쓱 보고는 다시 1000장을 그리라고 해 보따리를 싸기 시작했단다. 그는 무려 여섯 번이나 보따리를 쌌다가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렇게 모두 3000장의 시왕초를 그리며 필력과 인내심과 하심(下心: 불교에서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을 배우고 나서야 그의 전수자가 될 수 있었다. 암 투병을 하면서도 손에 힘이 빠져 붓을 들 수 없을 때까지 하루도 붓을 놓아본 적이 없는 그의 탱화와 달마도는 대부분 인연 있는 사찰에 모셔졌다.

무의탁 노인보호소 자광원, 인도네시아 해인사 포교당, 미국 센트루이스 불국사, 메사츄세츠 캠브리지선원, 오렌지베일 고불사, 방글라데시 원명사 등에 후불 탱화를 조성 기증했다. 또, 고향인 보스톤 문수사의 지장시왕도와 문수보살도 등도 널리 알려져 있다. 죽기 일주일 전까지 시왕탱을 그리다가 2006년 97세를 일기로 만봉 스님이 열반하시자, 유족 회의의 결정으로 그가 스승의 유작(遺作) 맡을 정도였다.
   

인도네시아의 브루브두루 사원에서 받은 인증서 브루브두루(Borobuder)의 인증서 ⓒ 서치식

   
1999년에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태국 왕실사원의 탱화를 그리게 되는데 사연은 이랬다. 태국 왕실사원 왓 수탓(Wat Suthat)의 법당 벽화를 구경하던 배리씨에게 그곳 부주지 스님이 "서울에서 무얼 하느냐"고 묻기에 "단청도 하고, 탱화도 그린다"고 하니 "혹시 그림 사진을 볼 수 있느냐"고 묻더란다.

가방에 마침 있던 영락(불보살들이 몸에 거는 구슬 장신구) 그림 사진을 보여줬더니 반색하며 왕실사원의 설법당 남문에 단청 문양을 그려달라고 간청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원 측에서 마련해준 승방에 묵으며 3개월간 단청 작업을 했다. 당초에는 그림만 그려주면 됐지만, 태국 불교를 직접 체험해 볼 욕심으로 일반 스님들과 어우러져 똑같이 걸식하면서 그림을 그렸단다.
  

불교미술전람회 특선 상장 카피라이터, 영문 번역가, 달마도·탱화·단청 등 불교미술 작가. 다채로운 삶을 산 브라이언 배리가 받은 불교미술전람회 특선 상장 ⓒ 서치식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이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 모르겠어. 아득한 극락세계였다고 해야 할까?"

배리씨가 후에 그때를 회상하며 한 말이다, 당시 방콕에서 CNN 인터내셔널이 그의 탱화 작업 장면을 찍어 미국에 내보내자 보스턴에 거주하는 형님이 방송을 본 뒤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혹시 그 절 이름이 거시기 아니냐?"

영어든, 한국어든 말끝마다 튀어나오는 '거시기'란 말 때문에 미국인 형은 그 절 이름이 '거시기'인 줄 알 정도였으니, 배리씨는 말 그대로 '거시기'한 전라도 사람이었던 것이다. 단청을 그리며 삭발을 하고 현지 스님들과 생활하며 탁발도 함께 했다하니 불교에 대한 그의 신심(信心)도 엿볼 수 있다.

파란 눈의 불자로 포교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은 그는 1985년 불광사에서 광덕 스님을 계사로 오계를 수지하고 '도해(道海)'라는 법명을 받았으며 1987년에는 조계종 첫 서양인 포교사가 됐다. 연등국제불교회간 설립에 참여했으며 성철 스님의 '자기를 바로 봅시다' '이뭣고'를 영어로 번역 출간하고 2009년 일타 스님 책을 법보시용 '생활 속 기도법'으로 세상에 다시 내놓았다.

법정 스님 수필 중 에세이 65편을 가려 'The sound of water, The sound of wind(물소리 바람소리)'로 엮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한국의 불화' 전 40권 영역도 그의 노력의 산물이다.  
 

브라이언 배리가 받은 화관문화훈장 브라이언 배리가 받은 훈장증. 병세가 위중해 전달식에 창여하지 못했어도 전라도 사투리로 유머러스한 수상 소감을 전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 서치식


한국 불교를 세계에 소개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9 문화의 날'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는 화관문화훈장을 수여했지만 병세가 위중해 훈장 전달식에 나가지도 못했다.

그렇게 몸이 괴로운 중에도 배리씨는 오랜 지인 김현(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를 디자인한 디자이너)씨를 통해 "나같이 다 떨어진 양코배기한테까지 (한국 정부가) 신경 써줘 고맙다"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수상 소감을 전할 정도로 평정심(平靜心)을 유지했다고 한다. 신장과 폐에 생긴 암으로 인해 네 번의 대수술 후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도 그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밝고, 유머러스했다고 한다.

"이 세상에 원인 없이 생기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요. 그렇게 보면 그 암 덩어리 또한 생명체이고 이유가 있어서 생긴 것이겠지요. 가만히 살펴보면 다 이유가 있어요. 특별히 좋다는 생각이나 싫다는 생각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수행으로 삼다보니 오히려 예전보다 마음도 한결 더 편안해졌고, 두려움과 공포 같은 것도 사라졌어요."

그래도 육신을 가진 사람인지라 사경을 헤매곤 했지만 그때마다 어디에선가 알 수 없는 힘이 솟곤 했다는데 그는 그것을 불보살님의 명훈가피력(冥熏加被力:부처나 보살이 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이롭게 하는 힘)으로 믿었다고 한다. 자비무적(慈悲無敵)! 자비문중에는 본래 물리칠 적이 없기에, 자신의 몸에 생긴 암 또한 수행을 돕는 '암부처님'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하니 그의 불심(佛心)을 혜량하기 어렵다.

병세가 위중해 몸의 고통이 더할수록 부처를 그렸으며 그 길만이 탱화로 만든 한국과의 인연, 부처와의 인연에 대한 보답이라 믿었다는 배리씨. 그는 선불교를 비롯해 한국 문화와 관련한 각종 서적과 영화 등을 영어로 옮겨 외국에 소개하는 일까지 계속 했다고 하니(영어로 번역한 책이 50권을 넘는다) 부처님을 향한 그의 신심(信心)이 놀라울 뿐이다. 

"그냥 확 땡겨서 눌러 앉았어. 참 거시기 해"라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부안의 가족들과의 인연을 말하던 벽안의 탱화장 브라이언 배리. 그는 그의 말처럼 "그냥 확 땡겨서" 살래의 가족들과 함께 산 것처럼 그냥 확 땡겨서 극락에 눌러 앉은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전북의 소리에도 게재합니다.
#브라이언배리 #서치식 #살래 #부안 #조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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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2급 장애를 가진 전주시 공무원으로 하프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만18년째 가열찬 재활 중. 이번 휠체어 사이클 국토종단애 이어 장애를 얻고 '무섭고 외로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시즌Ⅱ로 필자의 마라톤을 마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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