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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서 보던 식물을 알타이에서 발견하다니

[신간] 32년간 한라산 연구한 김찬수 박사의 '알타이 식물 탐사기'

등록 2020.09.17 08:40수정 2020.09.17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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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지역은 유라시아 대륙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알타이산맥은 서편 발카쉬 호수와 동쪽 몽골고원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서 이르트쉬, 오브, 예니세이 등과 같은 강들이 발원한다. 이곳에서 알타이공화국과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골 등이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탄생한 알타이문명은 알타이산맥을 타고 몽골고원으로 전파되기도 했고, 고비사막을 거쳐 중국 요하지역에 문명을 일으켰으며, 요하의 문명은 이후 한반도 주변에서 고조선 정치체계를 형성했다고 전한다. 또, 투르크족을 통해 시베리아 북부에까지 전해지기도 했다.


한국의 무교(무속)의 제반 요소가 시베리아의 샤머니즘과 매우 긴밀하게 연관됐다거나 한국인과 시베리아 민족들 사이에 유전적 연관성이 있다는 등의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문화의 전파경로와 무관하지 않다.
 

알타이 식물 탐사기 - 알타이에서 만난 한라산 식물 ⓒ 지오북


그런데 알타이와 제주도, 특히 한라산 사이에 생태적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책이 출간됐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을 지낸 김찬수 박사가 최근 발간한 <알타이 식물 탐사기>(지오북, 2020)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소개했다. 그래서 책의 부제가 '알타이에서 만난 한라산 식물'이다.

김찬수 박사가 지난 2009년 이후 매년 1~2차례 탐사대를 꾸려서 총 20회 몽골 현지를 조사했는데, 책은 그간의 노력이 맺은 결실 가운데 하나다. 몽골 탐사 가운데 알타이지역 탐사는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 이뤄졌다.

알타이탐사는 제주도에서 몽골 울란바토르까지 약 2400kn, 울란바토로에서 알타이산맥 남부 알락 할르한산까지 1539km, 왕복 약 7900km의 여정이다.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해 고비사막을 거쳐 알타이산맥 남쪽 '알락 할르한산'과 '하르하라산'에 이르는 동안 한라산에서 보았던 식물들과 유사한 것들을 수차례 만났다.

김춘수 시인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던가? 저자는 몽골초원을 지나는 여정 내내 수많은 들꽃들을 향한 이름 부르기를 계속했다.
 

알락 할르한산 해발 2600m 지점에 있는 게르 ⓒ 장태욱

 
염분이 많은 툴강변에서 명아주과의 취명아주가 보인다. 표선과 하도리 해안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제주도 해안에서 보임직한 뿔나문재, 눈양지꽃, 털광대나물, 지채, 물지채, 해변질경이들도 만났다.

모래언덕에서는 솔붓꽃을 만났는데, 최근 사진작가들이 한라산에 서식하는 것을 확인한 종이다. 초원스텝에서 자라는 석송식물 가운데 바위에 붙어사는 피구실사리는 한라산에서 자라는 왜구실사리와 유사종이다.


몽골초원의 대표식물은 동토쑥은 한라산 정상에 자생하는 섬쑥이 형제이고, 달구지풀은 한반도에서는 유일하게 한라산에 자란다. 몽골초원에는 구름송이풀이 흔하게 자라는데, 한라송이풀은 한라산 고유종이다.

탐사의 목적지인 할락 할르한산,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예전에 우리가 한라산을 '할락산'이라 불렀는데, 그와 유사한 이름이다. 아름다운 꽃을 밟지 않고는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식생이 풍요로운 곳이고, 그래서 유네스코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한라산과 많이 통한다. 거기에 피어있는 수많은 꽃들이 한라산에 자생하는 것들과 촌수가 사촌 이내라고 했다.
 

알타이에 서식하는 분앵초인데, 한라산에 서식하는 설앵초와 닮았다. ⓒ 장태욱

 
산 정상 바위에서 방석모양을 형성하며 번져나가는 방석별꽃은 알타이 특산식물인데, 유사한 별꽃, 쇠별꽃, 벼룩나물 등 3종이 한라산에 서식한다. 고산 분앵초는 한라산에 자라는 설앵초와 닮았고, 얼음양지꽃은 한라산 정상에 자라는 제주양지꽃, 돌양지꽃 등과 비슷하다. 알타이 갯고들빼기는 제주도 갯고들빼기를 닮았다.

하르하라산에서 만난 '세둠 웨이르시' 식물은 한국 이름이 없기 때문에, 탐사에 동반한 연구원의 이름을 따서 여옥꿩의비름이라 이름을 붙였다. 한라산에는 이와 비슷한 가는기린초가 자라고 있다. 하르하라산 해발 2000m 고지에서 한라산 특산식물인 갯취를 만났다. 제주 특산식물이 몽골에 서식하는 것은, 과거 몽골이 제주에 다루가치를 파견해 말을 키우던 역사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알타이 지역은 평균강슈량이 71.5mm, 1·2월 평균기온이 영하 27℃에 이른다. 연평균 강수량(서귀포 기준)이 1900mm을 넘고 1·2월 평균기온 8~9℃에 이르는 제주도와 생태적 연관성이 깊다는 게 믿기지는 않는다. 알타이가 그 만큼 다양한 생물을 키워 퍼트렸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한라산이 차가운 땅에서 온 것조차 품을 만큼 환경이 넉넉하다는 뜻일 테다.

사실 저자는 여정 동안 훨씬 많은 것들의 이름을 불렀고 이들의 서식환경과 분포지역 등을 문서를 인용하며 자세히 소개했다. 학자로서 낯익은 것들에 대한 관심과 낯선 것들을 만났을 때 설렘이 컸기 때문이겠지만, 독자는 이들을 일일이 확인하려니 괴롭다. 저자가 연구자로서 과욕을 부린 탓에 '분단분포'와 같은 전문용어도 이해해야 하고, 대륙이동과 고기후의 변동도 감을 잡아야 하며, 중국과 일본 러시아의 식물지 내용도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다보니 400페이지가 넘는다.

책은 식물을 넘어 초원에서 만난 게르촌, 유목문화, 초원의 촌락, 현지 동물, 식물의 이주, 저명한 생물학자 등 다양한 것들을 소개한다.

한번 읽고 소화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그저 우리 문화의 시원(始原)이 내 주변의 풀들의 고향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서, 문화와 생태가 깊이 연관됐다는 점만 기억하련다. 책은 책장에 꽂아뒀다가 유사한 풀이 보일 때마다 꺼내 읽어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기사는 서귀포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알타이 식물 탐사기 - 알타이에서 만난 한라산 식물

김찬수 (지은이),
지오북, 2020


#알타이 #한라산 #김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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