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당한 '성평등 수업' 교사 무혐의... 문제의 시작은 여기였다

[주장] 광주교육청, 교사-학생의 상처 보듬고 치유하는 데 나서야

등록 2020.08.31 13:58수정 2020.08.3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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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해제 취소를 촉구하는 교육청 앞 시위(출처 : 배이상헌) 광주 광역시 교육청 앞에서 성평등 교육을 실천한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직위해제 철회를 촉구하는 장면 ⓒ 배이상헌

지난 2019년 7월 24일 광주광역시 도덕 교사 배이상헌은 서부교육지원청으로부터 직위해제 통보를 받았다. 통보 내용인즉 "수업시간 학생들에게 성적 학대를 했다는 내용"이다. 이로 인해 '성 평등' 수업을 실천한 배이상헌 선생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되었다. 고발 주체는 놀랍게도 교육청이었다.

직위해제 통보서 내용에 명기된 내용은 이렇다. 배이상헌 선생이 "광주광역시 남부경찰서에서 수사 중인 자로 교육공무원으로서 현저히 직무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는 것이다. 직위해제 근거는 "국가공무원법 제73조의 3 제1항 제6호의 규정"이다. 졸지에 '성 평등' 수업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실천한 교사가 학생들을 "성적으로 학대한" '성 비위' 교사로 내몰린 것이다.

교육청이 문제 삼은 것은 배이상헌 교사가 수업시간 사용한 '성 평등' 수업자료, 단편영화이다. 문제의 영화는 엘레노아 푸리아 감독이 2010년에 만든<억압받는 다수>로 10분짜리 프랑스 영화다. 육아를 전담하던 남성이 여성우월적인 가모장제 사회에서 겪는 고충과 성적 불평등을 미러링 기법으로 제작한 단편영화이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풍경이 영화 전편에 등장한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남성, 가슴을 드러내고 조깅하는 여성, 남성의 엉덩이를 보며 여성이 성적 농담을 던지는 장면, 심지어 불량한 여성들이 주인공 남성을 성폭행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성폭행 피해자인 남성이 경찰서에서 조사 받으면서 담당 여성경찰관으로부터 겪는 성 차별적 발언도 의미심장하다. 여성경찰관이 부하 남성경찰관에게 커피를 타오라고 시키는 장면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한 마디로 여성우월적인 가모장제 사회의 비인간성과 야만성을 거꾸로 읽게 함으로써 우리가 직면한 성차별이 만연한 현실을 성찰하게 하는 교육영화이다.

교육청 관료들이 문제 삼은 것은 웃통을 벗고 달리는 여성이 등장하는 장면과 주인공 남성이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이다. 교육청 관료들은 이를 '야동'이라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야동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장면이다. 만에 하나 '야동'이라 판단했다면 견강부회일 것이다.

30년 전에 서울시 교육청에서 소장한 생명 존중 영상자료가 있었다. 실제로 서양 여성의 임신과 출산 장면을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한 영상자료였다. 문제는 출산과정에서 여성의 외부 생식기가 그대로 노출된다. 아기가 머리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그때 아이들은 직접 눈으로 보며 탄성을 질렀다. 생명이 탄생되기까지 엄마의 수고를 떠올렸을 터였다. 그러나 누구도 그 장면을 보고 '야동'이라 생각지 않았다.
  

배이상헌 교사가 성평등 수업자료로 활용한 영화 <억압 받는 다수>는 가모장제 사회에서 성차별을 받는 남성의 삶을 미러링 기법으로 만든 영화이다. 교육청이 문제 삼은 장면으로 웃통을 벗어던지고 가슴을 내민 채, 한 여성이 조깅하는 옆으로 주인공 남성이 유모차를 끌고 가고 있다. ⓒ 억압받는 다수

 
마찬가지로 <억압받는 다수>에 등장하는 웃통을 벗어던진 채, 운동하는 여성의 가슴을 보고 '야동'을 연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성폭행 장면도 위협하는 장면이 전부이지 성기노출도 없다. 유튜브 동영상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볼 수 있는 단편영화이다.

그렇다면 광주광역시 교육청 관료들은 왜 이 영화를 문제 삼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배이상헌 교사에게 수업을 받았던 학생 중 일부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 사실을 학부모가 국민신문고를 통해 교육청에 민원으로 접수한 탓이다. 사실 필자는 중학교 1학년 시절 김동리의 소설 <까치소리>를 읽으며 마지막 장면에서 성적인 묘사에 놀란 적이 있다. 그 나이에 성적인 묘사가 불편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까치소리>가 중학생이 읽어서는 안 될 '야설'은 아니지 않는가?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교육청은 교사의 수업자료가 일부 아이들에게 불편을 준다고 판단하여 바로 '성 비위' 교사로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교육청이 경찰서에 직접 교사를 고발했다. 불편을 호소한 일부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도덕 교사를 소통시키는 자리를 마련하기보다 사법적 판단에 맡겼고 그렇게 처리했다. 교육적으로 빼어난 '성 평등' 수업자료임에도 배이상헌 교사에게 단 한 번의 소명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경찰에 고발했다. 그리고 경찰 수사가 시작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직위해제 시켰다. 심지어 해당학교 성고충심의위원회에서 해당 배이상헌 교사의 수업이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사실을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민주적인 교육행정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행태였다.

경찰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직위 해제된 지 1년이 훌쩍 지난 올해 8월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1년 넘게 자신의 삶을 부정당하며 인격적으로 수모를 겪은 배이상헌 교사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친 상태이다. 배이상헌 교사는 '성 평등' 수업이라는 교육적 목적을 위해 그에 적합한 수업자료를 착실히 준비하고 남다른 열정으로 이를 실천했다. 다시는 배이상헌 교사와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육행정에 대한 시각이 180도 바뀌어야 한다. 지시와 감독, 그리고 통제와 처벌 위주의 과거 국가주의 교육행정에서 벗어나 일선 교사의 교육활동을 지원하고 도움을 주는 지원체계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수년 전부터 교육청이 아니라 '교육지원청'으로 바뀌었다. 교육청도 일선 학교에 대해 상하 수직적인 관료행정이 아니라 학교교육을 지원하는 지원단위로 탈바꿈하는 모양새이다. 그것이 교육행정이 민주적인 교육행정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의 흐름이자 교육행정의 시대정신이다. 더구나 2년 전 절대 다수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면서 과거 '시학(視學)' 위주의 활동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교사의 교육활동을 돕는 장학 활동이 대세를 이루는 추세이다.
  

광주광역시 교육청 앞 항의집회(출처 : 전교조 광주지부) 성 평등 교육을 앞장서서 실천한 배이상헌 교사(사진 가운데) 사건은 경찰과 검찰 등 사법적 판단에 맡길 게 아니라 대화와 소통을 통해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의 사안이었다. 교육청은 경찰에 고발하는 것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면 교육청 본연의 역할을 외면한 것이다. ⓒ 전교조 광주지부

 
이번 사건은 광주교육청의 뼈아픈 실책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직위해제의 근거로 든 "국가공무원법 제73조의 3 제1항 제6호의 규정"에는 "비위의 정도가 중대하고 이로 인하여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기대하기 현저히 어려운 자"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이상헌 교사의 수업은 중대한 비위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배이 교사는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기대하기 현저히 어려운" 교사도 아니었다. 1989년 군부독재정권의 탄압을 뚫고 전교조를 탄생시킨 해직교사이자 30년 넘게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참교육을 실천해온 존경 받는 교사이다.
     
이 사건은 경찰에 고발하고 검찰이 기소할지 말지 1년을 기다리는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었다. 배이상헌 교사가 실천한 '성 평등' 교육 사건은 교육적으로 논의함으로써 충분히 해결하고도 남을 문제였다. 교사-학생-학부모 간 대화와 교류, 그리고 소통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교육적 성격의 사건이었다. 특히 성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온 한국 사회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럴 때마다 교육청이 소통과 대화의 장을 마련해 주어 오해와 갈등을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나서주는 게 교육청 본연의 역할이다.

더구나 '교원지위향상 및 교육활동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7조 1항'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교원에 대한 민원·진정 등을 조사하는 경우에 관계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당해 교원에게 소명할 기회를 주어야 하고,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그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인사상의 불이익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고 규정하고 있다. 교육청은 민원이 제기되었을 때 마땅히 배이상헌 교사에게 소명할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 더구나 직위해제라는 인사상 불이익한 조치는 더더욱 해서는 안 될 사안이었다. 교육부 '성 비위' 대처 매뉴얼보다 국가공무원법과 교원지위특별법이 상위법이기 때문이다. 실로 상하 수직적인 관료행정이 낳은 잘못된 판단이자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다.
  

관료행정의 남용을 비판하는 항의집회(출처 : 배이상헌) 국가주의 교육행정이 남용될 때 그것은 <행정폭력>이 될 수 있다. 교육청은 교육적 사안이 발생했을 때 경찰에 고발하거나 사법적 판단에 맡길 게 아니라 교사-학생-학부모 교육주체 간 소통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여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교육청 본연의 역할이다. ⓒ 배이상헌

 
이제 긴 고통의 시간은 지나갔고 해당 교사는 1년 넘게 매일같이 항의시위를 이어갔다. 그리고 지금은 몸과 마음이 부서진 상태이다. 교육청 관료들이 '성 비위' 대처 매뉴얼에 기댄 보신주의나 형식적 관료행정이 아니라면 이젠 교사-학생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며 회복하는 데 발 벗고 나서야 할 때이다.
#배이상헌 #참교육 #성평등교육 #광주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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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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