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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생활 중 가장 무서웠던 것은 공습과 '늑대 울음소리'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제3부 소년의 꿈 (4)

등록 2020.10.19 09:39수정 2020.11.0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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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초기 낙동강 유역의 고달픈 피난민 행렬로 온갖 가재도구를 남자는 지게로 여자들은 머리에 인 채 나르고 있다(1950. 8. 24.) ⓒ NARA / 박도

 
6·25전쟁이 일어나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날 때 나는 여섯 살이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인민군들은 쓰나미처럼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해 7월 하순에 인민군은 경상도 진주, 김천, 상주, 함창, 영덕에 이르는 선까지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인민군은 그해 8월 15일 내로 부산까지 밀고 내려간다고 장담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개전 초부터 전황을 사실대로 백성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 백성들은 인민군 진주 직전이거나 진주한 이후에야 피란을 떠났다.
 
구미에 살았던 우리 가족은 1950년 7월 하순 어느 날 북쪽 김천 방면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피란민들의 행렬을 보고, 인민군들이 '쿵쿵' 쏘아대는 대포 소리를 들으면서 허겁지겁 피란봇짐을 쌌다. 첫째, 둘째 고모 네도 이웃에 살았다. 그런데 우리 집에만 소가 있었다. 그래서 세 가구의 피란 큰 짐을 모두 우리 집 소달구지에 실었다.
 
그 무렵 우리 집은 선산경찰서와 가까운 곳으로, 바로 앞집 건넌방에는 신혼 순경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 순경이 전날 출근한 이후 집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국군을 따라 허겁지겁 남쪽으로 후퇴했다.

홀로 남은 경찰관 부인 성주 댁은 피란봇짐을 이고 징징 울면서 우리 집으로 와서 통사정하기에 할머니가 그를 받아주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 피란행렬은 네 가구로 모두 열다섯 식구였다.
 
이미 남쪽으로 가는 열차는 모두 끊긴데다가, 신작로에는 피란민으로 가득 찼다. 우리 가족도 어쩔 수 없이 큰 짐은 소달구지에 싣고, 소소한 짐을 남자들은 지게에 지고 여자들은 머리에 인 채 낙동강을 건너 남녘으로 피란하고자 약목 쪽으로 갔다. 하지만 낙동강 일대를 지키던 인민군들에게 혼쭐났다.
  

미 공군 전투기가 수물자를 실은 열차에 맹렬한 폭격을 가하고 있다(1951. 흥남). ⓒ NARA / 박도

 
미 공군 전투기 공습
 
"남조선 인민들, 미제 쌕쌕이(폭격기)한테 불벼락을 만나기 전에 날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우."
 

그 말에 우리 가족은 하는 수 없이 낙동강을 바로 코앞에 두고 발길을 돌렸다. 우리가 광평동 사과밭으로 되돌아 올 무렵 미 공군 미 공군 F-86 세이브(일명, 쌕쌕이) 공습을 정면으로 받았다. 그러자 우리 가족들은 소달구지와 함께 과수원으로 가서 숨었다.
 
남자 어른들은 사과나무에 올라 마치 매미처럼 나무둥치를 껴안았고, 부녀자들과 아이들은 사과나무 그루터기 사이의 콩밭에 납작 엎드려 공습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나는 그때 미군 전투기의 무서움은 전혀 몰랐다. 그 제트기를 보려고 콩밭에서 일어나다가 할머니에게 뒤통수를 쥐어 박혔다.
 
한 30분 정도 공습이 끝나자 여기저기 피란민 시신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우리가족은 과수원에 숨은 탓으로 무사했다. 우리 가족은 소달구지와 가재도구를 다시 챙겼다. 그리고는 그 길로 금오산 오른편 골짜기인 선기동 윗마을인 자갈 터 마을로 갔다. 하지만 북쪽에서 워낙 많은 피란민들이 그 마을에 넘쳐 이미 빈방들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하는 수 없이 선기동 덤바우 마을 냇가에다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열다섯 식구 가운데 아이들은 절반이었고, 내 또래가 셋이었다. 어른들은 난생처음 당하는 피란생활로 무척 힘들었을 테다.
 
하지만 우리 조무래기들은 피란이 뭔지도 몰랐다. 마치 야외 캠핑을 하는 듯, 낮이면 시냇가에서 피라미를 잡거나 감자를 구워먹는 등, 마냥 즐거웠다. 그러다가 비행기 소리만 나면 솔개 소리에 놀란 병아리처럼 잽싸게 토굴 속으로 달려갔다. 그런 뒤 토굴 속에서 벽에 머리를 박고 공습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미 공군 F-86 전투기가 출격 준비를 하고 있다(1951. 6.). ⓒ NARA / 박도

 
무서웠던 늑대의 울음소리
 
그때 미 B-29 폭격기들은 폭탄을 잔뜩 싣고 와서는 아무데나 마구 주르르 쏟았다. 이는 마치 염소가 똥을 싸는 것처럼. 6·25전쟁 기간 중 낮은 미군 폭격이 가장 무서웠다. 또한, 피란지에서 밤이 되면 늑대 울음소리에 무서워 벌벌 떨었다.
 
실제로 그 무렵에는 늑대나 여우들이 산야에 득시글거렸다. 어른들은 밤이 되면 아이들을 한가운데 몰아 자게 한 뒤 사방으로 돌아누워 잤다. 그래도 불안하여 할아버지나 고모부는 행여 아이들이 늑대에게 물려 갈까봐 모닥불을 피우며 불침번을 섰다.
 
아침에 일어나면 냇가에서 지내던 이웃 피란민 가운데 어린아이를 늑대에게 잃었다는 소문도 들렸다. 6.25 전쟁은 사람뿐 아니라 야생 짐승들도 수난을 당했다. 전쟁 이후에는 늑대나 여우와 같은 짐승들은 이 땅에서 사라져 버린 듯하다.
 
우리 조무래기들은 감자가 떨어지자 논에서 메뚜기나 방아깨비를 잡아 냇가에서 구워 먹기도 했다. 그래도 허기를 메울 수 없자 사촌 형이나 누나를 따라 앞산 기슭 덕뱅이 마을로 갔다.
 
그 마을에는 감나무가 많았는데 저절로 떨어진 풋감을 주워 먹었다. 그 풋감을 많이 주워 먹은 다음 날은 똥구멍에서 똥이 나오지 않아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 어른들은 나무꼬챙이로 아이들 똥구멍을 후벼 팠다. 그 순간에는 너무나 아파 다시 풋감을 먹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뿐이었다.
 
할아버지나 고모부는 아이들 보호 못지않게 미혼인 고모나 사촌누나의 보호에 무척 신경을 썼다. 고모나 사촌누나는 피란생활 내도록 허름한 몸뻬(왜바지) 차림에 수건을 써서 나이 든 여자로 위장했다.
 
이따금 밤이면 총을 든 인민군이나 치안대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피란민 잠자리로 찾아와 전짓불로 사람의 얼굴을 비추면서 혹 피란민 속에 군인이나 경찰관이 숨어있는지 살폈다.
  

전투기 공습 후 쓰러진 피란민들(1950. 8. 25.). ⓒ NARA / 박도

 
복실이 이야기
 
어느 하룻밤 그들이 우리 가족의 숙소로 접근했다. 그러자 피란길에 같이 따라나선 둘째 고모네 암캐 복실이가 마구 짖었다.
 
"이 X놈의 개새끼!"
 
그들은 마구 짖어대며 덤비는 복실이를 향해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깨갱!"
 
복실이는 비명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날이 샌 뒤 언저리를 살펴보니 자갈터마을 쪽으로 핏자국이 보였다. 그 핏자국은 점차 작아지더니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사촌형과 누나는 "복실아!"라고 외치며 핏자국 방향의 마을인 자갈터와 수점골 등을 한나절 찾아 헤맸다. 하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저녁 한밤중에 복실이가 다리를 절름절름 절면서 우리 가족 잠자리로 찾아왔다. 우리 가족 일행은 낑낑거리는 복실이를 번갈아 안아주면서 반가워했다. 그의 뒷다리는 총알이 스쳐간 듯 그새 피로 엉겨 있었다. 고모는 이불 호청을 찢고는 그 천으로 복실이의 뒷다리 상처를 감아주면서 말했다.
 
"아이고, 우리 복실이 찾아줘서 고맙다."
 
그러자 복실이는 꼬리를 마구 흔들며 끙끙거리면서 고모에게 안겼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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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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