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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인 내가 하는 '마음에도 없는 짓'... 대체 뭐하자는 건가

절대평가 시험, 교육개혁의 첫걸음 될 수 있어

등록 2020.10.16 07:40수정 2020.10.16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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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강원 춘천시 소양로3가 춘천고등학교에서 3학년생들이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를 치르고 있다. ⓒ 연합뉴스

 
학교마다 중간고사가 한창이다. 이 와중에 등교일은 학년별로 들쭉날쭉하지만, 어떻게든 시험은 나와서 치러야 한다. 고1의 경우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능을 앞둔 고3과 예비 수험생 고2 선배들에게 밀려 내내 원격수업을 해오다 등교일에 시험만 치르고 다시 원격수업으로 전환되곤 했다.

원격수업이 이어지면서 성적의 양극화가 극심해졌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이는 코로나로 교문이 닫히기 전부터 이슈화된 문제라 그다지 새삼스럽진 않다. 부모 세대의 경제적 양극화가 고스란히 자녀의 성적에 반영된다는 건, 조사 결과 들먹일 필요 없이 이미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아닌가.

원격수업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소수의 상위권과 공부는커녕 삼시 세끼 밥 챙겨 먹는 것조차 고단한 다수의 하위권 아이들. 그 숫자와 분포는 우리나라 가계별 소득 분포 그래프와 데칼코마니처럼 겹친다. 원격수업이 장기화하면서 그 격차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뿐이다.

시험에는 주연과 조연이 있다. 주연은 교사가 시험 출제에 있어서 각별하게 신경 쓰는 아이들을 가리키고, 시험이 어떻게 나오든 무관심한 대다수의 아이들이 곧 조연이다. 주연은 소수점까지 따져가며 자신의 점수를 살뜰히 챙기는 반면, 조연은 자기가 몇 점을 맞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말이 좋아 조연이지, 그냥 들러리다.

이처럼 양극화가 점점 뚜렷해지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학업성적 관련 규정은 9등급 상대평가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4%, 11%, 23% 등을 기준으로 아이들을 가르고 고르게 분포시켜야 하는 게 일선 교사의 의무다. 동점자가 많아 등급 기준을 초과하면 아래 등급을 받게 되니, 사실상 출제 교사의 불찰로 아이들이 피해를 떠안게 되는 징벌 규정인 셈이다.

9등급제, 바꿀 때 됐다

하여 교사는 '마음에도 없는 짓'을 하게 된다. 학습 목표와도 무관하고,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시시콜콜한 문제를 내서 아이들을 골탕 먹이는 것이다. 이른바 '비틀기와 꼬기 신공'이다. 그나마 용하게 맞히는 아이들이 있으니 다행이지만, 이게 대체 뭐 하자는 건가 싶어 입맛이 쓰다.

알짜배기 문제를 간추려 쉽게 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이유다. 학습 목표는 이내 무력화하고, 시험에 교육과정이 철저히 종속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몇 해째 입시 전형을 두고 학종과 수능 사이에 갑론을박 하고 있지만, 만신창이가 된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은 늘 뒷전이다.

교과를 불문하고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것이 공교육 정상화와 교육 개혁의 첫 단추라는 게 개인적인 지론이다. 서열을 매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백년하청일 테지만 말이다. 실상 온존한 학벌 구조와 상대평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친구는 사라지고 경쟁자만 남은 교실,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전쟁터인 학교는 상대평가 방식의 시험을 통해 완성됐다. 지금은 100점을 맞아도 소용없다. 오로지 1등이거나 1등급이어야 한다. 현행 9등급 평가 방식에서 100점을 맞은 학생 수가 4%를 넘으면 1등급은 사라진다.

100점이 아니더라도 동점자 수가 많으면 불리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슷한 성적의 친구들을 아래로 밀어내거나, 우격다짐일지언정 소수점 단위의 부분 배점이라도 얻어내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 해가 갈수록 시험 문제의 오류 시비가 빈번해지는 이유다.

시험 문제의 오류 시비는 최상위권 아이들끼리의 점수 경쟁이 도를 넘어 살벌해지고 있다는 징표다. 서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악다구니 쓰는 모습이 당황스럽다. 고학력을 앞세운 학부모가 가세하기도 하고, 외부 학원 강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전선이 무장 확대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거칠게 말해서, 오류 시비는 대부분 해당 교과 지식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꼬투리 잡기인 경우가 많다. 오탈자와 같은 출제 교사의 작은 실수조차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려는 얄팍한 술수다. 그 한 문제로 등급이 바뀌는 경우라면,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식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가 점점 이해타산에 좌우되는 거래 관계로 전락해가는 느낌이다. 자신의 대학 진학에 보탬이 되면 깍듯하게 모시고, 아니라면 소 닭 보듯 하거나 매몰차게 대한다.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오로지 대학 진학을 교육의 유일한 목표로 설정한 학교가 자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둘러 합격과 불합격을 판정하는 방식의 절대평가가 도입되어야 한다. 이야말로 교육의 본령에도 충실하고, 대학에서의 수학 능력을 확인한다는 수능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당장 시행이 어렵다면 등급 구간을 줄이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 9등급보다는 5등급이, 5등급보다는 3등급이 낫다는 이야기다. 현재도 수능 출제 과목이 아닌 진로 선택 교과는 3등급으로 평가되고 있다. 내신 성적을 15등급으로 세분하던 방식에서 과도기를 거쳐 현행 9등급제로 바뀐 게 벌써 15년 전이니 이제 손볼 때도 됐다.

그럼 대학 합격자는 무슨 수로 가리느냐는 항의가 빗발칠 터다. 이어 학벌 구조가 온존한 현실을 무시한다는 조롱을 감수해야 한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터라 새삼스럽진 않지만, 그때마다 답변 대신 이렇게 되묻곤 한다. 물론, 벽에다 이야기하는 느낌이지만.

"오로지 점수와 등급으로 줄 세우는 게 능사일까? 아이들을 촘촘하게 갈라놓고 상위권 대학부터 순서대로 거두어가도록 돕는 게 교사의 역할인가? 대학은 수능 점수와 고등학교가 제공하는 '소설책' 생활기록부 말고 지원자의 잠재력을 간파해낼 수 있는 역량이 있기나 할까?"

학교라는 '설국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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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강원 춘천시 소양로3가 춘천고등학교에서 3학년생들이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를 치르고 있다. ⓒ 연합뉴스

 
말이 난 김에, 요지경인 시험 출제 과정을 고백해야겠다. 기업이라면 '영업 비밀'이고, 거창하게 말하자면 '천기누설'이다. 교사라면 누구나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렸을 테지만, 지금은 익숙해진 탓인지 한숨 한 번 내쉬고 말 뿐이다. 건의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닐뿐더러 이런 일이 어디 시험뿐이겠냐는 거다.

시험 기간이면 교사가 챙겨야 할 목록이 한둘 아니다. 흔히 출제한 시험지만 덩그러니 제출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출제 원안과 함께 교과별 협의회 회의록과 채점 기준표와 문항 정보표, 분할점수표, 분할점수 회의록 등이 첨부되어야 한다.

사전 교과별 협의회는 출제할 때 주안점과 유의점을 동료 교사들끼리 공유하고, 출제 후 오류 시비를 예방하기 위해 상호 교차 검토를 하는 자리다. 모범 정답과 부분 배점 부과 여부도 면밀하게 살펴본 뒤 난이도 조정을 거쳐 채점 기준을 설정하고 결재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기까진 9등급 상대평가에 대비하고 오류 시비를 차단하기 위한 절차로 늘 해오던 일이다. 얄궂은 건, 분할점수와 급간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별도의 회의를 하고 분할점수를 산출한 뒤 보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솔직히 이건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교사가 태반이다.

분할점수란, 수업과 시험 출제를 담당하는 교사가 자체적으로 정한 절대평가의 기준을 말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본격 시행되고 성취평가제가 도입되면서 생겨난 절차다. 이는 교사별 수업 내용과 직접 연계된 과정 중심 평가를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서열을 매기는 경쟁 위주의 상대평가에서 벗어나 개인별 학업 성취도를 중시하겠다는 것으로, 2025학년도 전면 시행을 앞둔 고교학점제의 평가 방식으로 활용된다. 예정대로라면, 기존의 석차 등급과 표준편차 등은 생활기록부에 기록할 수 없게 된다. 절대평가 방식으로의 대전환을 앞둔 셈이다.

하여 교사들은 머리가 복잡하다. 시험은 상대평가 방식으로 출제하고, 서류는 절대평가 방식으로 꾸미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학부모 대다수는 분할점수의 의미는커녕 성취평가제의 취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분할점수 산출 등이 요식행위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어정쩡한 '동거'를 교육 당국이 모를 리 없다.

이렇듯 교사들조차 교육 정책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마당이니,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학교를 믿어달라고 요구하기도 적이 민망하다. 교육 주체들 간 상호 신뢰가 사라진 학교는 상품이 거래되는 시장만도 못한 공간이 되었다. 사교육이 공교육보다 낫다는 인식은 그 결과다. 어차피 사교육은 애초 학교가 아닌 시장이었으니까.

솔직히, 기존의 선다형 위주의 상대평가 시험으로 아이들의 적성과 재능, 열정 등을 파악해낼 수 없다. 정원은 적고 지원자는 많다 보니, 공정하게 여겨지도록 선발하는 절차일 뿐이다. 하등 쓸데없는 지식을 욱여넣는 시간과 노력을 제외한다면, 제비뽑기와 별반 다를 것도 없다.

교과마다 학습 목표와 성취 기준이 제시돼 있다. 그 목표와 기준을 달성했다면, 교육이 제대로 이뤄진 것이다. 그다음은 대학의 몫이다. 현행 9등급의 상대평가 방식이 교육의 본령을 훼손하고 있다면, 방식을 고치는 게 옳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도록 방치해서야 되겠는가.

사족 하나. 나는 사람들 앞에서 고등학교의 현실을 종종 영화 <설국열차>에 비유한다. 반복되는 시험을 통해 꼬리 칸에서 머리 칸으로 올라서려는 처절하고 맹목적인 몸부림. 그것을 아이들이 으레 겪어야 할 성장통이자 숙명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방관하고 있는 우리가 주범이다.

학교가 신분 상승을 위한 사다리이기는커녕 지위 세습을 공고히 해주는 장치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다. 머리 칸은 꼬리 칸의 아이들이 영원히 다다를 수 없는 유토피아다. 영화 속 결말처럼 문을 부수고 열차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관련 기사] 고등학교 시험문제 오류 시비, 이렇게 무섭습니다 http://omn.kr/1p4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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