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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와 트럼프... 한국에겐 '환장의 짝꿍'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스가의 나라와 트럼프의 나라가 가는 방향

등록 2020.09.17 18:21수정 2020.09.1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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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9시 관저에서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2017년 이후 한·미·일 3국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새로운 나라'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나라를 지향하지 않는 국가는 이 지구상에 없지만, 최근 3년간 세 나라에서는 그런 경향이 유독 두드러졌다. 한국은 개혁과 적폐청산을 진행하고, 미국은 '위대한 미국'을 추구하고, 일본은 '아름다운 일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국 보수진영과 일본은 2017년 이후의 한국이 과거지향적이라고 비판하지만, 2017년 이후의 한국은 과거로 돌아가려는 게 아니라 과거사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새로운 미래를 열고 싶어 한다.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갖고 회귀하려는 태도와는 명확히 상반된다.

과거의 부조리가 낳은 피해로부터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과 유족들이 있고, 그런 부조리를 온존시킴으로써 부당한 이익을 얻는 세력이 아직 남아 있다. 그래서 과거 문제에 메스를 들이대는 것이므로, 그것은 본질적으로 미래지향적인 행동이다.

반면, 일본과 미국이 추구하는 새로운 나라는 한국이 희망하는 것과 결을 달리한다. 양국이 목표로 하는 바는 외형상으로는 미래지향적인 것 같지만, 실상은 과거지향적인 측면이 상당히 농후하다.

과거에 얽매이는 게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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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14일 도쿄 한 호텔에서 열린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경쟁 후보들을 압도적인 표 차로 제치고 총재에 당선됐다. 사진은 14일 총재 경선이 끝난 뒤 스가 신임 자민당 총재로부터 꽃다발을 받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 연합뉴스

 
16일 중의원에서 제99대 총리로 선출된 스가 요시히데는 총리선거 이전의 자민당(자유민주당) 총재선거 때부터 아베 신조 전 총리를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총리선거 직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전 정권의 과업을 확실히 계승해서 전진시키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밝혔다.

스가 요시히데가 롤모델로 표방하는 아베 신조는 일본의 침략 범죄를 축소하고 역사를 수정하려 하고 있다. 이 같은 수정주의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그의 공식 담화에서도 표출됐다. 2015년 8월 14일 종전 7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이른바 '아베 담화'가 그것이다.

당시 주한일본대사관이 번역한 담화문에 따르면, 아베는 "일본은 지난 대전에서의 행동에 대해 거듭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 왔습니다"라며 "그 마음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인도네시아·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 대만·한국·중국 등 이웃사람인 아시아인들이 걸어온 고난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며 전후 일관되게 그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을 다해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동일한 담화문이 아래와 같이 모호한 대목도 담고 있다.
 
일본에서는 전후 태어난 세대가 바야흐로 인구의 80%를 넘어섰습니다. 그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우리 아이들과 손자 그리고 그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래도 역시 우리 일본인은 세대를 넘어 과거 역사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합니다.
 
침략전쟁과 상관없는 세대가 사죄의 숙명을 계속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는 과거사를 빨리 해결해 더 이상 사과·배상이 필요 없는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침략전쟁을 범하지도 않은 세대가 사죄의 숙명을 짊어져야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담은 의미일 수도 있다.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한 문장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사과·배상에 대한 불편한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이 같은 일본의 태도는 과거사를 치유하고 해결하기보다는 이대로 봉합한 채 그냥 놔두려는 의중을 표출한다. 이는 극우세력이 갖고 있는 군국주의적 향수와 무관치 않다. 제국주의에 향수를 가진 세력을 중심으로 해서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에 과거사를 명확히 매듭짓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상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 과거에 얽매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사를 파헤치고 해결하고자 하는 한국은 실상은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과거사 해결을 거부하고 그대로 봉합해둔 채 언제든지 회귀할 여지를 남겨놓을 뿐 아니라 과거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극우 정치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일본이야말로 과거에 얽매이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신조는 겉으로는 새로운 일본을 표방했지만, 그가 실제로 꿈꾸는 것은 일본의 옛 영광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런 아베 신조의 과업을 "확실히 계승해서 전진시키겠다"고 표방하고 있으니, 아베 신조의 나라뿐 아니라 스가 요시히데의 나라 역시 과거지향적이 될 공산이 크다.

냉전체제 향수에 빠져 있는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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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의 나라 역시 다르지 않다. 말로는 '위대한 미국'을 외치며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지향하고 있지만, 실상은 아베 및 스가의 나라와 별반 다를 바 없다. 2018년 하노이 노딜과 그 이후의 상황에서 나타나듯이 미국은 세계 평화체제를 구축할 의향도 별로 없어 보인다.

트럼프는 북한이 먼저 완전한 비핵화를 하면 나중에 제재와 봉쇄를 풀어주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북한이 받아들일 리 없는 그런 조건을 내놓는 것은 애초부터 타협할 생각이 별로 없었음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북한과의 냉전구도에 만족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일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미국 군산복합체의 무기 수출량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데서 이익을 만회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한, 미국이 북한과의 냉전구도 청산에 정성을 다할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는 트럼프의 나라 역시 말로는 새로운 나라를 운운하면서도 실제로는 과거의 냉전체제에 안주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누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 대한 미국의 향수는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미국은 중국과의 신냉전 구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자국 국민들이 코로나19로 인해 고통을 겪는 와중에도 미소 냉전체제를 미중 냉전체제로 환생시키기 위한 백악관의 투쟁은 강도 높게 전개되고 있다. 이처럼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하는 수준이 아니라 과거를 어떻게든 유지하려 한다는 의미에서, 미국 역시 과거에 얽매이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과거지향적인 미일... 한국에겐 '먹구름'

미국과 일본의 이 같은 태도는 한국의 운명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한국이 식민지배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그렇게 해야만 한국의 미래가 밝고 탄탄해지기 때문이다. 일본이 일본제철이나 미쓰비시그룹 같은 전범 기업을 옹호하고 식민지배 문제의 해결을 방해하면, 한국에서는 친일적인 수구·보수세력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그렇게 되면 미래 개척에 투입될 한국의 에너지가 이런 데 좀더 많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한반도 냉전을 극복하려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북한과의 냉전 구도는 한국 경제를 불안케 하고 미래를 어둡게 할 뿐이다.

미일의 과거 지향적인 태도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해를 끼치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의 냉전구도를 정착시킬 목적으로 중국 기업인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세계 반도체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일본 역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의지를 압박할 목적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을 겨냥한 경제보복을 가했다. 그리고 이 2개의 압박은 결과적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가 총리로 선출된 뒤 백악관은 현지 시각 16일 자 대변인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동맹 강화와 공동목표 증진을 포함하여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비전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준비가 돼 있다"며 스가 총리와의 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스가 역시 총리 선출 뒤의 기자회견에서 "미국과의 동맹을 기축으로 정책을 전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와 아베의 환상 호흡이 트럼프와 스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면, 과거지향적인 양국의 태도는 한층 더 공고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 입장에서는 결코 이롭지 않은 상황이 계속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과거를 향한 미일의 움직임이 한국의 운명과 괴리되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것을 고민케 만든다. 양국의 국가전략은 물론이고 대중과 지배층의 흐름이 어디를 겨냥하고 있는지, 그것이 한국과 한민족에게 어떤 파급력을 끼치게 될지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요인이다.
#스가 요시히데 #포스트 아베 #미일동맹 #과거사 청산 #식민지배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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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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