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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분간 처절하게 이어진 전투, 그 한복판에 있는 느낌

[신작 영화 리뷰] 전쟁의 일상과 날것의 현장감이 압권인 <아웃포스트>

20.09.25 16:43최종업데이트20.09.2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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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웃포스트> 포스터.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9.11 테러 직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되고, 2006년 미국은 반격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전초기지를 설치한다. 파키스탄과 탈레반의 무기 거래를 막고 지역민들의 협조를 받기 위함이었다. 그중 하나가 '몰살 기지'로 불린 캄데시의 키팅 기지였다. 힌두쿠시 산맥의 협곡으로 둘러싸인 이곳으로 클린튼 로메샤 하사와 타이 카터 상병을 비롯한 몇몇 병사들이 파견된다. 

다음 날 아침 새로 온 병사들이 기지 안을 돌면서 기존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것저것 둘러볼 때 협곡 어딘가에서 총알이 빗발친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들의 일상은 산발적인 전투와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기지를 이끄는 지휘관 키팅 대위는 지역민들과의 화합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는 윗선의 황당한 명령을 수행하다가 어이없이 사망한다. 뒤이어 부임한 이예스카스 대위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밀어붙였지만 탈레반의 IED 공격으로 비명횡사하고 만다. 

뒤이어 부임한 사람은 산전수전 다 겪은 브라워드 대위였지만, 많은 일을 겪어서인지 오히려 소극적이다. 그는 키팅 기지 폐쇄가 결정되었다고 알린다. 소극적으로 일관하던 브라워드 대위가 전출되며 2주 뒤 새로운 지휘관이 부임할 것이란 사실이 알려졌다. 하지만 번더만 중위가 임시 지휘관을 맡고 있던 2009년 10월 3일 오전 5시 50분 탈레반 400명이 50여 명에 불과한 키팅 기지를 일시에 급습한다. 퇴각할 곳은커녕 숨을 곳도 없는 상황인데다 기상 악화로 당장의 공중지원도 불가능했다.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남아야 한다. 가능한 일일까. 

낯선 배우들에서 묻어나는 익숙함

영화 <아웃포스트>는 2009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가장 유명했던 캄데시 전투에 참전한 이들의 인터뷰와 취재로 완성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다. 이 전투가 유명한 건, 전투가 끝나고 4년 후 당시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두 생존 병사 즉 이 영화의 주인공 로메샤 하사와 카터 상병에게 미국 최고 무공 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전투의 두 생존 병사가 명예훈장을 받은 건 베트남 전쟁 이후 50여 년만이었다고 한다. 

영화는 20여 년 전 로버트 래드포드 주연의 <라스트 캐슬>로 이미 유명세를 떨친 로드 루리 감독이 연출했다. 다른 무엇도 끼어들 수 없는, 오직 생존을 위한 극한의 전투를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려냈을지 기대하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출연진들이 낯선 듯 익숙하다. 유명한 영화인들의 2세가 대거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낯선 얼굴에서 익숙함이 묻어난다. 

주인공 로메샤 하사로 분한 배우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들 스콧 이스트우드이다. 두 번째 지휘관 이예스카스 대위로 분한 배우는 멜 깁슨의 아들 마일로 깁슨이다. 마약 문제로 쫓겨날 뻔하다가 키팅 대위의 선처로 머물렀고 캄데시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포크너 일병으로 분한 배우는 영화 <간디>로 유명한 리차드 아텐보로의 손자 윌 아텐보로이다. 그런가 하면, 박격포 사수로 결정적인 지원을 자처한 로드리게즈 상병은 다니엘 로드리게즈 본인이 연기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타이 커터는 카메오로 출현했다고 한다. 

전쟁의 일상을 보여 주는 전반부

두 시간의 러닝타임을 반으로 자르듯, 전반의 한 시간과 후반의 한 시간이 확연한 온도차를 보인다. 산발적인 전투만 치르며 큰일 없는 '일상'을 영위하는 병사들, 하지만 지휘관은 죽어나가고 새로운 지휘관이 오면 기지의 방향과 기조와 분위기가 바뀐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는 별 탈 없다. 물론, 영화를 보는 이의 입장에선 지루할 수 있다. 

영화 전반부가, 영화 전체의 기승전결 중 기승에 해당하여 뒤따라 올 전결의 전초전 느낌으로 분위기를 올리는 역할을 하거나 그 자체로 감동적이거나 처절함이 동반된 서사가 집약되어 있거나 중요 캐릭터들의 특별하고도 공감 가는 사연들이 따로 또 같이 보여지거나 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거기엔 어떤 영화적 '연출'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뭘까. 후반 한 시간을 위한 폭풍전야 느낌 한껏 살린, 영화 전체를 위한 희생양일까. 그렇게만 볼 건 아니다. 전쟁 중에 지휘관이 계속 바뀌는 처연함은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봤던 그것과 같고, 상부의 황당한 명령에 따르다가 어이없게 죽고 마는 건 수많은 전쟁 영화에서 봤던 그것과 같으며, 와중에도 먹고 싸고 놀고 자고 얘기하는 갖가지 일상 행동 또한 수많은 전쟁 영화에서 봤던 것과 같다. 하여, 이 영화의 전반부는 영화적이지 않은 연출로 많은 전쟁 영화가 추구했던 전쟁의 일상을 손쉽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갑 오브 갑의 현장감을 선보이는 후반부

영화 <아웃포스트>의 백미이자 압권은 단연 후반 한 시간에 있다. 적 수백명의 예상치 못한 습격을 받은 아군 수십 명은 몰살 당하기 딱 좋은 지형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버텨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보다 더 영화적인 설정과 배경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보여 주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사실적으로. 그래서 감독은 전반부처럼 후반부에도 '연출'을 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 줄 뿐이다. 공포와 두려움, 절망과 안도의 시공간을 그대로 우리 앞에 던져 놓는다. 

우린 그저 감상하기가 힘들다. 식상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여타 전쟁 영화들이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리얼리즘을 강조하며 제대로 된 '연출'을 시도했고 또 성공했지만, 이 영화는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현장의 날것 그대로를 가져온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전쟁 영화를 접했지만, 장장 40분 동안 쉼없이 이어지는 처절한 전투 장면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그 방면의 대표격이라고 할 만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초반부 노르망디 전투 그리고 후반부 시가지 전투와는 확연히 다르다. 대규모 아닌 소규모의 지속적인 전투가 훨씬 더 현장감 풍부한 리얼리티를 전한다. 얼마 전 접한 <그레이하운드>도 엄청난 분량의 전투신을 자랑하지만, 그 또한 <아웃포스트>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블랙호크 다운> 정도가 비슷한 면모를 풍긴다. 

감히, 전투의 현장감을 경험하고픈 밀리터리 마니아 혹은 전쟁영화 마니아들에게 <아웃포스트>를 권한다. 다음에 또 어떤 전쟁영화가 나와 이 영화보다 더한 현장감을 선사할지 모르지만 혹은 이전의 어떤 전쟁영화가 이 영화보다 더한 현장감을 선사했을지 모르지만, <아웃포스트>가 전쟁영화가 주는 현장감에 있어서 갑 중 갑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아웃포스트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전쟁의 일상 현장감 전쟁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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