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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25권뿐인 서점, 손님 이끄는 매력은 따로 있다

[관서동 사람들] 사당동 동네책방 '지금의 세상'

등록 2020.09.23 10:01수정 2020.09.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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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서초·동작 청년들과 함께 알고 싶은 가게를 소개해드립니다. 관·서·동 청년세대 지원센터 '신림동쓰리룸'과 '프로딴짓러' 박초롱 작가가 안내하는 '관서동 사람들'은 당신 주변의 바로 그 사람들이 동네에서 먹고, 살고, 나누고, 웃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지금의세상 외부 전경 ⓒ 서울청년센터 관악오랑 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


클릭 몇 번이면 지구 반대편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시대다. 누군가는 언젠가 물리적 거리가 의미 없어질 거라고 하지만 손닿는 거리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안정감을 대신할 수 있는 게 있을까? 골목의 세탁소, 퇴근길에 들르는 호프집, 주말 산책길에 들린 책방, 익숙한 얼굴이 지키고 있는 슈퍼만이 줄 수 있는 포근함이 있다. 우리에겐 여전히, 동네가 필요하다.

최근 몇 년간 동네 커뮤니티의 허브로 떠오르는 것이 책방이다. 젊은 책방지기들이 고립된 가게들을 잇고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간다. 사당에 있는 동네서점 '지금의 세상'은 <사당 10번길>이라는 동네잡지를 만들고, 가게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사당만의 동네 문화를 만들고 있다.


서울청년센터 관악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에서는 지역 가게를 소개해 지역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동네 상권 안에서 소비할 수 있도록 돕는 '관서동 사람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금의 세상' 김현정 대표를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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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 이름이 '지금의 세상'인 이유는요?
"'지금을 살아라'라고 많이 말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지금을 살라는 게 꼭 열심히 살라거나 최선을 다하라는 말 같지는 않아요. 가끔은 찌들고 힘든 현실에서 도피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힘든 현실을 잠깐 잊게 해주는 도구가 책이고, 나를 괴롭히는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때가 책을 읽는 순간이죠. 그런 의미의 '지금'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만들었어요. 그런 책을 만나게 해줄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싶었어요." 

지금의 세상은 다른 서점과 다르게 책을 오로지 25종만 판매하고 있다. 김현정 대표가 직접 잡은 다섯 가지의 테마마다 다섯 권의 책이 큐레이션 된다. 많은 책을 팔아도 운영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소수의 책만 골라 파는 이유는 뭘까?

- 다섯 가지 테마 속 책 25권만 판매하는 점이 독특합니다. 왜 이런 운영방식을 선택하셨나요?
"제가 2018년에 처음 서점을 오픈했는데 그때 이미 동네 서점이 많았어요. 다른 서점과 차별화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죠. 사람들이 서점을 간다고 해서 그 많은 책을 다 보고 책을 고르지는 않는 것 같았어요. 누군가 리뷰를 남기거나 추천을 했을 때 그 책을 사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다섯 가지 테마를 정하고 테마 당 다섯 권씩만 추천해서 파는 서점을 생각하게 됐어요. 공간이 작아서 어차피 많은 책을 들여놓을 수도 없었거든요."
 

지금의 세상 사용 설명서 ⓒ 서울청년센터 관악오랑 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


- '행복에 대한 갈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 '지적 호기심', '사랑에 대한 감정', '마음의 편안함'이라는 테마가 있는데요. 다섯 개 테마의 기준은 뭘까요?
"'내가 언제 책을 읽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만들었던 테마에요. 저는 고민이 있을 때, 미래가 두려워질 때, 사랑을 생각할 때, 마음이 편안하고 싶을 때, 지적인 호기심을 채워주고 싶을 때 책을 읽거든요. 그럴 때 찾을 수 있는 책으로 꾸려 보았어요. 정확한 주기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손님들이 '책이 많이 바뀌었네요'라고 말씀하는 주기가 한 달 정도 되는 것 같아요."

- 오늘 추천해주신 책은 어떤 책이죠?
"이번 주는 보경 스님의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라는 책을 추천드렸어요. 혼자서도 잘 지내지만 문득 외로워질 때가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한 스님에게 고양이가 오고, 누군가를 키워 본 경험이 없는 스님이 고양이와 관계를 맺는 과정을 그리는 에세이에요."


어르신이 김소월의 시를 읊고 가는 공간
 

추천 책 ⓒ 서울청년센터 관악오랑 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


김현정 대표는 사당동에서 동네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선다. 사당동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주로 담는 동네잡지 <사당 10번길>을 만들고, 주변 회사들과 협업해 서점에서 동네콘서트도 열었다. 그의 동네 사랑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 동네잡지 <사당 10번길>을 만들고 계시는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처음에 제가 이곳에 자리 잡았을 때는 동네의 고즈넉함이 참 좋았는데, 막상 운영을 하고 보니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책방에 오시는 분들도 많지 않았어요. 보통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하다가 책방에 들어오곤 하시잖아요.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니 책방으로 유입도 잘 되지 않았죠.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근처 가게들을 함께 소개하기 시작했어요. 이 식당은 이게 맛있고, 저 카페는 이런 게 좋고, 끝나고 서점도 들리면 좋다는 식으로요. 그러다 보니 동네에서 가게를 하는 사장님들과도 이야기를 하게 되고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사장님들 이야기가 너무 재밌더라고요. 처음엔 그 이야기를 블로그에만 올렸었는데 블로그에만 남기기 아깝다고 생각해서 동네 분들과 만 원씩 모아 이제까지 만든 내용들을 인쇄물로 뽑았죠. <사당 10번길>은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 <사당 10번길>에는 주로 어떤 내용이 실리나요?
"동네 가게 사장님들 이야기가 가장 많이 실려요. 가게가 무엇을 판다거나 이런 이야기보다는 사장님 개인사에 초점을 맞추죠. 사장님은 원래 뭐 했어요? 어쩌다 미용실을 하게 됐어요? 창업하기 어렵지 않았나요? 그런 이야기요. 총 6호까지 만들었고 지금은 <머물다, 사당 매거진>으로 발전 시켜 비정기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주변에 있는 다른 독립서점 '어나더더블유'와 함께 공방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매거진을 <머물다, 사당2>을 준비하고 있어요."

 - 독서모임에도 동네 분들이 많이 오신다고요.
"네. 독서모임뿐 아니라 '지금의 살롱'이라는 고민 대화 모임에도 많이 오세요. 하나의 주제를 잡고 두 시간 동안 이야기해보는 소통의 장인데요. 주로 30대 초중반의 동네 분들이 많이 오시고 가끔은 50대 혹은 80대분들도 오세요. 80대 노인 한 분은 늘 서점에 오셔서 제게 시를 읊어주고 가시기도 해요. 저를 '미스김'이라고 부르시는데 와서 따뜻한 커피 한 잔 달라고 하시고, 김소월의 시 낭독하고 가시곤 하죠."
 

지금의세상 내부 전경 ⓒ 서울청년센터 관악오랑 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


- 동네를 살리기 위해 동네 분들과 골목콘서트도 기획하셨다고 들었어요.
"'책, 음악을 만나다'라는 프로그램인데요. 동네에 있는 인디레이블 슈가레코드와 함께 기획했어요. 책방에 모여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보고, 고민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해주고, 뮤지션을 초청해 관련된 음악도 들어보는 시간이에요.

이런 행사를 할 때 보통 유명한 분들을 게스트로 모실 텐데, 저희는 동네 사장님들을 게스트로 모셨거든요. IT 회사를 그만두고 정육점을 차리신 젊은 사장님이나 젊은 나이에 미용실을 연 사장님을 초대해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죠. 동네를 살린다기보다는 이미 동네에 있는 자원들을 활용해서 즐길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코로나 시대, 동네서점의 역할

- 동네를 중심으로 한 활동을 많이 하시네요. 서점이 이 시대에 문화살롱의 거점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서점이 시대적인 변화에 발맞춘 프로그램들을 시도해보기 좋은 공간인 것 같아요. 책이 문화의 중심을 잡아주고, 공간이 콘텐츠를 발현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서점은 물리적인 공간이라 계속 세를 내야 하고, 사람들을 모아야 하는 서점 사장님들이 주체적으로 모임을 기획하게 되기도 하고요."
 

지금의세상 내부 모습 ⓒ 서울청년센터 관악오랑 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



- 동네서점은 동네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개인적으로 저는 우리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 즐길 거리를 다른 동네에서 찾지 않고 우리 동네 안에서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지금의 세상'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이 주변에 20·30대 1인가구로 사시는 분들이 많은데 서점 행사를 즐기러 망원, 합정, 홍대로 가시거든요. 심지어 여기서 거리가 먼데요. 그분들이 이곳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

- 코로나19 때문에 오프라인 행사가 어렵게 되면서 동네 분들이 모이기 힘들어지진 않았나요?
"아무래도 그렇죠. 그래서 서점에 오지 않더라도 책을 받아볼 수 있을 만한 서비스를 기획했어요. '코로나 시대 속 멘탈 지키기 세트'인데요. 코로나 블루를 대비할 수 있는 책 세 권을 묶어서 배송해주는 거죠. 책을 선정한 이유와 생각할 만한 거리들을 적은 '사색거리'도 함께 만들어 보내드렸어요.

또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통해 책팔이 라이브 방송도 해요. 제가 큐레이션 한 책들을 생방송으로 설명하고 그 자리에서 주문을 받는 건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서로 대면해서 소통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대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들이 힘들어지면서 동네의 소상공인들도 생계를 잇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동네 상권이 무너지면 동네 문화도 없어진다.

'지금의 세상' 김현정 대표가 하고 있는 동네 커뮤니티 활성화 사업이 동네 상권을 지키는 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녀가 가진 지금의 세상에 희망을 걸어 본다.
#신림동쓰리룸 #관서동사람들 #관악오랑 #지금의세상 #동네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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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청년센터 관악오랑 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 서울시와 관악구의 청년정책을 수행하는 중간지원조직입니다 :-) 현재 시설(관악구 신림동 241-22, 302)은 휴관 중이며 대부분의 지원업무는 온라인으로 진행 중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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