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익상 지사(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수록 사진) ⓒ 국가보훈처
1920년 9월 14일, 의열단(1919년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항일 무력독립운동 단체,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한다는 뜻-편집자 주) 박재혁 지사가 부산 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100일 정도 지난 12월 27일에는 최수봉 지사가 밀양 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식민지 통치의 최첨병이자 폭압적 기구였던 경찰서를 재차 타격한 의열단의 거사는 나라 안 항일 민심을 격동시켰다. 연이은 성공에 크게 고무된 의열단 본부도 더욱 강력히 전투적 독립운동을 펼치자며 각오를 거듭 다짐했다.
"이제는 왜적의 심장을 겨누어야 하오. 왜적은 의열단이 경찰서만 줄곧 노릴 것으로 보고 향후 한참 동안 전국 경찰서들을 지키는 데 주력할 것이오. 우리가 총독부를 습격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할 게요."
조선총독부를 쳐서 왜적과 전면전을 벌이자는 논의가 무르익었다. 김익상이 나섰다. 목재 상사를 경영하다가 일본인에게 속아 가산을 탕진한 그의 아버지는 아들 익상이 21세 때인 1915년에 사망했다. 그때부터 김익상은 일제에 큰 반감을 품어 왔다.
어머니는 익상이 13세 때인 1907년에 세상을 떠났다. 김익상은 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광성회사의 직원이 됐다. 그는 고용살이를 할 때에도 차별 대우에 시달려 더욱 배일 사상을 굳게 기르게 됐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에게는 항상 '장차 비행사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며 웃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왔다.
비행사를 꿈꾸었던 어린 시절의 김익상
광성상회가 만주 봉천에 지점을 개설했다. 사장이 그에게 새 지점으로 발령을 내었다. 모두들 꺼리는 곳이지만 김익상은 반겼다. 사장이 '다들 싫어하는 곳으로 가라는데 너는 어째서 좋아하는 거냐?'라며 신기하게 여겼다.
"네 딸은 한 살밖에 안 됐잖냐? 아이와 부인을 두고 혼자 봉천으로 가도 괜찮겠어? 속으로는 나를 욕하는 것 아냐?"
"아이고,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내로 태어났으니 넓은 땅에서도 한 번 살아봐야지요. 평생 봉천에 있을 것도 아니잖습니까? 몇 년 내로는 서울로 다시 불러주셔요. 꼭이요! 약속하셔야 합니다. 아니면 봉천 안 가고 사표 낼 겁니다."
사장에게 진심을 밝힐 수는 없다. 김익상은 내심 중국 광둥으로 갈 계획이었다. 봉천에 가서 어떻게든 회삿돈을 빼돌려 그것으로 여비를 마련한 다음, 항공 군관 학교가 있는 광둥으로 달아나버릴 심산이었다. 그것을 어찌 사장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상해에서 의열단에 대해 알게 되는 김익상
하지만 김익상은 항공 군관 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 광둥까지 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학교가 폐교돼 있었다. 직장의 공금을 빼돌린 것은 또 다른 독립운동가 이종암과 유사하고,(주1) 학교가 문을 닫는 바람에 못 다니게 된 것은 김원봉과 비슷하게 됐다.(주2) 김익상은 터덜터덜 상해로 돌아와 영국계 회사에 검표원으로 취직을 했다.
김익상은 상해에서 처음으로 의열단의 존재에 대해 들었다. 의열단의 국내 암살 파괴 계획 추진, 부산 경찰서장 폭사, 밀양 경찰서 투탄 거사를 듣는 순간 김익상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에게 의열단의 존재를 알려준 오성룡의 손을 잡고 목이 잠긴 듯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의열단이 있다는 것을 내가 왜 그동안 몰랐을까요? 일개 회사원으로 허탄하게 살아 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의열단이 내게 말하는 듯합니다. 일생을 허비하지 마라! 가족의 한을 갚고 나라의 원수를 갚아라! 지금부터는 새로운 삶을 살겠습니다. 지하에 계시는 부모님께서도 틀림없이 잘했다고 칭찬하실 겁니다."
김익상은 오성룡에게 '고맙소!' 하고는 그 길로 북경으로 내달아 바로 의열단에 가입했다. 의열단 동지들이 총독부 폭파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을 안 그는 어려운 소임을 자원하여 맡았다.
조선총독부 투탄 거사를 자원하는 김익상
1921년 9월 10일, 김익상이 북경을 떠날 때 김원봉 이하 의열단 단원들이 모두 역까지 전송을 나왔다. 누군가가 김익상에게 농 삼아 작별 인사를 했다.
"장사일거혜(壯士一去兮) 불복환(不復還)이라 했으니 언제 또 만날 건가?"
장사가 한번 길을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옛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사람은 김익상이 아니라 김원봉이었다. 박재혁 동지가 순국했고, 최수봉 동지도 순국했다. 황상규, 곽재기, 이성우, 김병환, 신철휴, 윤치형, 배중세, 김기득, 윤세주 등 많은 동지들이 일제의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면서 고초를 겪고 있다. 김익상도 이번에 가면 돌아오지 못할 것인가!
하지만 정작 김익상은 껄껄 호탕하게 웃으면서 호언장담을 터뜨렸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한 주간 내로 총독부를 폭파하고 돌아올 테니 술상이나 거하게 잘 차려주시오."
모두들 웃었지만 마음은 못내 심란했을 것이다. 거사가 성공할 것인가, 김익상 동지는 무사할 수 있을 것인가?
기차 안에서 일제 순사와 마주치는 김익상
김익상이 탄 기차는 이내 단둥에 이르렀다. 이제 기차를 바꿔 타면 금세 압록강 철교를 건너 국내로 들어서게 된다. 김익상은 학생복 차림이었다. 보따리 안에 폭탄 하나와 권총 둘을 넣고, 교복 사타구니에도 폭탄 하나를 숨기고 있었다. 여차하면 자폭을 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칠 수도 있는 까닭이다.
기차에 오르면서 김익상은 어디에 착석을 할까 유심히 살폈다. 그는 젊은 일본 여자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앉아 있는 자리로 대뜸 걸어갔다. 유창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일본인' 학생이 옆자리에 앉으니 그녀는 마음에 흡족했다.
검문을 하는 순사가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자못 떨리는 마음을 지긋이 억누르면서 김익상은 지금까지 보다 더욱 밝고 활달하게 옆자리의 모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두 남녀는 마치 청춘 부부인 양 시종 웃어댔다. 어린 아기를 가진 젊은 본토인(일본인) 부부로만 여긴 순사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갔다.
남대문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검문하는 순사들이 쫙 깔려 있었지만 아기를 안고, 젊은 일본인 '아내'와 함께 유유자적 걸어 나오는 김익상을 조선 사람으로 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총독부 건물을 향해 접근하는 김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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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청사 전경. 1926년 경복궁 내에 준공된 조선총독부 신청사의 모습이다.
(본 저작물은 '서울역사박물관'이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것을 이용했으며, 해당 저작물은 museum.seoul.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 서울역사박물관
이튿날인 1921년 9월 12일 아침, 김익상은 전기 공사에 쓰는 기구들을 가득 넣은 가방을 둘러맨 채 왜성대에 있는 총독부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이제 내 생애도 오늘로 끝이 나는 겐가...'
김익상은 문득 슬퍼지고, 불안해지고, 흔들리고, 어쩐지 망설여져서 총독부 정문이 바라보이는 곳에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한참 심호흡을 하고 나니 마음이 적이 편안해지는 듯하여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총독부 정문에 다다르니 보초를 서고 있던 헌병이 눈을 부라린다.
"전기 공사하러 온 수리공이오."
"아까 저 앞에선 뭘 하고 있었나?"
"아, 총독부에 들어가려면 복장을 단정히 하고 마음가짐도 반듯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옷 매무새를 살피고, 마음도 좀 가다듬었지요."
헌병이 피식 웃으면서 전기 수리용 가방을 한번 쳐다보더니 들어가라는 손짓을 보낸다. 그 길로 김익상은 건물 2층으로 올라가 비서과 문을 열고 폭탄 하나를 집어 던졌다. 그리고 옆방으로 신속히 이동했다. 그런데 폭발음이 들리지 않는다. 이런 낭패가! 불발탄이 된 모양이다. 어쩔 수 없다. 이것은 제대로 터져야 할 텐데...
김익상은 회계과 문을 열고 두 번째 폭탄을 던졌다. 순간, '콰콰쾅!' 하는 엄청난 폭음이 총독부 건물을 뒤흔들었다. 일본인 직원들의 비명소리, 유리창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소리, 천정이 내려앉는 소리, 사무 집기들이 날아가는 소리...
폭탄 터지는 굉음에 얹혀 온갖 소리가 난무하니 총독부는 그대로 아수라장이 됐다. 회계과 바닥이 15cm나 파였고, 파편들은 온 사방으로 튀어 총독부 직원들을 모조리 바닥에 엎드리게 만들었다.
김익상 폭탄에 아수라장된 조선총독부... "위험하다" 외친 김익상의 기지
한참 후, 폭탄 소리가 멈추자 각 방에 있던 직원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더러는 허리를 굽힌 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나오기도 했다. 아래층에서 있던 헌병과 순사들이 황급히 2층으로 달려들었다. 김익상은 계단을 내려가며 소리쳤다.
"아부나이(위험해요)! 아부나이! 앙앗짜 이깡(올라가지 마우)!"
김익상이 손을 좌우로 흔들어대자 일인 헌병과 순사들이 흠칫 몸을 움츠렸다. 그들이 순간적으로 벽 쪽에 몸을 반쯤 숨기자 가운데에 길이 트였다. 김익상은 헌병과 순사들 사이를 줄곧 '아부나이! 아부나이!' 하고 소리를 내지르면서 유유히 걸어 총독부를 빠져나왔다.
김익상은 신의주로 가는 기차 안에서도 총독부 폭탄 투척 호외를 보며 '칙쇼! 후떼이 센징가 마다 곤나 고도오 앗따나(빌어먹을 불령선인이 또 이런 짓을 했구나)!' 하고 소리를 질러 일경과 밀정들 눈을 속였다. 의열단 본부로 복귀한 김익상이 큰소리를 쳤다.
"내가 이곳을 떠나 서울로 가면서 '한 주간 내로 총독부를 폭파하고 돌아올 테니 술상이나 거하게 잘 차려주시오.' 했었는데, 술상은 어디에 있습니까?"
총독부 투탄 거사 성공을 자축하는 의열단
김익상이 조선총독부로 가기 위해 북경을 떠난 날은 1921년 9월 10일이었고, 북경의 의열단 본부로 돌아온 날은 9월 17일이었다. 김익상이 정말 일주일 만에 큰 성공을 거두고 살아서 돌아오자, 의열단 본부는 연회를 열어 그의 공로를 치하했다.
"김익상 동지가 임무를 성공리에 수행함으로써 일제가 3.1운동 이후 소위 문화통치를 펼쳐 식민 체제가 안정되어 가고 있으며, 식민 지배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감이 크게 수그러졌다는 선전이 허위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소. 심장부가 처참하게 뚫렸으니 일제가 더 이상 무슨 논리로 세계만방과 조선 민중들을 기만하려 들 수 있겠소!"
김원봉은 총독부 투탄 성공의 의의를 되새긴 후, 커다랗게 차린 술상을 김익상 앞에 내려놓으면서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 우리 의열단 단원들은 장사일거혜(壯士一去兮) 필복환(必復還)이오! 장사일거혜(壯士一去兮) 불복환(不復還)은 이제 의열단에 없는 말이오!"
단원들이 일제히 '맞소! 정말 그렇소!' 하며 맞장구를 치고 크게 웃는다. 술자리는 심야까지 이어졌다. 환한 달빛으로 가득 찬 창밖 뜰이 대낮처럼 밝았다.
| 그 후의 김익상 지사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김익상>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따르면 김익상 지사는 1922년 3월 28일 이종암, 오성륜 지사와 함께 상해 황포탄 하구(黃浦灘河口) 부두에 하선하는 일본군 육군대장 전중재일(田中載一)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체포되어 21년 간 오랜 옥고를 치른다. 그 후 노년에 접어든 50세 나이에 석방되어 귀향한다.
"하지만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도발하면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탄압에 광분하던 일제가 의사를 가만둘 리 없었다. 의사가 귀향하고 얼마 안 있어 일본인 고등경찰이 연행해 가더니, 어디선가 암살되고 만 것인지 종적이 묘연해졌던 것이다."
"결국 의사는 조국광복을 눈앞에 두고 일본 경찰에 의해 암살되어 순국하고 말았지만, 그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은 '유방백세(遺芳百世)'로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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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의열단 부단장으로 활약한 대구 출신 이종암 의사는 자신이 근무하던 대구은행 공금 1만500원(현시세 10억 원 수준)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들고 1918년 2월 만주로 망명했다.
(2) 의열단 단장으로 활약한 김원봉은 1916년 10월 중국 천진의 덕화학당에 입학했다. 세계 최강 군대를 보유한 독일로 유학을 가기 위해 독일계 학교에 입학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학교는 폐교되고, 김원봉은 중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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