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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죄의식을 공포에 담았다

[리뷰] 영화 <고스트 오브 워>

20.09.08 14:18최종업데이트20.09.0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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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고스트 오브 워> 스틸 이미지. ⓒ THE픽쳐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을 앞둔 1944년, 미군 '크리스(브렌튼 스웨이츠)'와 4명의 부대원들은 나치 점령 프랑스를 지키기 위해 한때 나치 최고 사령부가 점령했던 한 저택에 도착한다.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교대 부대를 지켜보던 그들은 이내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듣는다. 뒤이어 시작되는 의문의 사건들을 마주하며 두려움에 휩싸인 그들은 저택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다시 길을 나선 그들은 같은 길만 반복하며 저택을 벗어날 수 없음을 직감하고, 결국 저택으로 돌아간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특정한 세력의 이익이 반영된 상태로 역사적 사건이 기록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역사서는 물론, 문학, 드라마, 박물관 그리고 영화 등 과거의 사건을 재현하는 수많은 매체들은 모두 승자의 기록에 해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 피해는 <피아니스트>를 비롯해 최근의 <조조 래빗>까지 수많은 영화들과 많은 책들을 통해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이스라엘이 주변국에서 자행한 아랍인들의 홀로코스트는 상대적으로 덜 전달된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공포 영화 <고스트 오브 워>는 이러한 승자의 기록에 담긴 모순을 비판한다.  

<고스트 오브 워>의 초반부는 두 장면을 보여준다. 크리스의 분대는 길가에 미리 설치한 지뢰에 죽어가는 독일군들을 잔인하게 괴롭힌다. 뒤이어서 그들은 수용소를 탈출한 유대인들에게 먹을 것과 돈, 옷을 주면서 따뜻하게 배웅한다. 이 장면들은 2차 세계 대전을 선과 악의 전쟁으로 포장하면서 인간성을 조금씩 잃어가는데도 미군들의 행위가 정당했음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잔인함은 독일군에 맞서 싸우고,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자 도구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영화 <고스트 오브 워> 스틸 이미지. ⓒ THE픽쳐스

 
나치 사령부가 사용했던 프랑스의 한 저택에서 크리스의 분대가 경험하는 여러 사건들은 선한 미군과 악한 독일군의 구도를 거듭 되풀이한다. 그들은 그 저택의 다락방, 서재, 창고 등 다양한 공간에서 귀신을 만난다. 저택에 남겨져 있던 노트를 읽으면서 귀신들이 가족의 일원들이며 그들이 독일군으로부터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죽어 갔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저택에서 독일군과 교전을 벌일 때 귀신들이 자신들이 당했던 고문 방식으로 독일군들을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다. 교전 후 그들은 귀신들의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르고 원한을 풀어주고자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고스트 오브 워>는 완벽한 권선징악의 구도로 흘러간다.

그러나 귀신들의 장례를 치른 후에 <고스트 오브 워>는 돌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작전을 펼치다 큰 부상을 입고 실험실에서 재활 중인 크리스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아프간 전쟁에서 크리스와 분대원들은 상부의 명령대로 목숨을 지키느라 미군을 도왔던 민간인과 그의 가족을 보호하지 못했다. 이에 원한이 맺힌 아프간 사람들은 그들에게 폭탄을 던져서 심각한 부상을 입힌다. 비록 육체의 부상은 치료가 되었지만, 민간인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정신적 고통을 덜기 위해서 그들은 가상의 2차 세계 대전 안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상현실에서 크리스와 분대원들이 저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트라우마 치료는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한다. 잔인한 독일군을 무찌르고 수많은 사람들을 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이용해 자신들을 필요로 했던 사람들을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상쇄시키는 것이 작중 치료법의 핵심이다. 비인간적인 싸움에 맞서서 비인간적으로 변해야 했던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작중 아프가니스탄에서도, 2차 대전 때도 미군은 피해자가 아니라 방관자,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나치 독일군이 전 유럽을 침입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일 때 미국은 지켜보고만 있었다.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도움을 원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지켜보기만 했다. 그렇기에 독일군의 전쟁범죄를 이용한 치료는 아무런 효능이 없다.

다만 이처럼 메시지가 상당히 명확한 것과 달리, <고스트 오브 워>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다소 혼란스럽다. 우선 공포 영화의 문법을 지나치게 충실히 활용하다 보니 예상을 벗어나는 에피소드를 만들지 못한다. 예를 들어 크리스의 분대가 앞서서 저택을 점령하고 있던 분대와 만날 때, 앞선 분대가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장면은 이후에 저택에서 어떤 에피소드들이 펼쳐지게 될지 충분히 알 수 있게 만든다. 귀신들과 관련된 사연들을 하나씩 들려주면서 정체를 드러내는 전개 역시 귀신들의 존재가 유발하는 서스펜스를 약화시킨다.

또한 영화는 장르의 전환을 통한 반전 안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장르의 변화 자체도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들의 반인륜적 범죄를 공포로 변환 시켜 전달하던 영화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이 저질렀던 비인간적인 범죄를 다룰 때 SF 장르로 바뀐다.

문제는 그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는 점이다. 2차 대전 당시의 귀신들이 실험실까지 침투했다는 식의 전개는 장르의 전환이 줄 충격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이에 더해 군인들이 누워 있는 병동의 묘사도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느낌이 강하다. 반전에 앞서 여러 복선을 깔아 두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영화의 반전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의 문법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장르의 정체성이 흐트러지는 와중에 영화는 기어코 스산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귀신들의 존재는 그 이유가 아니다. 오히려 귀신들이 등장하게 된 진짜 원인, 선한 피해자라는 이미지를 위해 가해자로서의 행적이 감춰져야만 하는 불편함이 그 이유일 것이다. 

외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을, 실제로는 아프가니탄 전쟁을 비롯한 21세기의 전쟁을 다룬 <고스트 오브 워>는 이처럼 메시지 자체의 무게감 덕분에 흥미로운 공포 영화로 남는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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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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