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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파업이 학교 교실에 가져온 나비 효과

[아이들은 나의 스승 200]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들의 선민의식과 특권의식의 기원

등록 2020.09.03 12:12수정 2020.09.0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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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전임의 등 의료계가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 주요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집단휴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김태엽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장이 의사들의 진료 거부를 중단하고 의료인력 확충할 것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것은 '나비 효과'다. 국민의 외면 속에 극한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의사 파업이 우리 학교 교육에 의미심장한 교훈과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의사에게 진정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며, 어떤 학생이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만든 계기가 되고 있어서다.

알다시피 의대에 진학하려면 내신이든 수능이든 최소 상위 0.5% 안에 들어야 원서라도 접수 시킬 수 있다. 의대는 웬만한 일반고에서 전교 1~2등의 최상위권 아이들에게만 허락되는 진로다. 서울 지역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의 사립대도 별반 차이가 없다.

의대를 지망하는 아이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매무새'가 다르다. 학년 초 담임교사가 그들과는 굳이 진로에 대한 상담을 할 필요가 없다. 공인된 흥미 적성 검사 결과는 참고자료조차 되지 못한다. 애초 아주 어릴 적부터 의사만을 꿈꾸도록 길러져 왔기 때문이다.

경험상 그들은 학업성적이 출중한 데다 가정 형편도 넉넉하다. 부모들은 대개 의사나 변호사, 기업가 등 전문직 종사자로서, 넓은 평수의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교직에 있은 지 23년 됐지만, 형편이 어려운 아이가 의대에 진학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하긴 가정 형편과 성적이 비례하는 현실에서, 애초 가난한 아이들은 의대 진학을 꿈꾸지 않는다. 부자가 의사가 되고, 결혼해 자녀를 낳으면 다시 의사로 길러지는 세습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부(富)만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직업마저 세습되고 있는 양상이다.

우문과 모범정답

2018년 한국장학재단 자료에 의하면, 서울 주요 대학 의대생 중 고소득층에 해당하는 소득 9~10분위에 속한 학생이 55%에 이른다. 모르긴 해도 고작 몇 %에 불과한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도 기회균형 선발 전형이 아니었다면 합격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의대가 부유층 자녀들의 '놀이터'라는 이야기다.


아이들에게 왜 의사가 되려고 하느냐는 질문은 '우문'이다.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작성하는 담임교사 앞이라면, 답변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들은 '적성에도 맞고, 인술로서 의술을 실천하며 우리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모범정답을 초등학생 시절부터 읊어온 터다.

의대생만의 문제는 아닐 테지만 학생부가 '소설책'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건 그래서다. 장담하건대, 성적이든 비교과 영역이든 의대를 지망한 아이들의 학생부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심지어 봉사활동을 한 기관도, 학창 시절 감명 깊게 읽은 책도, 소감도 다들 비슷하다.

아이들의 진로 희망은 학생부 기재의 기준이 된다. 학년이 올라가며 진로 희망이 바뀔 때도 거기에 부합하는 기재 요령이 있다. 어떻든 아이들의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되도록 교사들은 면밀하게 분석하고 기록하며 최선을 다한다. 하물며 '학교를 빛낼' 의대생들임에랴.

곧, 학교 내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위상'은 남다른 데가 있다. 온존한 학벌 구조 속에서 고등학교의 서열이 명문대 진학률로 결정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명문대의 범주는 통상 'SKY'로 통칭하는 서울대, 연고대와 의대까지다. 물론 지방의 의대도 포함된다.

SKY와 함께 의대 진학생 수가 많아야 지역 사회에서 명문고로 대접받는다. 여전히 고등학교의 교육력은 오로지 입시 실적, 곧 결과로만 평가된다. 오매불망 명문고에 목매단 일선 학교에서 '의대생 한 명은 백 명의 소위 지잡대생과도 바꿀 수 없는' 위력을 발휘한다.

공부도 잘하고 집도 부유한 그들은 그렇게 학교 내에서 교사들의 격려 속에 강고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한다. 비슷한 성적의 아이들끼리 어울리고, 사는 곳도 대개 가깝다. 어려서부터 분양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차이를 일찌감치 체득한 그들에겐 조금도 낯설지 않다.

그들만의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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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대학병원의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의 무기한 파업을 하루 앞둔 8월 2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자가 각 지역으로 보낼 종이 손피켓을 봉투에 담고 있다. ⓒ 연합뉴스

 
여느 아이들과 출발점이 다른 그들에게 선민의식은 당연한 결과물일 뿐이다. 문제는 다른 아이들도 그것을 선선히 인정하고 당연시한다는 점이다. 여러모로 '잘난' 그들을 부러워할지언정, 그들에 대한 학교와 교사의 '배려'에 그다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합리적 차별'이라며 짐짓 두둔하는 경우도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았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었으니, 특권을 누리는 건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고등학생들이 말하는 '공정함'이다. '공평하고 정의롭다'는 공정의 사전적 의미조차 아이들 사이에서 형해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적은 애초 출발점이 달라 생겨난 결과일 수 있다고 지적하면, 반론이랍시고 공부 못하는 부잣집 아이도 여럿 봤다고 대꾸한다.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라는 말엔 발끈하지만, 내심 모두 동의할 거라고 선선히 말한다. 아이들 사이에서 의대생들의 선민의식은 허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공정의 의미가 얼마나 짜부라졌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수업 시간에 종종 기부의 필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기부는 타인을 돕는 '자선 행위'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모두가 마땅히 실천해야 하는 '의무'라고 잘라 말한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이 한 문장이면 족하다고 여겨왔다.

"부잣집과 선진국을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마찬가지로,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와 후진국의 국민 역시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다. 그걸 단지 '운'이나 '복'으로 여기고 나 몰라라 하는 건 죄다. 그들과 기꺼이 내 몫을 나눠야 한다. 그래야만 공정하다."

놀랍게도 이 말에 선뜻 동의하는 아이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가난에 대한 책임을 왜 애먼 자신에게 묻느냐는 반론과 함께, 그것이 대체 공정함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지적한다. 애초 그들에게 경쟁이 없는 공정은 성립되지 않는 개념이다. 심지어 나눔조차 공정에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의사이기 이전에 사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당최 가늠할 수 없다. 정책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파업을 벌이고 있는 의대생들의 선민의식만 나무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갈등도, 나아가 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 사이의 논쟁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공정함이란, 어쩌면 이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다른 이의 삶에 대해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없다면, 공정함은 오히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당사자 간의 투쟁을 불러오기 십상인 까닭이다. 신뢰가 부족하고, '아니꼬우면 출세하라'는 식의 조롱이 통하는 사회에서 공정은 그 의미를 잃게 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의사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사회적 윤리 의식, 곧 공공성이다. 백 보 양보해서, 그들의 주장이 명명백백 옳다고 해도, 환자를 방치한 채 집단 파업에 나서는 건 공공성을 내팽개친 행태다. 거칠게 말해서, 의술을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만 활용하겠다는 선언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입시 준비에 여념이 없던 그들 앞에서 공공성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공공성이란 그저 학생부 기록에만 활용되는 단어일 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학교는 의대 진학 여부에만 매몰된 채, 미래 의사로서 품성과 자질을 따져볼 겨를도 의지도 없었다.

이번 의사 파업을 통해 우리 국민 모두는 그들의 몸에 밴 특권 의식을 똑똑히 목격했다. 수능 점수가 높다고 좋은 의사가 되는 건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됐다. 아울러,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젊은 의대생들의 뒤틀린 가치관에도 혀를 내둘렀다.

공공성을 방기한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학교 교육의 결과다. 스스로 지난날을 반성하며, 앞으로 의대 진학 실적 따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몇몇 동료 교사들도 맞장구치며, 아이들 앞에서 '의사이기 이전에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겠노라 약속했다.

사실 '의사이기 이전에 사람'이라는 말은 파업을 시작하며 의사들이 앞서 내건 구호이기도 하다. 동료 교사가 말한 '사람'이 의사로서의 품성과 자질을 의미하는 거라면, 파업 구호로 사용된 '사람'은 돈에 대한 욕심을 이해해달라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공정조차 경쟁을 통해서 얻어지는 거라고 여기는 아이들의 각박한 마음부터 녹이는 일이 급선무다.
#의사 파업 #공공성 #의대 진학 #의료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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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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