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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전두환이 유죄인 명백한 이유

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혐의 기소 전씨 결심 공판, 5일 오후 열려

등록 2020.10.05 10:45수정 2020.10.0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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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전두환씨가 23년 만에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피고인 신분으로 형사재판을 받고 결심 공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전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고소 대리인인 김정호 변호사의 의견서 중 일부 내용을 김 변호사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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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 사실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두환씨가 지난 4월 27일 오후 전남 광주지방법원에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전두환 측이 변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헬기사격을 포함한 헬기작전을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련기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전두환 신군부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군 기록을 삭제하고, 위·변조했기 때문에 군의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현재 확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안사가 비밀리에 관리한 5·18 존안 자료와 2018년 국방부 5․18 헬기사격 특조위 조사과정에서 확인한 511연구위원회 내부문서를 통해서는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

또한 구체적으로 1980. 5. 21. 오전 10시에 506항공대 소속 500MD 무장헬기 2대가 광주로 출동했다는 사실 등은 전두환 신군부가 1988년 국회 광주 청문회에 공식적으로 제출하거나 군이 보관하고 있는 일반적인 군 기록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지만, 1988년 국회 광주 청문회 대응 조직으로 결성한 '511연구위원회의 내부 검토'와 보안사의 일일속보 등의 당시 상황을 시간대별로 정리하였거나 군 내부의 민감한 문제까지를 검토하고 분석한 비밀문서에는 조비오 신부 등 다수의 시민들이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1980. 5. 21. 오후 광주에는 헬기사격이 가능한 무장헬기가 배치되어 운영 중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점,

1980. 5. 21. 08:00 진돗개 하나 발령 이후 실탄의 분배와 이에 따른 사격, 20사단 전남도청 진입을 위한 공중기동작전의 실시 과정에서의 1980. 5. 21. 오후 헬기사격이 이뤄진 정황이 충분한 점,

헬기탑재무기의 실탄 불출, 재보급, 소모(사용)사실이 31항공단 탄약관리하사 최종호의 법정증언과 무장을 인정한 103항공대장 이정부의 진술, 탄약 재보급관련 군 문서, 탄약 사용 후 탄약 소모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한 전교사의 소요사태교훈집을 통해 확인되는 점,

5․18민주화운동기간 동안 헬기사격을 목격한 여러 사람들의 신빙성 있는 증언이 존재하는 점,


1980. 5. 27 헬기사격을 증명하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인 전일빌딩 탄흔에 대한 국과수 감정결과가 있는 점 등에 비추어, 5.18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고, 1980. 5. 21.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피고인 전두환이 주장하고 있는 전두환 회고록의 기재 내용과 같이 고 조비오신부의 헬기사격 목격 진술이 거짓말이라고 단정할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따라서 피고인 전두환은 전두환 회고록에서 1980. 5. 21.을 특정하여 헬기사격이 없었다고 기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기간을 전혀 특정하지 않고 5․18민주화운동 전체기간 동안 단 한 발의 헬기사격도 없었다는 취지로 기재하고 있고, 1980. 5.경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한 헬기사격은 항쟁기간 중 여러 차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고 조비오 신부는 전일빌딩에 대한 헬기사격을 포함한 복수의 전체 헬기사격 상황 중 1980. 5. 21. 오후 하나의 장면을 목격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로서 1980. 5.경 5․18민주화운동 전체기간 동안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피고인 전두환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이 유죄라고 할 것입니다.

백보를 양보하여 검찰과 고소인이 1980. 5. 21.경 헬기사격 존재 사실도 입증하여야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이 사건에서 1980. 5. 21.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사실도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할 것이어서, 피고인 전두환의 이 사건 공소사실은 어느 모로 보나 넉넉하게 유죄로 평가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민주주의의 방해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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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 사실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두환씨가 4월 27일 오후 전남 광주지방법원에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마치고 부인 이순자씨와 경호를 받으며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 이희훈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전두환이 출석했던 2번의 법정풍경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처지와 입장이 뒤바뀐 아이러니 상황이기도 합니다.

피고인 전두환은 이 사건 법정에서 시민들이 힘겹게 이룩해 놓은 민주주의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며 뻔뻔한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출석하지도 않고 변호인을 통해 재판을 받고 있고, 반면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에도 절제를 강요받으며 사법적 단죄만을 바라며 침묵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피고인 전두환의 배우자인 이순자는 피고인이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취지의 인터뷰를 언론과 한 사실이 있으나, 피고인에게는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표현 보다는 헌정질서를 파괴한 민주주의의 방해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후안무치한 태도는 가해자의 가장 나쁜 모습이고 피해자에게 가장 가혹한 모습이어서 민주주의 역설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것입니다.

5․18 피해자들과 광주시민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화해와 용서,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만 화해와 용서의 전제조건이 가해자의 진실에 기반한 반성과 사죄라고 강조하고 있을 뿐입니다.

가해자가 반성하지 않고 사죄를 하지 않으니 피해자들로서는 용서를 하고 싶어도 용서할 수 없는 기막힌 처지에 놓여 있는 사정을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습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그 나침반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을 것입니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 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민영규 교수 예루살렘 입성기 중에서)

어떤 현직 부장판사는 법률신문(2018. 3. 5.자)'떨리는 지남철'이라는 법조칼럼에서, 법관의 역할이 날로 증대하여 오늘날에는 법관들이 재판을 통하여 다양한 사회 분쟁에 대하여 우리사회가 나아갈 바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는 사실과 이와 같은 법관들이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상황 하에서 법관들이 주변의 상황 변화나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한편 다양한 요구의 목소리들을 경청하면서 늘 연구하고 고민하고 사색하면서 바늘 끝을 떨어야만 나침반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고 따라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취지를 밝힌 바가 있습니다.

피해자(고소인)의 대리인은 피고인 전두환에 대한 이 사건 사자명예훼손 재판이야말로 법관이 재판을 통해 우리사회가 나아갈 바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여야 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재판에 관여하는 이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실체진실을 발견하고 입증하기 위한 여윈 바늘 끝을 멈추지 않았고, 그래서 그 바늘 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을 상황이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서두에서 언급하였던 바와 같이 피고인으로 기소된 이가 최고 권력자였고 그를 정점으로 하는 관련자들의 실체적 진실을 숨기려는 과정이 없지 않았던 정황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과 같이 국가폭력으로 인한 피해가 문제되는 경우 당시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국가권력의 집권세력이 가해자이기 때문에 그 진상규명에 이르는 과정이 일반적인 형사사건에 비하여 어려운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해자가 국가권력 그 자체이거나 국가권력의 주요 구성원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처벌가능성이 있는 공적인 기록이나 자료 등 주요한 증거들을 은폐하거나 조작하였을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도 은폐와 조작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조작된 자료' 뒤에 숨겨진 '진실'을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혜안으로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에밀 졸라는 프랑스 국방부 등 국가권력에 의하여 진실이 은폐된 '드레퓌스 사건'에 격분하면서도 그 글 속에는 폭력성이나 과격성이 없고 오로지 올곧은 이성의 결정체만을 담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진실을 가두고 땅에 매장해도, 그것은 싹이 트고, 마침내 거대한 초목으로 자라난다'는 그의 말이 피고인 전두환이 기소된 이 사건의 현실의 법정에서 재판장님을 통하여 구현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전두환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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