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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

[코로나 시대에 서로를 돌보는 방법 ④] 친구의 한 마디에 시작된 '떡볶이 프로젝트' 보고서

등록 2020.09.28 09:08수정 2020.09.2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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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0일, 온라인 생중계로 2020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가 열렸습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나를 돌보며 주변을 함께 돌아보는 방법, 코로나 시대의 관계 맺기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상생과 돌봄을 말하는 5명의 강의를 연속 기고를 통해 소개합니다.

이 기사를 작성한 소금은 성북청년시민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마을에서 사람들과 복닥이며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활동가입니다. 든든한 성북 살이를 위해 청년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 같이 놀고, 이야기하고, 기획하고, 활동하며 지냅니다.[기자말]
"요즘 월세를 못 내서 보증금이 깎이고 있어."

각종 서류로 나의 절실함과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커다란 각오가 없어도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건넬 수 있다면 어떨까요?

가끔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소소한 행위만으로도 일상을 버텨낼 기운을 얻지 않나요?

코로나19로 힘들어 하는 친구의 소식을 듣고 청년 활동가 3명은 <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코로나19라는 단어가 익숙해지던 4월 무렵, 친구와 우연히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친구는 프리랜서 교육 강사였는데 코로나로 인해 강의가 없어지고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이 깎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제 마음 속 무언가를 클릭했습니다.

"모두가 함께 겪는 이 재난 앞에서도, 항상 조금 더 사정이 나은 사람들이 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하면 뭔가가 해결되지 않을까?"

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된다면?
 

지난 4월 진행된 <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 프로젝트 홍보 포스터 ⓒ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그렇게 시작된 <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 프로젝트는 청년 활동가를 위한 민간 기금 프로젝트입니다. 구조는 아주 단순합니다. 청년 활동가를 '조건 없이' 후원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설하고, 후원이 필요한 사람들의 신청을 받습니다. 기부받은 기금의 총액을 신청자의 수만큼 n분의 1로 나눠서 지급하면 프로젝트가 끝납니다. 운영진은 규모 있는 단체가 아닌, 딱 세 명의 활동가로 구성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세 사람이 어찌어찌 두 시간 정도 이야기하다 보니 프로젝트가 뚝딱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왜 하필 떡볶이였을까요? 첫째로, 청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음식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떡볶이는 예전에는 주머니의 현금을 꺼내 학교 앞에서 사 먹는 분식 또는 간식이었지만, 지금은 배달 떡볶이로 대표되어 우리 세대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야식 중 하나입니다. 따뜻하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음식, 그렇지만 혼자 사 먹기에는 다소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배달 떡볶이를 떠올리면서, 가끔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소소한 행위만으로도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서류로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다

<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는 신청자를 제한하는 자격 조건 따위를 두지 않았습니다. 청년들의 삶을 구하기 위한 많은 지원정책과 복지제도들이 있지만, 내가 그 지원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우선순위에서 밀려 아깝게 지원을 놓치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어쩌면 정부나 지자체에서 응원하는 '청년의 삶'은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에 취직해 따박따박 저축도 하고, 때 되면 결혼도 하는 그런 삶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와 내 동료들의 삶은 그 스테레오 타입에 맞은 적이 없습니다. 누구에게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삶의 의지만으로도 응원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해 왔던 우리였기에, 어느 누구도 이 프로젝트 앞에서 거절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의 작은 마음이 서로를 구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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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소소한 응원의 마음을 담은 떡볶이 ⓒ pixabay

  
우리의 모금 기간은 무척 짧았습니다. 4월 12~26일 2주간 총 759만 원이 모였고, 151명에게 5만 원씩 지급했습니다. 이런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이 기금을 받은 청년들의 생생한 경험 이야기입니다.

기금 마련 프로젝트는 겉보기엔 일방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겪어보니 굉장히 쌍방향적인 경험이었습니다. 1차 신청자들에게 5만 원씩 후원금을 지급하고 2차 모금을 했는데, 모두에게 5만 원을 줄 수 있는 금액이 몇천 원 차이로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지급 대상인 청년활동가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는데도, 활동가 정체성을 가지신 분들이 많이 신청해주신 것도 신기했고 지원금을 받고 청년활동가로 인정받는 느낌이라 좋았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청년들에게 밥 한 끼 사주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지원금을 보낸다며 본인의 '최애' 떡볶이집을 추천해주신 분. 쌀떡 지지자와 밀떡 지지자들이 남긴 후기, 지금은 돈을 받는 입장이지만 다음엔 후원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후기, 밥 먹는데 쓰기가 너무 아까워서 교통비나 장보기에 썼다는 분도 인상 깊었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경향신문에 인터뷰 이후에 기사 보고 연락한다면서, 조금이라도 보태쓰라면서 10만원을 현금으로 후원해주신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결국 떡볶이 프로젝트는 무엇을 위한 프로젝트였을까요? 조금은 뻔해 보이지만,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때로는 '누군가가 날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됩니다. 저라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친구에게 5만 원, 10만 원을 줄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개인의 선의에 기대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인 문제에는 사회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선배 세대들은 '상호 부조'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보다 우리에게 와닿는 말은 '서로 돌봄'이 아닐까요?

서로 돌봄의 계기를 만든 관계와 신뢰

청년이 돌봄을 받을 주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청년 세대를 바라볼 때 '패기'와 '열정'과 '창의성'이 제일 먼저 보이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청년으로서 청년을 바라보는 경험을 해보면 현실은 다릅니다. 청년들의 외로움과 우울과 빈곤을 바라보며, 동료로서 느끼는 감정에서부터 출발하는 돌봄이 무척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계의 신뢰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미안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돌봄의 역할을 억지로 떠맡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언젠가는 나에게 이 도움이 다시 어떻게든 돌아올 거라 믿기 때문에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도 서로 돌봄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의 경험 덕분에 우리는 그 다음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또 어떤 비빌 언덕이 될 수 있을까요?
 
#코로나 #돌봄 #떡볶이프로젝트 #성북청년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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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창립한 여성환경연대는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모든 생명이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녹색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생태적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환경단체 입니다. 환경 파괴가 여성의 몸과 삶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여 여성건강운동, 대안생활운동, 교육운동, 풀뿌리운동 등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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