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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1타 강사의 예측, 그는 왜 정답을 못 맞혔나

[전대원의 교육이야기] 코로나19가 몰고 온 거대한 실험장, 학교

등록 2020.09.21 08:30수정 2020.09.2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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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있기 전에 교육 담론계를 휩쓴 용어 중에 '4차 산업 혁명'이 있다.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 충격이 몰고 온 여파. 이미 이전에 우리나라엔 '인강(인터넷강의)'의 충격이 있었다. 1타 인강 강사로 유명했던 어느 교육평론가가 인터넷 강의로 모든 수업의 대체가 가능하다는 칼럼을 신문에 게재했던 기억도 난다. 정보 통신 기기를 활용하여 시공간을 초월한 수업. 우리가 모두 꿈에 그리던 평등 교육이 실현될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하였다.

필자는 17년 전에 이-러닝(e-Learning) 연구학교를 진행한 바 있다. 사교육비 논란이 거세던 시절이었다. 정부는 EBS 교재에서 수능을 출제한다는 대책과 함께 인터넷 강좌를 전면적으로 활성화시킨다고 발표했다. 

이-러닝 연구학교는 그런 분위기에서 공교육도 인터넷 교육 콘텐츠 개발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냐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거였다. 지금은 사라진 유물인 테이프를 감아 동영상을 제작하는 캠코더를 구매하여 각 선생님들이 자기 수업 영상을 찍고, 그것을 미디어서버에 올려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결과 보고서에는 학생들이 결석하였을 경우에 보충학습도 가능하고, 선생님의 수업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수업에 미처 따라가지 못한 학생들을 배려하는 혁신적인 시스템이라고 썼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 속의 현실일 뿐이었다. 그때 만들어진 동영상은 지금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학생들 역시 그 영상을 별로 보지 않았다. 아직 유튜브가 공식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전이어서, 동영상 공유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상상으로만 재단을 한다면, 시장에서 성장한 대형 인강 업체, 정부가 제공하는 EBS 강좌 파워의 협공에 밀려 동네 보습학원은 진작 생존의 위기에 몰렸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여전히 각 동네에 산재해 있는 촘촘한 사교육 기관은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시장에서 살아남아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도 역시 온라인 콘텐츠 개발이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기술과 소프트 파워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학교는 그런 것에 투자하지 않았다. 실은 투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실제로 필요하지도 않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현실 진단일 것이다.

17년 전이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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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지역 유치원과 초·중·고교, 특수학교가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한 26일 오후 서울 노원구 화랑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들과 원격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0.8.26 ⓒ 연합뉴스

 
이런 와중에 코로나 사태가 터진 것이다. 개학은 미뤄지고, 사상 초유의 초중고생 모두의 유급이 현실화될 위기에 처해지자 나온 고육지책.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국가 단위의 전면적인 온라인 개학. 처음으로 교육부 당국자 입에서 선생님들을 믿는다는 소리가 나왔다. 그만큼 다급했다는 것.

연구학교를 진행하면서 경험해 본 적도 있고 흥미도 갖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수업 동영상을 녹화해서 올리는 방식이 낯설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비롯해서 와콤 같은 기기들의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교사들이 연습을 해야 하는데 관련 제품들의 가격이 치솟고 그나마 품절 사태라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시시각각 온라인 개학은 다가오고 TV 속 교육부 장관은 어느 시설 좋고 선도적인 교사들이 많은 곳에서 대국민 홍보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학교는 완전 북새통이었다. 현실을 말하자면 학교에는 교무실에서 와이파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이 태반이었다.

그럼에도 온라인 개학이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다수 학생들의 가정에 깔려 있는 초고속통신망이라는 하드웨어 인프라, 여기에 오랜 세월 누적되어 온 EBS 콘텐츠, 그리고 정보기기 활용에 능숙한 교사 집단의 존재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이 와중에 유명무실하게 운영되어 오던 온라인클래스나 위두랑 같은 학습 플랫폼들이 전면화되었다. 서버가 벅벅 기고 감당을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긴 했지만, 대한민국은 속전속결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전 세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특히 하드웨어적인 문제의 해결 능력은 상상초월이었다.

어찌어찌 1학기를 넘기고 나서 2학기가 되니 숨죽여 있던 욕구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대한민국 사회가 학교에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던 것은 '관리와 표준'이었다. 이 두 가지 암묵적 기능을 심층에서 강고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대놓고 주장하진 않지만, 산발적으로 요구되다가 문제가 생기면 걷잡을 수 없는 불만의 진원이 되는 심연의 요구.

이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현상이, 초등학교에서 개학은 늦춰지는데 긴급 돌봄은 유지되는 기묘한 동거였다.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올 수는 없는데, 돌봄을 받으러 나올 수는 있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긴 하나, 교육이나 방역적 측면에서 매우 중대한 모순이 발생하는 현실이었다.

관리의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청소년은 몸은 어른이되 현대 문명사회에서 정신적으로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되기에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존재이다. 어린이는 말할 것도 없다. 이들에 대한 관리 책임이 가정으로 옮겨 간다는 것이 온라인 개학이 갖고 있는 치명적 요소였다. 처음에는 세계 최초의 온라인 개학 성공이라는 자축 분위기에 내재된 문제가 가려져 있었지만, 언젠가는 수면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초중은 1/3, 고등은 2/3라는 다른 등교의 기준은 그래서 나온 고육지책이다. 방역 측면에서 밀집도의 차이가 초중과 고를 구분할 하등의 합리적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대입을 앞둔 고등학교에 1/3이라는 기준을 들이밀 수가 없었던 것이 유일한 이유이다. 대입을 앞둔 고3은 매일 등교를 시켜야 하고, 그러니 고1과 고2를 번갈아 등교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온 비율이 2/3였던 것.

문제는 고3이 급하다는 것은 입시의 측면에서만 그런 것일 뿐, 공부에 있어서 급하지 않은 학년이 어딨냐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아직 입시는 12년이나 남았으니 양보를 하라고 하면 과연 초1 학부모는 고개를 끄덕일까? 초1은 아직 어려서 더 많은 대면 교육이 필요하니 다른 학년이 양보를 좀 해달라고 하면 쉽게 합의가 이뤄질까?

2학기에 들어서자 고등학교에서는 고3을 온라인으로 돌리고 고2를 매일 등교시키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학생부 반영은 1학기로 끝나고, 정시 준비의 경우는 자기주도학습이 더 중요할 수 있으니 이제 예비 고3인 고2에 집중하자는 것. 어떻게 보면 꽤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방안조차도 고3 학부모들의 합의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고3 학부모 내에서도 입장차이가 갈린다. 아이의 학업 수준과 자기주도학습 역량, 자기 관리 능력 등에 따라서 말이다.

유토피아는 없었다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학교의 종말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 교육이 전면화되는 장이 펼쳐졌음에도 학교 등교에 대한 열망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도처에 학교 수업보다도 고급스러운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가 도래했는데 말이다.

일부 진보론자들은 학교를 두고 푸코가 말한 생체 권력을 이야기 했었다. 병원과 군대 시스템 같은 근대의 규율 시스템을 내면화시키고 강제하는 학교. 근데 그 학교의 정시 등하교를 자율화시키는 호기가 도래했음에도 유토피아는 전혀 펼쳐지지 않고 있다.

다시 관리의 문제가 떠올랐다. 그래서 일선 교육청과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은 실시간 쌍방향 수업의 전면화, 실시간 쌍방향 조종례의 의무화였다.

일단 급한 불은 끈 모양새다. 일방향 콘텐츠일 때보다 학생들이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듣는 자세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풀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근본적으로 교사와 학생이 온라인으로 연결만 되었을 뿐, 교육의 질적 향상이라는 근본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 전에도 연결이 안 되어 있던 것도 아니다. 교무실은 콜센터이자, 실시간 대화창을 이용한 상담소였다. 실시간 쌍방향 조종례는 근본적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수면 아래 있던 요구가 다시 새로운 형태로 분출하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일부 학생들은 일방향 온라인 콘텐츠로 돌아가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화상회의 시스템이 수업 집중에 적합하지 않으며, 중간에 말이 끊기고, 일부 학생은 화면과 마이크를 닫아 놓은 채 딴 짓을 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 여전히 몸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교사는 학생을 깨울 방도가 없다는 것. 전화와 카톡은 안 받으면 속수무책이다. 아이 입장에서도 본인이 자고 있으면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도 있다. 알아서 잘 하면 그게 어른이지 아이는 아닐 것이다. 화상회의 시스템도 학생이 스스로 들어와야 작동하는 거란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가정의 관리 능력이 전면적인 키를 쥐고 있다는 근본적 현실은 그대로이다. 그래서 나오는 말들이 교육의 양극화가 더 심해진다는 우려다. 여기에 중간 정도 위치에 있는 아이들마저 하향 평준화된다는 우려가 속출한다.

초등생 화재사건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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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전국 초등학교 5∼6학년생과 중학교 1학년생 135만 여명이 4차 등교를 재개한 8일 오전 강원 춘천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첫 교실 수업이 시작되고 있다. 2020.6.8 ⓒ 연합뉴스

 
실은 최고의 효율적 교육은 우리가 그렇게 조롱해마지 않던 19세기 스타일의 사각형 교실에서 나왔고, 배움은 교사로부터 나오는 거 이외에도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오는 양도 무시할 수 없다는 평범한 교육의 진리를 되새기게 만든다.

학교는 모든 것의 표준이었다. 심지어 프로야구 개막 날짜를 정하는 것도 학교 등교일이 언제인가를 눈치 봤다는 후문이 들릴 정도였다. 이 표준이 흔들리는 것은 교육 자체의 문제 때문도 아니고, 예기치 않게 나타난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촉발한 사태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식의 입시를 걱정하겠지만, 공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학교의 교육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날 거대한 후유증이 더 큰 걱정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기본값으로 갖고 왔던 교육 경험치의 부족을 상당 기간 감수해야 할 운명이다. 그리고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과제는 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교육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함께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면 어떨까 싶다. 아이의 감시자가 되지 말고 조력자가 되려 하고, 같이 학습의 안내자가 되려는 노력 말이다. 그런 노력이 나올 때 취약 계층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우리 사회의 교육 격차도 해소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요소들을 커버해나갈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평소 같으면 학교에 있었을 아이들이 엄마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뉴스가 보인다. 입시에 대한 관심을 공교육 본연의 목적으로 전환하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으면 한다.

우리는 지금 온라인 천막을 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종식되는 것이 사태 해결의 지름길이겠지만,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면 함께 고난을 극복해 나간다는 자세가 교육에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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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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