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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하러 부안에 왔다가 '한국 엄마' 찾은 23살 미국 청년

평화봉사단원으로 전북 부안에 와 김초례 여사 가족과 인연을 맺게 된 브라이언 배리씨

등록 2020.10.19 14:43수정 2020.10.1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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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래(산래의 전라도식 발음)에 살아서 큰 출세했고만 그려!"란 문구가 적힌 묘지석이 있는 고 브라이언 배리(Brain A Barry, 1945~2016)의 묘는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에 위치한 창녕 조씨 상호군공파 선산(仙山)에 있다.

같은 성씨라도 그 조상 자손의 묘만 쓸 수 있는 선산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묘의 주인, 브라이언 배리(아래 배리씨로 부르기로 한다)는 필자의 지인 조기현(52, 전주시 삼천동)씨의 삼촌이다.

그의 가족들은 벽안의 외국인을 온전히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배리씨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유언에 따라 선산의 어머니, 형님들 옆에 묘역을 마련해 대를 이어가며 정성을 다해 돌보고 있다. 필자가 배리씨의 형님, 형수, 조카들과 함께 그의 묘를 찾은 것은 지난 9월 24(목요일)로, 기일(忌日)이었던 7월 3일(금요일)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었다.
  

무덤 발치에 곱게 핀 상사화 배리씨가 묻힌 무덤 발치에 곱게 핀 상사화는 저승에서도 모자간의 정을 이어가려는 배리씨의 마음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 서치식

 
"어쩜 이렇게 고운 상사화가 피었을까?"라는 말과 함께 묘역 발치에 난 상사화를 연신 어루만지는 배리씨의 형수 눈에는 그 상사화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듯했다.

가치관이 형성되었을 23살의 미국 젊은이가 자신의 부모와 고향을 떠나 한국에서 카피라이터, 영문 번역가, 달마도·탱화·단청 등 불교미술 작가로 살게 된 것은 베리씨의 한국 어머니 김초례(~1991, 아래 김 여사로 부르기로 한다)와 불교, 이 두 번의 운명적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2회에 걸쳐 배리씨의 이야기를 연재하려고 한다. 이번 호에서는 한 미국 청년이 고향과 가족을 떠나 평생을 한국의 가족 일원으로 살다가 마침내 선산에 묻히기까지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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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래야 살래야"란 제목으로 부안문화원에서 발간한 화보집에 쓰인 배리씨의 사진 촬영한지 40여년 만에 세상에 빛을 본 배리씨의 사진으로 제작한 동영상, 평화봉사단으로 올때 형님이 선물해준 카메라로 배리씨가 직접 찍은 사진들. 6,70년대의 귀한 사진들로 부안문화원에서 '살래야 살래야'란 제목으로 화보집으로 발간하기도 한 사진으로 그의 조카 조기현씨가 동영상으로 편집 제공 ⓒ 서치식

   
죽어서도 모자가 되게 한 2년간의 산래 생활

1967년 미국 코네티컷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스물세 살 미국 청년이 평화봉사단원으로 전북 부안 마을주민들의 결핵관리, 가족계획, 모자보건 등에 대한 상담을 하게 된다. 그 일에 종사하며 묵던 숙소의 안주인이었던 김 여사(훗날 명절마다 찾기도 하고 상주 노릇을 톡톡히 하는 등 어머니로 섬기게 된)과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한편, 아들 다섯에 딸 둘을 둔 김 여사는 병으로 잃은 막내아들이 있었다. 독실한 불교신자이기도 한 그녀는 죽은 막내아들이 환생해 어미를 찾아온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배리씨를 아기 돌보듯 돌봤다. 호기심 많고 쾌활한 그는 김 여사의 자상한 보살핌 속에서 주민들이 건네는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농악판에 스스럼없이 어울리기도 했다. 
 

상시로 농악판을 이끄는 배리씨 정읍농악 문화재 유지화씨는 "배리는 45년생 동갑내기 친구인데 평화봉사단원 동기 개리와 정읍으로 농악을 배우러 댕겨겼어. 서울 가서는 농악강습을 하다가 농악을 깊게 배우려는 사람덜을 나한티 보내기도 했어"라고 말했다. ⓒ 서치식


마을주민들과 그렇게 어울린 어느 겨울날, 막걸리에 얼큰히 취한 배리씨가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한 길 남짓한 똥통에 빠지는 웃지 못할 일을 겪는다. 사람의 인분이 요긴한 거름으로 사용되던 시절인지라 재래식 화장실에 인분이 가득차면 이듬해 농사에 쓰기 위해 '똥지게'로 옮겨 옆 방죽에 저장했다고 한다.

일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다가 여느 때처럼 이웃 마을 농악판에 어울려 막걸리에 얼큰히 취한 배리씨는 빨리 돌아오려는 욕심에 익숙한 길을 놔두고 논 가운데를 가로질러 걷게 된다. 온통 눈 천지라 밤인데도 주변이 훤하고 농작물이 없는 겨울이어서 배리씨는 거침없이 논을 가로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겨울에는 둠벙(깊이가 한 길 남짓한 방죽의 전라도 사투리)에 똥을 저장한다는 것을 알 턱이 없기도 했지만 그날 밤엔 눈이 쌓여 그곳이 둠벙인지 알 길이 없던 베리씨는 난데없이 똥 둠벙에 빠지게 된다. 한 길 깊이의 똥 구덩이이서 가까스로 나온 베리씨는 온몸이 똥 철갑인 데다가 한겨울인지라 순식간에 꽁꽁 얼 수밖에 없었다.

난데없이 똥 고드름을 주렁주렁 매달고 덜덜 떨며 나타난 배리씨의 몰골을 보고 차마 웃을 수 없었던 김 여사는 서둘러 가마솥에 불을 때 씻을 물을 준비하고 똥 투성이 배리씨를 아궁이 옆에 앉혀 몸을 녹이게 하는 등 한바탕 야단법석을 떨었다고 한다.

목욕 시설이 따로 없던 시절이고 겨울인지라 큰 물통을 아랫목에 놓고 몸을 씻어야 했다. 여기저기 똥 고드름 녹은 물로 한동안 온 집안이 냄새로 진동했다고 형 각철씨는 말하며 연신 웃어댔다. '똥구덩이에 빠져 죽을 뻔했던' 그때의 해프닝은 오래도록 추억거리가 되었고 가족들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전기가 없어 밤이면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이는 추운 겨울밤, '변소'를 사용하는 게 무섭기조차 했던 배리씨가 방안에서 용변을 해결하느라 벌어진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으슥한 곳에 위치한데다 춥기까지 한 변소를 캄캄한 어둠 속에서 사용하는 게 큰 고민이었던 배리씨는 큰 소주병을 이용해 방안에서 소변을 해결하고 이른 아침 남몰래 버리는 꾀를 낸 것이다.

자신의 꾀로 긴 겨울밤의 큰 고민을 해결하고 생활하던 어느 날 아침, 베리씨는 밤사이 벽장에 고이 모셔둔 노란 액체(?)를 깜박 잊고 출근하게 되고 그날따라 빈방을 청소하러 들어온 김 여사가 벽장에 고이 모셔둔 노란 액체를 서양인들이 즐겨 마신다는 귀한 와인으로 오해하고 만다.

이 귀한 것을 얌체처럼 혼자만 벼장속에 숨겨두고 먹는다고 생각한 김 여사는 괘씸한 생각이 들어 병째로 벌컥 들이켰다고 하니 그 후에 벌어질 광경을 상상하는 것은 과히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 김초례여사의 장례식을 마치고 죽은 막내 아들이 환생해 자신을 찾은것으로 철석같이 믿은 김여사를 어머니로 모셨던 배리씨는 김여사의 장례식에서도 상주를 참여하는 등 실제 그녀의 막내아들로 살았다. ⓒ 서치식

 
"부안에서 나락 키우고 살다가 보스턴에서 양복 차림으로 일하려니 답답해서 환장할 노릇이더랑게."

배리씨는 살래에서의 2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고향인 보스턴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6개월 만에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리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써가며, 그 이유를 위와 같이 설명했다.

6.25 동란 중에 잃은 막내아들이 환생해 어미를 찾은 것으로 철썩 같이 믿었던 한국 어머니의 정성이 2년 만에 베리씨를 영락없는 전라도 부안사람으로 만든 것일까. 23살의 한 미국 청년이 살래에서 2년을 살며 완전한 부안 사람이 됐다. 그리고 부안을 고향으로 삼고 살다가 묻혀 영혼마저 부안 사람이 됐다.

한국 어머니 고 김초례 여사의 믿음처럼 죽은 막내아들이 환생해서 어머니를 찾은 것일까. 환생해 함께한 삶도 모자라 함께 묻힌 그들은, 저승에서도 모자의 삶을 이어가지 않을까.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전북의 소리에도 중복게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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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지독한 교통사고로 80 여일만에 의식을 회복하고 2006년 휠체어에 의지한 채 하프 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최종 목표로 설정 후 만 3년만에 병원치료를 스스로 마치고 '자가재활'을 하며 마라톤을 가열차게 준비중인 전주시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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