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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올해 한번도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병원에만 가면 느끼는 불편함이 싫어서... 매일 운동하며 건강을 챙긴 7년의 효과

등록 2020.09.28 20:54수정 2020.09.28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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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맘 먹고 헬스클럽 회원권을 끊은 게 햇수로 7년 전이다. ⓒ pexels


큰맘 먹고 헬스클럽 회원권을 끊은 게 햇수로 7년 전이다. 지금껏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았고, 요즘 들어서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찌뿌드드하게 느껴질 정도가 됐다. 주변에서는 '운동 중독' 초기 상태라며 걱정하기도 한다.

헬스클럽이 쉬는 일요일엔 부러 이른 아침이나 햇빛 사위어가는 오후 시간을 이용해 두어 시간 자전거를 탄다. 스마트폰에 동선을 표시하면 얼추 30km쯤 된다. 지난 주말에는 집에서 대략 20km 떨어진 전남 담양 읍내까지 왕복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서 헬스클럽이 문을 닫았지만, 그렇다고 운동을 거르는 법은 없다. 얼마 전 8kg짜리 아령 두 개와 요가 매트, 팔굽혀펴기 운동을 위해 푸시업 바를 장만했다. 저녁 식사 후 거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운동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근력 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 퇴근 후 어둑해진 저녁 시간에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건 위험하다. 당분간 헬스클럽의 러닝머신도 이용할 수 없으니 어디선가 걷거나 뛰어야 한다. 걸어서 1시간 거리의 출퇴근도 고려해봤지만, 바쁜 아침 그 정도의 여유까진 없다.

하여 아파트 계단을 오르기로 했다. 집이 아파트 18층이라 유산소 운동에는 안성맞춤이다. 내려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는 걸어 오르는 것이다. 여러 번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 집에 쌓인 폐지나 음식물 쓰레기를 한꺼번에 버리지 않고 따로 챙겨간다.

하루 평균 세 번 정도 계단을 오르는데, 더하면 54층이니 매일 여의도 63빌딩을 한 번씩 오르는 셈 친다. 한 번은 도중에 쉬지 않고 세 번을 연거푸 올랐는데, 순간 종아리에 쥐가 나서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18층까지 272계단이니, 고작 816계단에 근육이 놀란 셈이다.

근무 시간에도 운동은 계속된다. 어떤 경우라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다는 건 스스로 정한 철칙이다. 하긴 학교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는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든 장애 학생을 위한 것으로, 평소 늘 멈춰 있는 게 맞다. 

교무실은 4층에 있지만, 항상 1층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4층 화장실은 고작 몇m 거리에 있지만, 더 많이 자주 움직이기 위해 부러 1층까지 오르내리는 것이다. 수업이 있는 교실은 다른 건물이라, 무심코 걷다보면 만 보가 금세 채워지기도 한다.

'종합병원'이어도 천하태평했던 내가 변한 이유

어느덧 나이 50. 피부는 주름이 자글거리고 눈은 침침해지며 머리숱은 듬성듬성해졌지만, 특별히 아프거나 불편한 곳은 없다. 돋보기는 챙겨 다닐지언정 그 흔한 비타민 영양제조차 먹어본 일이 없다. 그저 꾸준한 운동 덕분이라 여기며 매사 감사해하고 있다.

운동을 시작한 이후 연말 정산 때 의료비 공제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정기적인 큰아이 아토피 검진과 치료만 빼면 병원에 가는 건 한 손에 꼽을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환절기 알레르기 비염약을 처방받는 것과 1년에 한 번 안경을 맞추는 게 의료비의 전부다.

본디 건강한 체질이었냐면 천만의 말씀이다. 대학 시절 허리 디스크 수술을 했고, 이어 치질 수술도 받았다. 교사가 된 뒤에는 직업병이라는 성대 결절로 다시 수술대에 올랐고, 최근에는 내성 발톱 수술까지 받았다. 누구 말마따나, 몸이 곧 '종합병원'이었다.

그런데도 천하태평이었다. 어쭙잖은 의학 상식에 기대어, 간과 폐 등 몸속 장기가 아닌 다음에야 뭐든 수술만 하면 좋아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40대로 접어들면 받게 되는 생애 주기 종합 검진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길 정도로 건강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했다.

그야말로 몸도 마음도 개과천선한 셈이다. 젊은 시절 목으로부터 허리, 엉덩이, 발가락에 이르기 온몸에 메스를 댔지만, 중년을 넘긴 지금이 그때보다 훨씬 더 건강하다. 외양으로야 청춘과 어찌 견줄까마는, 마음 같아선 '쇠붙이도 씹어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헬스클럽이나 학교 보건실에서 이따금 한 번씩 측정해보는 체성분 분석 결과도 운동의 효과를 실감케 한다. 신체 연령이 실제 나이보다 두세 살이나 적다는 지표는 큰 위안이자 기쁨이다. 비록 체형 판정은 줄곧 비만이라고 나오지만, 크게 괘념치 않는 이유다.

며칠 전 분석 결과, 몸무게 81.9kg에 골격근량 35.2kg. 신체 균형이 상체와 하체 모두 균형을 갖추었고, 표준 체중 대비 부위별 근육량도 발달되어 있다고 적혀 있다. 단지 체지방량이 표준 이상이고, 복부의 내장 지방 면적과 레벨이 높다는 게 주의할 점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한마디로 뱃살만 빼면 된다는 뜻이다. 나잇살이라고 두루뭉수리 눙쳐온 관성에서 벗어나 조금 더 땀을 흘려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권장 체중까지는 아직 7kg 이상 남았으니 가야 할 길은 멀다. 이 글을 마저 쓰고 나면 곧장 오늘치 계단 오르기를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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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팔자에도 없는 운동을 시작한 이유가 있다. 가급적 병원을 멀리하기 위해서다. ⓒ unsplash


여기서부터가 짧고 굵은 본론이다. 7년 전 팔자에도 없는 운동을 시작한 이유가 있다. 가급적 병원을 멀리하기 위해서다. 병원에 갈 때마다 겪게 되는 의사들의 불친절이 싫었다. 다 그렇진 않겠지만, 불운한 탓인지, 만나는 의사마다 하나같이 피곤해 보였고 퉁명스러웠다(그렇지 않은 의사분들에겐 미리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 환자와 눈빛조차 마주치지 않고 모니터에 대고 처방을 내리는 의사도 봤다.

번호표를 뽑고 두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불과 2~3분 만에 진료가 끝난 경우도 허다했다. 그 몇 분 동안만이라도 정성을 들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들의 '영혼 없는' 진료 상담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가 하면, 간호사를 개인 비서 다루듯 하는 거만한 의사도 숱했다.

병원 내 역할이 다를 뿐인데도, 의사와 간호사를 위계적 관계로 인식하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다. 환자들이 보는 앞에서 간호사에게 반말투로 함부로 대하는 의사에게 '인술'을 기대하긴 어렵다.

'인간의 얼굴'을 한 의술을 기대할 순 없을까 

하긴 뼛속 깊이 박힌 그들의 특권 의식은 이미 오래전 경험한 바다. 모든 과정이 전산화된 지금 구경하기조차 힘들지만, 예전에는 '진료 차트'라는 곳에 의사가 직접 손글씨로 구체적인 처방 내용을 적었다. 그 메모에 따라 약사는 약을 조제했고 간호사는 주사를 놓았다.

한 번은 진료 후 우연히 주사실에 침상 위에 놓여 있는 '진료 차트'를 본 적이 있다. 간호사가 잠시 놓아둔 채 다른 일을 보러 간 듯했다. 두 줄짜리 짤막한 영문으로 된 필기체 글씨였는데, 당최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언뜻 낙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진료 차트'를 건네받은 간호사는 마음대로 흘려 쓴 글씨를 과연 읽어낼 수 있을까. 부러 간호사에게 그 뜻을 여쭤보았다. 그는 별 걸 다 궁금해한다는 표정으로, 항생제 주사 처방이라고 답했다. 환자도 알아볼 수 있게 한글로 쓰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실없다는 듯 웃기만 했다.

더 이상 묻진 않았지만, 순간 법전을 도배하다시피 한 어렵고 딱딱한 한자어를 떠올렸다. 얼마든지 쉽고 명확한 우리말이 있는데도, 법조문마다 왜 굳이 한자어를 고집하는지 지금까지도 의문이다. '진료 차트'의 필기체 영문과 법전의 한자어가 같은 맥락으로 읽혔다.

법조문은 배우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의학 용어는 몸이 아파 찾아온 환자들에게 태생적으로 불친절하다는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법조계와 의사들은 우리 사회 최고의 기득권층이다.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든 어려운 한자어와 영문은 그들이 다수 위에 군림하는 '무기'일지도 모른다.

요컨대, 운동에 목매단 건 오로지 그런 의사들의 '갑질' 앞에서 비굴해지기 싫어서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왜곡된 의료 현실과 의사들의 불친절을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도 아닐 뿐더러 해법일 수 없다는 건 잘 안다. 그저 의사답지 않은 의사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는 나만의 방식일 뿐이다.

내가 바라는 의사의 모습은 이렇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이웃으로 아무 때나 쉽게 만나 안부를 묻는 의사, 환자의 몸보다 마음을 먼저 어루만져주는 다정다감한 의사,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병원의 문턱을 없애는 의사. 이 와중에 언감생심일 테지만, 그럴 때라야 의술을 '인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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