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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의 충격 변신엔 이유가 있었다

[영화 리뷰] <소리도 없이>

20.10.09 09:55최종업데이트20.10.0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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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소리도 없이> 포스터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소리도 없이>는 배우 유아인의 독특한 변신으로 시선을 끌었다. 머리를 삭발하고 살을 찌운 그가 말 한 마디 없는 범죄 조직 하청의 시체 수습자 역을 맡았다. 작품을 보고 나면 왜 유아인이 이런 외형적인 변화를 주고자 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가 연기하는 태인은 마치 <정글북> 속 모글리나, <행복한 라짜로>의 라짜로처럼 현대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인물이다.  

작품은 도입부부터 섬뜩한 장면을 다소 코믹하게 묘사한다. 태인과 창복(유재명 분)은 트럭을 통해 계란 장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태인은 얼굴을 창문에 붙이고 잔다. 다음 장면에서 두 사람은 독특한 우비를 입고, 바닥에 비닐을 깐다. 그 위에는 한 남자가 밧줄에 묶인 채 피를 흘리고 있다. 트럭은 시체를 옮기는 수단이었고, 이런 노동(?) 때문에 태인은 지쳐 잠을 청했던 거다.    

 

<소리도 없이> 스틸컷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이들의 단골손님인 범죄 조직 실장 용석은 두 사람에게 독특한 부탁을 한다. 11살 초희를 며칠 간 맡아달라는 것이다. 돈을 받을 때까지 초희를 맡게 된 창복은 태인에게 초희를 맡긴다. 문제는 다음이다. 하필 용석이 조직의 제거대상이 되면서 초희 문제를 두 사람이 처리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태인이 초희에게 애정을 지니게 된다는 설정은 뻔한 전개다. 블랙코미디의 색을 바탕으로 감동 드라마를 펼치려는 건가.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독특함은 태인과 초희의 설정에서 온다. 태인의 집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다. 옷은 아무데나 버려져 있고, 태인의 동생은 그런 옷 아래에서 씻지도 않고 TV를 보거나 잠을 잔다. 태인의 동생이 오빠가 도착하자마자 밥을 달라고 하고, 식사 후 바로 함께 잠을 청하는 장면은 먹고 자는 게 삶의 전부인 그들의 일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삶이 가능한 건 태인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어떠한 사유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소리도 없이> 스틸컷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인 사유는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태인은 동생에게 예절을 가르치고, 자신에게 애정을 보이는 초희를 통해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초희는 첫 등장 때 기괴한 토끼 가면을 쓰고 있다. 이 가면은 초희가 보여주는 모습이 진실 되지 않을 것임을 상징한다. 초희는 초등학생이지만 세상에 대해 잘 안다. 그래서 유괴를 당한 시점부터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지 고민한다. 초희는 살아남기 위해 태인에게 잘 보이고자 한다.

  

<소리도 없이> 스틸컷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초희는 생존경쟁에 익숙하다. 그래서 미소라는 거짓된 가면으로 호감을 사고자 한다. 태인이 덫에 빠지는 대상이 초희라는 점은 제목이 지닌 의미를 강조하는 것 같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이 아닌 내부에서 '소리도 없이' 그의 일상을 무너뜨리니 말이다.  

태인은 짐승 같던 삶에서 벗어나 사유와 애정을 느끼지만 이 깨달음은 그를 위협하고 만다. 블랙코디미의 카타르시스라 할 수 있는 비극을 강화한다. 어쩌면 올해 정신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소리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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