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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에게 권하는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길'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 (74)]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①

등록 2020.09.21 17:56수정 2020.09.2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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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퍼레이드하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사진은 2013년 2월 25일 여의도 국회에서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를 만나다

많은 작가들은 어린 시절에 보고 들은 고향 이야기를 평생토록 작품의 제재로 삼는다.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그의 고향 칼브를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 등에서 그렸다. 또 영국의 작가 에밀리 브론테는 그의 고향 호워드 황야를 배경으로 <폭풍의 언덕>을 남겼다.

그처럼 나도 고향 구미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습작기였던 고교시절, 어린 시절부터 귀에 익도록 들어온 고향의 한 인물 박정희 대통령을 그렸다. 그때 곁에서 지켜보던 아버지는 살아 있는 사람은 함부로 쓰지 않는다고 충고했다. 게다가 그때 나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도 매우 부족한 터라 먼 후일로 미뤘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그분을 그려본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살아오면서 그분이 거쳐 간 곳을 부지런히 답사했다. 중국 현지 사람들도 잘 모르는 창춘 교외 날랄툰에 있는 옛 만주군관학교까지도 애써 찾아갔다.

그런 가운데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서 허형식 장군을 만났다. 공교롭게도 그분은 박정희 생가 동네인 상모동 바로 앞 철길 건너 구미 임은동 출신이었다. 동시대에 태어난 두 분의 생애를 살펴보니까 한 분은 동북항일연군 총참모장에, 또 한 분은 위만군 장교로 만주 대륙을 누볐다. 모두 총상으로 돌아가셨다.

그뿐 아니라 공교롭게 두 분 부인들마저도 총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한때 '네 발의 총성'이라는 가제로 두 분의 생애를 교차하면서 그리려다 역사에 남을 인물들이라 독립된 실록소설로 집필 방향을 바꿨다. 우선 먼저 <허형식 장군>은 집필 후 이미 출간한 바 있다. 

나는 작품 집필에 앞서 답사를 겸해 주인공의 생가나 무덤을 찾아가서 영감을 얻는다. 그래서 먼저 상모동 생가를 찾아가 고향사람들로부터 여러 얘기를 전해들은 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된 박정희 육영수 무덤을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처럼 그날이 2009년 10월 26일로, 박정희 기일이라 추모행사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그날 추모제가 끝난 뒤 참배객의 뒤를 따라 무덤 앞에서 묵념을 드리고 내려오는 데 당시 박근혜 의원이 길목을 지키면서 참배객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나의 두 손을 꼭 잡으면서 매우 살갑게 인사한 적이 있었다. 그 인연으로 내가 쓴 <개화기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등의 책을 보냈고, 그때마다 고맙다는 감사의 답례 인사도 받은 적이 있었다.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표지 ⓒ 남송출판사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2020년 1월 초부터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를 연재해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16대 노무현 대통령까지는 거침없이 써왔다. 그런데 막바지 이명박, 박근혜 두 대통령 집필을 앞두고는 이런저런 연유로 마음이 무거운 게 글이 써지지 않아 한동안 접어뒀다. 하지만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다른 분과는 달리 이명박 대통령 편은 2회로 마쳤다.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은 구속집행 정지 상태로 일단은 자유의 몸이 됐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2017년 3월 이후 복역 중이라 이런저런 비판의 글을 쓰기가 무척 부담스럽다.

그러나 독자에게 한 약속은 지키는 게 도리이기에 그분의 저서에 나타난 심경, 그리고 대통령 되기 전까지의 이야기 중심으로 쓸 작정이다. 그리고 제18대 대통령 시절의 공과는 간략하게 언급하면서 마무리할 예정이다.
1989년 7월 10일 : 오늘 TV에서 집게벌레의 생태에 관한 프로를 보았다. 좁쌀 크기의 알을 낳아, 곰팡이의 해를 입지 않도록 한 알, 한 알 정성껏 침을 발라 땅 속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알들이 부화하기 시작하면 알에서 새끼들이 쉽게 나올 수 있도록 껍질을 찢어 주기도 하며 열심히 거들어 준다.

겨울은 부화기이기 때문에 새끼벌레들은 땅 위로 나와도 먹을 것이 없다. 어미벌레는 자기 몸을 한 겨울 동안 새끼들이 먹을 수 있는 영양분을 제공하고 죽는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본능적으로 생활해 가는 미물에 관한 이야기지만 '희생'이라는 두 글자가 한참 머릿속을 맴돌게 했던 장면들이었다.
 

청와대 생활 당시의 박근혜 가족 ⓒ 자료사진


  
1989년 10월 27일 : 어제 10주기 행사는 온화하고 청명한 날씨 속에 무사히 끝났음을 하늘에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묘소까지 가는 도중에 마음의 울렁임을 참기 힘들었다. 10년만의 추도식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추도사에서 '아버지!' 하고 부르고 나서 감정이 폭발하면 자제키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 안에서 어머니께 기도 드렸다. 감정을 억제하게 해 주십사고. 덕분에 차분히 추도사를 읽을 수 있었다. 분향하고 내려오는데 장군 묘소까지 빽빽이 들어선 추모 인파는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낚시미끼에 걸린 물고기 
 

퍼스트레이디 시절 카터 부부와 함께 청와대 영빈관에서. ⓒ 자료사진


  
1992년 2월 12일 : 세상의 풍파는 험하다. 여러 가지 세상사가 안겨주는 고통은 다양하고 가는 골목마다 도사리고 있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 일의 좌절, 중상과 모략과 시기, 질투. 그런 것들을 피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끊임없이 도전장을 보내온다. 그 도전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그것은 인생의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속성이니까. 그러나 그때마다 대처해 나갈 수 있는 길은 있다. 그 길은 바른 생활에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바른 길만은 가야 한다.

 
 1992년 2월 24일 : 명창 한 분의 인터뷰를 들었다. 창을 할 때 사람들이 한 구석에서 잡담하면서 잘 듣지 않으면 그들을 원망하거나 욕하지 않고 자신을 더 돌아본다고. 내가 더 기가 막히게 창을 잘 해서 그들을 매혹할 수 있었다면 저들이 저리 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아직도 내가 많이 부족한 탓이라고. 그래서 더 열심히 닦는다고.
 
1992년 8월 17일 : 어제 우연히 TV에서 낚시미끼에 걸려 바동거리며 줄에 딸려 올라오는 물고기를 보고서 불쌍하다는 느낌과 함께, 얼마나 많은 우리 인간들도 저 모양이 되어 사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 때문에 그 이면에 숨겨진 손해와 무서운 고통을 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저 미끼를 문 물고기와 같은 신세이다.  - 이상 박근혜 지음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에서 뽑음.  
 

과거 박근혜. ⓒ 자료사진



이제 자유의 몸이 되면 정계는 쳐다보지도 말기를…

그의 책을 여기까지 읽다가 박근혜 그도 노회한 한 낚시꾼의 미끼에 걸려 바동거리며 산 한 마리 물고기와 같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책 제목대로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나 지난 세월을 조용히 반추하면서 맑고 고운 글을 쓰는 그런 노작가로 부모님 기념사업이나 했으면 좋았으련만...

사람의 시선에는 독이 있다고 한다. 잘 생겼다고, 똑똑하다고, 부잣집 자녀라고, 권문세도 집 자제라고, 남에게 시선을 많이 받으면 자신도 모르게 교만, 오만해져서 마침내 그 독으로 박복하다는 얘기가 있다. 아마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어린시절부터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자랐기에 파란만장한 생애를 사는 듯하다. 세상만사 남의 부러움과 좋은 것만이 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범인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그분의 '운명'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한때 훈장이었던 내가 보기에 어린 시절 박근혜 학생은 대단히 모범생으로 바르게 자랐다. 하지만 두 번의 아버지 어머니를 모두 잃는 크나큰 시련 앞에 그의 삶은 실타래처럼 헝클어졌을 게다. 게다가 아버지를 따르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총명을 잃은 듯하다.

박근혜 님, 그 언젠가 교도소에서 출감하게 되면 사람들의 배신에 대한 분노의 마음은 다 접으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정계 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말고 운둔해 수도생활을 하거나 사회사업을 하면서 여생을 조용히 보내시길 권합니다. 그러면서 저녁 조용한 시간은 서재에 앉아 해맑은 글을 남기면 좋겠습니다. 그 길이 당신이 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고향의 한 선배가 진심어린 조언을 드립니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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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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