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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실서 택배 찾아가달라"는 전화, 그 부부를 의심했다

우리의 일상이 멈추지 않도록 애쓰는 노동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 "감사합니다"

등록 2020.09.17 08:31수정 2020.09.1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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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에서 '필수 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다는 글을 보았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간 지속되는 상황에서 필수 노동자들 덕분에 우리 사회가 지탱하고 있기에, 그분들의 노동가치를 존중하고 지원하기 위해 제정하였다고 한다. 글을 읽는 동안 나 또한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과 함께 올 봄에 있었던 개인적인 일화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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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추석 물량 폭증" 전국택배연대노조 부산지부, 민주노총 부산본부 등이 14일 부산고용노동청 앞에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 마련 촉구 입장 발표와 차량시위를 펼치고 있다. ⓒ 김보성

 
때는 한창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 사회가 혼란스러웠던 4월쯤이었다. 개인적으로 도서나 의류, 생필품을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주문하던 시기였다. 같은 동이라도 인구 밀집도에 따라 담당구역 택배기사님이 나뉘는데 우리 동네에는 부부기사님이 배송을 담당하셨다. 두 분 다 참 친절하시고 성실하셨다.

가끔 배송시간에 맞춰 아파트 베란다에서 주자창을 내려다 보면 택배 물건을 하차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그럼 일부러 내려가 물건을 받아가면 두 분이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셨다. "덕분에 올라가야 하는 일을 덜었다"며 "감사합니다"라고 한 번 더 인사를 하셨다.

"경비실에서 찾아가시라"는 전화, 오해했다  

그런 날은 내 기쁨도 두 배가 되었다. 기다리던 택배 상자를 받아든 소소한 행복감과 내 행동이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택배 상자를 풀어보곤 했다. 그런 부부기사님이 4월쯤부터 배송 전화를 주시며 "몇 시쯤 배송될 예정이니 경비실에서 찾아가시면 안 되겠느냐"라고 물으셨다.  

부탁의 전화를 받고 몇 번은 '코로나 때문에 배송 물량이 늘어서 바쁘신가 보다' 생각하며 흔쾌히 "알겠습니다" 하고 경비실에서 물건을 찾아갔다. 그러다 직접 찾으러 가는 횟수가 빈번해지니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다.

'부재 중인 집들이 많다고 하더니 우리 집만 빼면 들를 일이 없어서 그런가'로 시작된 의문은 '우리 집 한 집 때문에 여기까지 오기 귀찮은 거야'라는 의심에 도달했다. 그러자 갑자기 착하고 성실하시던 부부기사님이 꾀를 부리고 밉상인 부부기사님으로 전락되었다. 나는 그 생각을 식구들이 모두 모인 저녁 식사자리에서 꺼내 말했다.

"요즘 택배 아저씨가 꾀를 부리는 것 같아. 우리 집까지 오기 귀찮으니깐 매번 경비실에서 찾아가래. 참내, 내가 매번 알았다 하고 찾아가니깐 만만해 보였나?"라고 이야기하며, 나에 대해 뭐라 말한 적 없는 부부기사님의 마음까지 넘겨짚으며 말했다.

남편은 "그러게, 그분들이 왜 그러지?"라며 의아해 하였고 그 얘기를 듣고 있던 큰아이가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말에 택배 기사님에 대한 내 의심은 풀리기 시작하였다.

"학원 끝나고 경비실 쪽으로 돌아서 집에 가는데 택배 아저씨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물건을 내리시던데... 아줌마는 옆에서 거들고."

그제야 내 삐뚤어진 마음 탓에 눈에 들어와도 보지 못했던 택배 차량이 갑자기 생각났다. 항상 택배 회사 로고가 훤히 드러나는 차량을 몰고 다니셨는데 언제부턴가 일반 탑차로 바뀌어 있었던 거였다. 큰 아이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보니깐 아저씨가 사고 났던 것 같아. 교통사고. 택배 차도 일반 하얀색 탑차던데."

순간 나는 부끄러움에 입을 닫았다. 너무 창피했다. 그 부끄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부부 택배기사님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경비실에서 찾아가 달라는 부탁의 전화를 받았고 시간 맞춰 찾으러 가던 길에 '딱' 마주친 것이다.  

아저씨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물건을 하차하시고 사모님은 그 물건들을 경비실 한쪽 구석에 쌓고 계셨다. 그러다 나를 발견한 사모님이 "택배 찾으러 오셨어요? 몇 동 몇 호 세요?"라고 물으셨고 답변을 하였더니 "아~매번 너무 감사해요. 전화드릴 때마다 안 된다 안 하시고 찾아가 주셔서. 너무 고마웠어요"라며 택배를 찾아 건네주시는 게 아닌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날 사모님으로부터 그간의 사연을 듣게 되었다. 아이 말대로 교통사고가 났고, 아저씨가 다리를 많이 다치셨는데 코로나19로 물량이 너무 많아 제때 치료를 받기가 쉽지 않다고 하셨다. 

그러다 보니 회복이 더뎌서 아들이 아빠일을 도울 때도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했다. 그러며 "한동안은 계속 이렇게 직접 찾아가셔야 할 것 같은데 수고스럽게 해서 미안해요"라고 하셨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착한 두 분의 진심이 마음에 와 닿아서였을까? 지난 시간 내 얕은 생각이 부끄러워서였을까? 지금은 다행히 기사님 건강이 많이 회복되셨고 택배 차량도 예전처럼 회사 로고가 보이는 차량으로 물건들을 배송하신다.

그 사이 우리 아파트도 동마다 무인택배보관소를 운영하게 되었다. 협소한 경비실에 동별로 택배 물품을 쌓느라 테트리스 게임하듯 '쌓기 내공'을 보이셨던 사모님도 이제는 넉넉한 공간의 선반과 넓은 바닥에 물건을 편히 놓고 가신다.  

이 글을 쓰는 사이에도 택배기사님의 배송 전화를 받았다. 추석 명절이 다가오는 시기라 배송할 물건이 많으신지 무인보관소에서 찾아가 달라는 부탁의 전화였다.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도 수고하세요."

코로나 전쟁에서 진정한 영웅

코로나19가 내 일상과 주변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언택트가 미덕이 되어버린 시대에 발맞춰 우리 아파트에도 무인 택배보관소가 생겼고, 사회 곳곳에서 맡은 바 일들을 묵묵히 하시는 필수 노동자들의 수고로움의 노고도 알게 되었다.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을 응원하는 뱅크시의 작품 '게임체인저' ⓒ 뱅크시


'난세에 영웅이 난다'라는 말이 있다. 전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울 때 그래피티 화가 뱅크시는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을 응원하기 위해 작품을 그려 공개하였다. 그의 그림에는 코로나 전쟁에서 진정한 영웅은 슈퍼히어로가 아닌 의료진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 일상 속엔 또 다른 영웅이 존재하고 있다. 환경미화원, 택배노동자, 급식 조리사, 청소노동자, 버스기사님,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여러 직군에서 우리의 일상이 멈추지 않도록 노동을 이어가는 노동자분들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의 공포 속에서도 우리 사회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동을 멈추지 않는 이 분들이 있기에 내가 오늘 하루도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거였다. 그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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