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가 된 대졸 여성... 그가 말하는 진짜 빈곤

하타노 도모미의 자전적 소설 '신을 기다리고 있어'

등록 2020.09.18 14:48수정 2020.09.1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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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코시 아이는 대학 졸업 후 정규직 취업에 실패하고 문구회사에서 파견사원(계약직)으로 일한다. 노동자파견법에 의거해 계약기간 3년 후 정규직 전환을 구두로 약속 받지만 회사는 불경기라는 이유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

회사와의 계약이 종료된 후 아이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구직 활동을 해보지만 결국 취업에 실패한다. 통장에 남아 있는 돈은 20만 엔. 살던 집의 계약 갱신비를 내고 월세를 내다보니 어느 새 통장엔 한 달 치 월세를 낼 수 있는 돈밖에 남지 않았다.


월세를 내고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제로가 된다. 스물여섯 살의 아이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살던 집을 나와 만화카페(PC방) 생활을 하는 홈리스가 된다.
 
"꼭 정규직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나 파견직도 괜찮지 않아요?"
"취업 활동은 제대로 하고 있죠?"
직원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대졸의 젊은 여성이 홈리스가 된다니 강한 의구심이 든다. 작가의 상상력이 지나친 게 아닐까 싶다가도 주인공 아이가 여행 가방 하나만 들고 살던 집에서 나오는 순간, 대졸여성이 홈리스가 된다는 문장에 납득하게 된다.

<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하타노 도모미가 작가로서 성공하기까지 십 년 넘게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면서 겪었던 경제적 불안, 생활고를 토대로 쓴 소설이다.
 

하타노 도모미 지음 소설 <신을 기다리고 있어> ⓒ 문학동네

 
정규직이 아니면 유급휴가, 사회보험을 받을 수 없고 아르바이트를 생계를 유지한다 해도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수입은 제로가 된다. 그럼에도 매달 내야하는 집세, 각종 공과금은 유예되지 않는다.

가족이나 공동체의 유대관계가 무너진 일본 사회에서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젊은이가 어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 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 '사회복지'라는 정부의 서비스가 있지만 복지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빈곤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지고 사회적 안전망은 허술해지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약한 고리가 끊어지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난다. 약한 고리는 사회적 약자인 노인, 아이, 장애인, 여성 등이다. 사회적 약자는 차별, 갑질, 학대, 성폭력 등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여성은 쉽게 성매매산업으로 내몰리게 된다. 시급 천 엔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던 아이도 결국 돈을 받고 손님과 데이트를 하는 즉석 만남 카페에 발을 들인다. 빚을 지고 도망간 남편 없이 홀로 아이 둘을 키우는 싱글맘 사치도, 친족 성폭력 피해로 가출 청소년이 된 나기도 성매매를 통해 생계를 이어간다.

하타노 도모미는 이 소설을 통해 빈곤 여성의 현실과 그 이면에 감춰진 문제점에 대해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결국 이들을 구원할 수 있는 건 '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결말을 보여준다.


이 책의 원제는 <神さまを待っている>인데 여기서 '신'을 뜻하는 '神さま(카미사마)'는 뜻 그대로 자신을 구원해줄 '신'이기도 하지만 잘 곳이 없는 여성을 재워주는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남성을 뜻하는 은어로 쓰이기도 한다.

신을 기다리고 있어

하타노 도모미 (지은이), 김영주 (옮긴이),
문학동네, 2020


#서평 #신을 기다리고 있어 #하타노 도모미 #소설 #코로나시대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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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영상번역작가. 인터뷰를 번역하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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