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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악마가 살아" 성폭행 공무원의 변명

[지방공무원 성비위 분석 ③] 절반 가까이가 내부 성비위... 법정에서야 심판 받은 2차 가해

등록 2020.10.20 18:14수정 2020.10.2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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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이은주 정의당 의원과 함께 '2015~2020년 지방공무원 성비위자 징계현황'을 분석했다. 지방공무원 성범죄 판결문 20건도 들여다봤다. 성추행이나 성폭행, 성매매 심지어 근무 시간에 불법 촬영까지 일삼았던 그들의 성비위를 몇차례에 걸쳐 공개한다. 이 기사는 그 세 번째다.[편집자말]
"내 안에 악마가 살고 있더라."

그 사건이 있고 난 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보낸 문자였다. 두 사람은 같은 곳에서 근무하던 지방 공무원이었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성폭행을 저질렀다.

사건 후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일체의 접근이나 연락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전화를 걸었다. 문자도 보냈다. 용서해달라고 했고 미안하다고도 했다. 

재판이 열렸다. 앞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했던 가해자는 "피해자와 합의하여 성관계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의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도 않고 있다"면서 가해자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지방공무원 성비위 중 절반 가까이가 내부에서

이런 범죄가 지방공무원 조직 안에서 적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은주 의원(정의당, 비례)이 17개 광역지자체로부터 제출받은 '2015년∼2020년 지방공무원 성비위자 징계현황' 중 징계 처분 요지가 비교적 명확하게 나타나있는 301건을 대상으로 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135건(44.9%)이 내부 성비위였다. 징계 처분 요지에 '직원 간 성희롱', '동료 직원 성추행', '여직원 신체 접촉', '회식 후 성폭행' 등으로 명시된 경우를 합계한 결과다. '성매매'나 '공공장소 성추행' 등 징계 처분 요지를 감안하여 외부 성비위로 분류한 경우는 166건(55.1%)이었다. 절반에 가까운 성비위가 공무원 조직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지방공무원 성범죄 판결문을 확보해 분석한 결과와도 비슷했다. 20건 중 11건이 내부 성비위였다. 피해자 중에는 17세 밖에 안 되는 아르바이트생, 18세 계약직 직원도 포함돼 있었다. 피해자의 평균 연령은 27.9세였다. 가해자 중에는 6급 또는 팀장으로 판결문에 명시된 경우가 절반을 넘었다. 몇 년에 걸쳐 여러 부서 팀장을 역임하면서 자신의 하급자 여러 명을 성추행한 가해자도 있었다. 

여성가족부 의뢰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조사한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를 입은 당사자 가운데 25.2%가 '성희롱 등 2차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또한 2차 피해 유형으로는 '주변에 성희롱 피해를 말했을 때 공감이나 지지 받지 못하고 의심 또는 참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21.7%)', '부당한 처우에 대한 암시,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발언 등으로 성희롱을 축소 또는 은폐하려 했다(11.3%)', '기관장이나 상급자가 조사 과정에서 행위자 편을 들거나 불공정하게 진행하였다(8.4%)', '비밀 보장에 소홀하거나 일부러 공개하여 피해자의 신상이 공개되었다(5.7%)' 순이었다.

"피고인이 공직에 머물며 권한을 행사하는 자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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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혁신처에서 2016년 발간한 공무원 징계 사례 자료집 이미지. ⓒ 인사혁신처

 
- 2014년 6월 : 노래방에서 팀 소속 8급 공무원에게 "춤을 추자"며 가슴이 밀착되도록 끌어안음.
- 2015년 9월 : 노래방에서 팀 소속 피해자를 끌어안고 피해자의 볼에 뽀뽀함.
- 2016년 1월 : 팀 소속 피해자에게 "귀엽다"면서 피해자 볼을 꼬집음.
- 2016년 7월 : 팀 소속 피해자의 팔뚝 안쪽 살을 흔들면서 "여자들은 여기가 다 말랑한가"라고 말함.
- 2017년 9월 : 노래방에서 팀 소속 8급 공무원 엉덩이를 침. 3주 후 앞선 강제추행을 언급하며 "실수가 아니었다"고 말하며 피해자의 엉덩이를 3회 치고, 피해자의 허리를 끌어안고 블루스를 춤.

가해자는 경기도의 한 시청에서 2014년 A팀 팀장으로 있었다. 같은 팀 하급자를 성추행했던 그는 2015년 B팀으로 옮겼다. B팀에서 2명의 성추행 피해자가 다시 발생했다. 가해자는 2016년 C팀 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팀에서 또 한 명이 성추행당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D팀에서 다시 성추행을 저질렀다. 그동안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조직 내부에서 제대로 이뤄졌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이 가해자는 결국 법정에 섰다. 국가공무원법상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공무원은 '당연퇴직'된다. 그는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까지 냈지만,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피고인은 자신의 범행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정년까지 남은 기간 동안 공직 수행을 탄원하고 있다. 피고인이 공직에 머물며 권한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공직사회에서의 성폭력 근절'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이 사건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2차 피해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2015년∼2020년 지방공무원 성비위 징계 547건

<오마이뉴스>는 지난 12일자 보도를 통해 "2015∼2020년 성비위 징계 지방공무원이 444명(서울특별시는 소청심사 인원만 제출)"이라고 전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지난 1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료 미제출로 질타를 받고 뒤늦게 전체 징계 현황을 의원실에 제출했다. 이에 따라 2015년∼2020년 지방공무원 성비위 징계 건수는 547건으로 최종 집계됐다. 그중 246건은 징계 처분 요지만으로는 내·외부 성비위를 가려낼 수 없었다.
 

취재 : 이주연·이정환
조사 : 홍하늘
#조직 내 성희롱 #지방공무원 성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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