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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는 1억 원 빚쟁이가 됐다

[영주씨의 1억원 ①] 피해자 지적장애인 통장에서 전방위 인출... 결국 가족이 신고

등록 2020.10.23 13:06수정 2020.10.2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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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씨의 카드이용금액이 7월에서 8월사이에 급증해 약 1600만원에 달한다. 대출원금은 10월 20일 기준 6000여만원. ⓒ 김영주씨 휴대폰 갈무리

 
2020년 8월 21일. 200만원, 600만원, 다시 200만원. 김영주(가명, 33)씨의 통장에서 현금출납기(CD)를 통해 총 세번에 걸쳐 하루에 1000만원이 인출됐다. 8월 월급 200여만원과 카드론 800만원이 더해진 금액이었다. 이날 이후 20여차례 돈이 더 빠져나갔다.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보험해지와 추가대출, 휴대폰 소액결제까지. 영주씨에게 1억여원의 빚이 생겼다.

"대출이 뭔지 알아?"..."몰라"

'영주가 이 돈을?' 통장정리를 하던 김영주씨 어머니 이미옥(가명)씨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씨는 인지정도 49의 지적장애인 딸이 그랬을리 없다고 확신했다. 처음에는 은행의 착오인가 싶었다. 아니었다. 거의 매일, 많으면 하루에 세번까지 영주씨의 통장에서 돈이 계속 빠져나갔다. 매달 넣던 보험은 해지됐고(1930만원), 예전에 가입했던 주택청약부금을 통해 대출(280만원)을 받기도 했다. 돈은 입금되면 바로바로 빠져나갔다. 계좌이체 목록에 꾸준히 한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 우선호(가명).

"영주야, 너 대출이라는 걸 받았어. 너 대출이 뭔지 알아?"
"몰라."
"네 통장에서 우선호라는 사람에게 돈이 입금됐어, 그건 알고 있어?"
"모르는데."
"영주 휴대폰으로 영주가 다 계좌이체 한 거야?"
"아니."
"카드 현금서비스도 받았어, 이거 어떻게 했어?"
"가져갔어."


영주씨의 오빠 김상민(가명)씨가 영주씨를 붙잡고 물었다. 영주씨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병원에서 인지정도를 검사하며 '사자와 호랑이의 차이점은 뭐야?', '혓바닥과 코의 차이점은 뭐야?'라고 물으면 '몰라'라고 대답한 영주씨였다. 무언가 반복하며 가르쳐주면 곧잘 따라하지만 보험을 해지하고 카드론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병원의 판단도 비슷했다. 지난 12일 병원에서는 영주씨가 '판단능력, 논리적 사고력, 현실검증능력 부재로 정상적인 사회생활, 경제생활, 계약이 불가하다'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영주씨 이름의 신용카드가 4개가 만들어졌다. 영주씨는 오빠 상민씨에게 "전화로 신용카드를 신청해 발급받았다"라면서 "신용카드 중 2개를 우선호에게 줬다"라고 말했다. 카드의 총 결제금액은 1600만원에 달했다. 현금서비스, 카드론으로 생긴 빚은 6000여 만원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영주씨 명의의 휴대폰이 4개였다. 각 휴대폰에서 소액결제 된 금액이 100만원이 넘었다. 마이너스 통장도 개설됐다.

김상민씨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총 1억원 정도 빚이 생긴거 같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금액도 있을거 같아 가슴이 조여온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영주씨는 어떻게 1억여원의 빚을 지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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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부터 9월 10일까지 20여차례 영주씨 통장에서 우선호에게 입금된 내역. ⓒ 김상민


"갑자기 회사를 그만뒀다"

영주씨 부모님이 통장정리를 통해 사건을 인지한 며칠 후, 영주씨가 10여년 간 일한 물류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영주씨의 직장상사는 '요즘 영주가 주말에 다단계 관련 물류센터에 아르바이트하고 있는데, 인력업체 관계자와 친하게 지낸다', '좀 자세히 알아봐야 할 거 같다'라는 말을 전했다.

영주씨는 인지에 어려움이 있지만, 무언가 배우면 잘하는 사람이었다. 10년간 물건을 분류해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사회성은 부족했다. 오래 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거나 깊은 관계를 맺은 친구가 없었다. 통근버스로 집과 직장을 오가는 게 전부였다. 오빠 상민씨는 "영주는 초중고 내내 왕따였고, 회사 다닐 때도 친구가 없다고 집에 와 울곤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누군가 자기에게 친절하게 하면, 마음을 확 주며 좋아했다"라고 설명했다.

영주씨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소문이 돌았다. 물류센터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어느 날 영주가 목걸이를 보여주면서, 오빠가 사줬다고 자랑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하더라"라고 했다. 이어 "10년 간 일하면서 별문제 없었는데,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 놀랐다"라고 말했다.

영주씨는 회사를 그만뒀다. 가족들은 회사의 전화를 받고서야 영주씨의 퇴사를 알았다. 가족들은 영주씨를 달래보기도 하고 속상한 마음에 화를 내기도 했다. 결국 가족들은 용인동부경찰서에 우선호를 사기죄(제347조), 준사기죄(제348조)로 고소했다. 영주씨는 입을 다물었다. 영주씨는 "오빠(우선호)가 다른 장애인이 월세가 없어 고생하니 500만원 빌려주라고 해서 빌려줬던거 밖에 없다"라고 했다. 총 1억여원의 돈이 거래된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오빠한테 뭐라고 하면 안된다"라고 울었다고 한다. 

지난 9일, 영주씨를 지켜보던 상민씨가 잠깐 다른 방에 간 사이 영주씨가 집을 나갔다. 경찰에 가출신고를 하고 12일에 영주씨를 찾았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40분 거리에 있는 오산시에 있다고 했다. 우선호의 사무실 주소와 가까운 곳이었다. 그사이 새로운 휴대폰이 또 개통됐다. 가족들은 영주씨 명의의 모든 휴대폰을 정지시켰다. 16일 오후, 다시 집을 나간 영주씨를 17일 찾았다. 영주씨는 경찰에 "오빠(우선호) 자취방에 있었다"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애인 사기사건의 종합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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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호가 김영주씨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우선호는 영주씨의 퇴직금 날짜를 확인했다. 김영주씨의 은행 어플도 직접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대화 내용도 보인다. ⓒ 김영주씨 카카오톡 갈무리

 
사실 영주씨가 겪은 일은 드문 일은 아니다.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사기사건은 언론에 매달 기사가 나올 정도다. 지난 5일, 경기 파주경찰서는 지적장애가 있는 친구의 명의를 빌려 차를 사고 되팔아 돈을 챙기려 했던 20대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창원지법은 지적장애인에게 1000만원을 뜯어낸 20대 남성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4월 제주동부경찰서는 지적장애인 7명에게 휴대폰 소액결제 등을 이용해 1600여 만원을 가로챈 이를 구속했다.

지적장애인은 본인이 겪은 일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영주씨는 휴대폰 소액결제부터 신용카드, 대포폰까지 여러 사기사건이 얽혀있다, 장애인에게 벌어지는 사기사건의 종합세트인 셈"이라고 말했다.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이를 상대로 한 그루밍 (Grooming·길들이기) 범죄라는 시각도 있다. 17일 집에 돌아온 영주씨가 카카오톡으로 우선호와 나눈 이야기를 살펴보면, 우선호가 상세하게 지시하고 영주씨가 이를 따르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메시지에서 우선호는 영주씨의 퇴직금 입금 날짜를 확인하고, 이를 은행에 가서 물어보게 했다. 영주씨의 카카오뱅크와 신한은행 어플이 안된다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이 대화에서 우선호는 영주씨를 '자기'라고 칭했다. 

우선호씨는 19일 기자가 "영주씨의 통장에서 본인 통장으로 돈이 20차례 입금됐다,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지금 할 말 없다"라고 답했다. 그는"아직 경찰에 연락받은 게 없지만, (연락이 오면) 경찰에 말하겠다"라고 했다. 

18일 영주씨를 면담한 김성연 사무국장은 <오마이뉴스>에 "우선호가 영주씨에게 아주 상세하게 지시를 했다, 우선호를 많이 좋아하는 영주씨는 이를 거절하지 못했다"면서 "그루밍 범죄로 볼 수 있지만, 아직 영주씨는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짚었다.

이 때문에 피해당사자인 장애인을 대신해 가족이 경찰에 고소대리인으로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접수된 사안이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경찰에 제출해야 할 서류를 준비하다 자포자기하는 경우도 있고, 고소까지 진행하지 못한 채 피해를 떠안는 경우도 있다. 김 사무국장은 "장애인 대상의 사기범죄는 늘어나고 있는데, 대응책은 부실하다"라면서 "경찰의 도움이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영주씨와 오빠 김상민씨는 23일 오후 경찰에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는다. 김씨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여전히 영주는 자신이 피해자인 걸 모른다, 우선호씨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하고 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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