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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 이 여성 과학자의 다음 꿈은 노벨상입니다

[인터뷰]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 선정 세계 상위 1% 우수논문 연구자 박은정

등록 2020.09.18 14:39수정 2020.09.1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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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교수가 8월 22일 대전 MBC홀에서 열린 ‘여성과학자와 함께하는 방구석 사이언스 토크(Girls’ Engineering Talk)’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 김유진

지난 8월 22일 '여성과학자와 함께하는 방구석 사이언스 토크(Girls' Engineering Talk)'가 대전 MBC홀에서 열렸다. 행사에는 세계 상위 1% 우수논문 연구자(HCR)에 2년 연속 선정된 박은정 경희대 교수가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행사를 마친 후 서면으로 박은정 교수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은정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 교수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에서 세계 상위 1% 우수논문 연구자(HCR)로 연속 선정된 바 있다. 이는 각 분야에서 동료 연구자들의 연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연구 자료가 인용된 횟수가 가장 높은 상위 1%의 연구자란 의미다. 또 박 교수는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주는 지식창조대상 장관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연구재단 대통령 포스트닥 펠로우십에도 참여한 바 있다.


나이라는 벽을 뛰어넘다

세계가 인정하는 과학자인 박은정 교수는 사회가 요구하는 길을 탄탄대로 밟아 온 엘리트처럼 보인다. 그러나 박 교수에 대한 기사에는 '비정규직', '경력 단절', '흙수저', '주부'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박사과정을 마친 후, 10년간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동안 지원하는 곳마다 '쏘리 레터(거절 메일)'를 받아야만 했다. 연구 성과가 아무리 좋아도 나이라는 벽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마흔을 넘긴 나이였고, 학과 내 교수들은 더 나이 많은 사람을 후배 교수로 받아들이기 꺼려했다. 그는 '하느님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고 매번 생각했다.

벽보다 단단한 현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그가 연구할 때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3박 4일 동안 자지 않고 내리 실험에 매달렸다. 안면 근육이 다 굳어버렸다. 쥐를 손으로 잡아놓고 실험하다 보니 신경이 눌려 6개월간 손을 쓰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고통에도 다시 실험실로 돌아갔다. 박 교수는 연구할 때 스스로 미친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만큼 연구에 몰두했고 그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

세계 상위 1% 우수논문의 비결


박은정 교수는 연구가 실패할 경우, 그 실패에 기인해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한다. "왜 실패했을까?"에 대한 물음이 새로운 연구를 이끌었다. 그렇게 쌓은 수많은 연구 덕분에, 그의 논문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될 수 있었다. 그에게 질문 거리는 풀지 못한 숙제와도 같았다. 그는 아픈 가족들이 살아온 환경 속에 그들의 질병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찾고자 했다.

박은정 교수는 누구보다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한 사람이었다. 10개월 된 아들이 병원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은 적 있었다. 병원에선 검사를 위해 아이에게서 피를 뽑고 또 뽑았다. 일주일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러다 그는 병원에서 오전 8시에 뽑은 아이의 혈액이 하루 종일 방치돼 있는 걸 발견했다. 검진이 잘못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의사에게 부탁해 피를 뽑은 후 곧바로 검사실로 향하자고 했다. 놀랍게도 아이의 상태는 정상으로 나왔다. 그때 그는 '똑똑하지 않으면 내 아이를 지킬 수 없다'고 깨달았다.

아이는 오진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가 잦았다. 박 교수의 친정어머니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식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시아버지는 치매에 걸렸다. 박사 공부를 하기 전, 그는 8년 동안 아픈 가족을 돌봐야 했다.

당시 박사 과정으로 1년 반 동안 연구하던 면역학에서 면역독성학으로 연구 과정을 바꾼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아이를 키우고 주부로 살면서 누군가 병치레를 하면, 늘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렇다'는 말을 늘었다. 그런데 면역학에서는 그 면역력이 왜 떨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환경독성 물질이 사람의 면역체계를 부수고, 어떤 질병을 일으키는지 궁금했다.

보통 한 연구실에 들어가면 끝까지 가야 하는 한국 연구 풍토가 있다. 교수가 되거나 좋은 직장을 얻는 등 장밋빛 미래만을 생각한다면 연구 중간에 전공을 바꿀 순 없다. 그러나 박 교수는 과감히 전공을 바꿨다 했다. 그가 연구를 시작한 이유 때문이다. 그는 질병이 왜 생기는지를 알고 싶었다. 가족이 아팠던 이유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수많은 연구 중 박은정 교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연구를 물었다. 오래전 그의 아들은 눈썹 부위에 혹을 제거한 적 있었다. 의사는 그 자리에 티타늄을 박아 얼굴 모양을 잡아주자고 말했다. 박 교수의 머릿속에 이런저런 가설들이 오갔다.

그는 의사와 의논하고 티타늄을 박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얼굴 모양이 일그러지지 않고 잘 자리잡았다. 그는 그 순간이 가장 의미 깊다고 말했다. 박 교수 연구 중 가장 유명한 것도 아니었고, 많이 인용된 연구 결과도 아니었다.

단절을 두려워하지 않기 

"인생은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더라고요.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간절함 속에 인생의 기회가 찾아오니까요."

박은정 교수는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에 이르기까지 10년 동안 경력이 단절됐다. 결혼과 육아, 아픈 가족까지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이 시간이 '연구자로서의 강점을 얻는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가족들이 '왜 아픈지', '그들의 삶 속에서, 환경 속에서 병이 발생한 원인이 있었는지' 끊임없이 질문 거리를 얻었고, 그렇게 쌓은 경험이 오늘날 면역독성학에 대한 연구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단절은 끝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을 좌절하게 만든다. 그러나 박은정 교수는 단절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열심히 살면 되고, 연구자일 때는 연구자로서 열심히 살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늘 최선을 다해 살아온 박 교수에게 끊어진 10년은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다.

박은정 교수의 마지막 꿈은 노벨상을 받는 것이다. 명예와 유명세를 가져다주기 때문이 아니다. 박 교수에게 노벨상은 '연구를 잘하는 사람'이란 의미다. 며칠 밤을 지새우고 손에 마비가 와도 그렇게 해서 얻은 연구 결과가 그의 아이를 지키고 옆 사람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그는 "가족과 이웃의 행복에 일조하는 과학자가 되기 위해 앞으로도 바보처럼 끊임없이 깨닫고 공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현재 환경성질환을 연구하고 있다. 환경을 통해 노출되는 물질인 미세먼지, 담배, 미세플라스틱, 살균제, 소독제 등이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험하고 있다. 그는 최근 SCI급 저널(Toxicology and Applied Pharmacology)에 가습기나 세탁기 등 주거용 제품의 소독제로 많이 쓰이는 염화디데실디메틸암모늄(DDAC)이 호흡기를 통해 자주 노출되면 폐질환을 유도할 수 있다는 논문을 실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으로 살균제 제품 사용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 박 교수는 "코로나바이러스 전파 위험이 장기화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문제들을 미리 차단하고 대처할 방법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은정 교수 #여성 과학자 #세계 상위 1% 연구자 #경력 단절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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