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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든' 보라색을 노래패 이름으로 정한 이유

더 이상 멍들지 않는 세상을 위해, '함께'를 노래하는 퍼플민

등록 2020.09.04 13:02수정 2020.09.0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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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민'의 '함께(with you)' 새 음원 재킷 ⓒ 윤일희

 
한 번 더 음원을 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가 해냈다. 지난해에 이어 '퍼플민'의 새 음원 '함께(with you)'가 막 세상에 나왔다. 기쁨을 나누고 싶다.

지난해 퍼플민은 첫 앨범 <우리 가는 길>과 <떠나는 그대에게>를 세상에 내놨다. 퍼플민 리더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이도영이 작사 작곡한 노래다. #MeToo가 봇물 터지듯 나올 때, 그 현장의 첨예한 언어들과 공명하는 감정을 #WithYou의 마음으로 담았던 곡들이다. 이번 음원 '함께(with you)' 역시 앞선 두 곡에 이은 열렬한 여성 연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퍼플민은 고양 지역에서 여성 인권 운동 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모여 2018년 결성한 노래패다.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하는 장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있다.

퍼플민 이름의 의미를 들여다보면 정체성이 보다 선명해진다. '퍼플'은 보라를 의미한다. 독자들은 보라색이라 어떤 심상이 떠오를까? 낭만적인 상상도 가능하겠지만, 퍼플민의 '퍼플'은 아픈 심상을 그려야 한다. 맞아본 사람은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맞으면 아프다. 맞은 부위는 이내 부풀어 오르고 보라색 멍으로 변한다. 맞은 것을 잊지 말라고 멍은 오래 머문다. 이 '멍든' 보라색이 '퍼플민'의 색이다. 시간이 지나면 멍은 가시지만,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멍은 사람을 계속 아프게 한다. 이 고통의 멍을 진 누군가에게 전할 위로로 말은 때로 그들의 고통에 비해 너무 가볍기에, 퍼플민은 다른 방법을 고안했다. 노래였다.

지난해 한 공연에 초대받았다.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이 참석한 공연이었다. 퍼플민이 노래를 시작하자, 한 참석자가 따라 부르기 시작하더니 끝날 때까지 함께 부르는 게 보였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자 그분이 다가왔다. "노래 아주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가 이 말을 전하며 손을 잡아 주었다. 거친 손등, 굵고 굽은 마디, 노동으로 잔뼈가 굵었을 정직한 노동자의 손이었다. 마음을 다한 노래 한 곡이 멍들었을 그의 마음에 전했을 온기를 새겼다. 퍼플민이 노래하는 힘이다.

#MeToo를 다시 점화한다

지난해 퍼플민이 내놓은 <우리 가는 길>이 (성)폭력에 멍든 이들을 감싸고 토닥이고 싶은 노래라면, 이번 음원 '함께(with you)'는 여성인권연대의 도도한 노정을 멈춤 없이 함께 힘차게 걸어 나가자고 건네는 노래다. 지금 여기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MeToo의 도화선에 #WithYou의 불꽃을 재점화하고자 한다.


'함께(with you)' 역시 퍼플민의 리더 이도영이 작사 작곡했다. 퍼플민 멤버인 나와 이도영, 세 명의 샛별 같은 어린이, 박소원, 백혜원, 안예준이 함께 불렀다.

"그대가 걸어왔던 그 길은 외롭고 힘겨웁지만
우리 함께 걸어가는 이 길은 이젠 외롭지 않아요
우리 모두 같이 이 길을 걸어요 손을 잡고 함께 이 길을 가요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은 여전히 힙겨웁지만
우리 함께 만들어갈 세상은 따뜻한 봄의 나라죠
우리 모두 같이 이 길을 걸어요 손을 잡고 함께 이 길을 가요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은 아직도 힘겨웁지만
우리 함께 이루어낼 세상은 꽃 피는 봄의 나라죠.
우리 모두 같이 이 길을 걸어요 손을 잡고 함께 이 길을 가요" ('함께(with you)' 가사 중에서)


'함께(with you)'는 더디지만, 함께 부르고 함께 외치며 전진하는 한 발짝을 같이 떼고자 하는 갈망을 담았다. 지금 여기, 여전히 종식되지 않는 (성)폭력으로 멍든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다. 퍼플민의 새 음원 '함께(with you)'로 이들의 멍을 '붕대 감기' 해주고 싶다. 그래서 '함께(with you)'를 함께 부르는 일은, 멍든 사람들의 'I Can Speak'를 노래로 발화하는 일이다.
 

새 음원 '함께(with you)'를 녹음하는 장면 ⓒ 윤일희

 
불타오르는 #MeToo의 현장을 돌이켜 보자. 현장의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되어 고백과 폭로를 발화했고, 탄식과 분노와 다짐과 결의로 화답했다. 고백과 폭로에 전할 위로와 연대의 도구는 공감의 눈물과 피 터지는 외침뿐 아니라, 끊임없는 자맥질로 호흡을 고르는 노래일 수도 있다. 낡고 추레한 관성을 깨부수려는 여성 인권의 장은 연대자들의 투쟁의 장인 동시에, 억압받은 여성성을 해체하고 해방할 축제의 장이다. 투쟁과 해방의 결기가 출렁대는 축제의 장을 채운 노래는 연대자들의 마음을 보다 충만하게 하리라.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한 장면은 노래의 힘을 믿게 한다. 여성들은 숲으로 모여든다. 이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보를 나누며, 결기를 웅성거리는 노래로 대신한다. 낮은 소리로 선도한 노래가 한 여성 한 여성이 보탠 목소리로 합일될 때, 하나된 웅대한 노래는 우레에도 잠식되지 않을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때 함께 했던 여성들은 맞잡은 손으로 전해지는 실재하는 체온을 그리고 맥박처럼 파동치는 노래의 힘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아이들과 함께 불렀다

퍼플민은 어떻게 하면 '함께(with you)'가 사람들에게 더 공명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이 노래를 누군가와 같이 부르면 더 의미 있을까? 우리가 소망하는 성평등한 세상은 누구의 세상이어야 할까? 세상이 마치 어른으로만 구성되었다고 착각하지만, 세상의 반은 아이들이 채우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은 이 세계의 당사자이며 과거와 미래의 우리들이다. 아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세상을 염원하며 부르는 노래는 그 자체로 공존과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초록이 짙어지기 전 연두 이파리 같은 세 명의 아이가 퍼플민에게로 왔다. 소언, 예준, 혜원에게 '함께(with you)'의 의도와 목적을 설명하고 연습에 들어갔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노래 레슨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아이들이 노래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노랫말과 리듬이 쉽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심상에 "우리 모두 함께 만들어가고 이루어낼 세상"은 그렇게 먼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닌 것이다. 변성이 오지 않은 아이들의 앳된 목소리와 퍼플민의 힘찬 듀오가 합을 맞추자, 놀라운 하모니가 완성됐다.

'함께(with you)'는 멍든 몸과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너무 애쓰며 보낸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위로와 지지다. 퍼플민이 노래부호로 발신하는 끊임없는 신호가 멍든 당신에게 가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빛보다 멀리 가는 연대의 노랫소리가 벌써 울려오는 듯하다.

퍼플민의 노래 '함께(with you)'는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 게시됩니다.
#WITH_YOU #퍼플민 #미투 #위드유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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