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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안 죽을 수는 없어?"... 시신기증 가족동의서를 앞에 두고

[강은경의 지리산 날적이 25] 죽음을 준비하는 엄마를 지켜보며

등록 2020.09.01 12:39수정 2020.09.01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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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 받았어? ...... 그러니? 잘됐다! 아우~ 홀가분하다!"
 
엄마(만 84세) 목소리가 밝디밝다. 안도감과 만족감으로 충만한 목소리. 홀가분하다니, 인생의 결승점을 바로 앞두고 마지막 장애물을 뛰어넘은 사람 같다. 엄마가 한껏 사기 충전 됐다. 죽음을 준비하며 사기 충전? 나는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휴대전화를 바꿔 쥐며 덩달아 활기찬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그렇게 좋아?"
"그럼! 장례식장 사용료도 시신 안치료도 무료라니, 니들에게도 잘 됐고... 이젠 됐다! 걱정거리 다 덜었다!"

"그런데 엄마, 조심해야 돼. 교통사고나 낙상 같은 사고로 시신이 많이 손상되면 안 가져간대. 자살한 시신도 안 받는대.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나 전염병에 감염된 시신도 안 받고."
"오, 그러니? 더 조심해야겠네."

"교회 안 나가지?"
"그럼. 코로나 때문에 난리통인데... 우리 교회는 목사님이 잘하셔. 온라인인가 뭔가로 예배 보는데, 우리는 어떡허는 건지 몰라서 그냥 주일날 테레비에서 아무 교회나 예배드리는 거 봐... 그럼, 나만 아프거나 죽는다면 문제가 아니지. 다른 사람들에게 병이 옮겨간다는 게, 그게 큰 문제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로 인류의 생존과 안녕이 심히 불안한 때다. 세상 누가 이런 낭패스러운 사태를 예상했겠나. 엄마는 이런저런 어지러운 시국을 훑는 말끝에, 다시 밝은 목소리로 '동의서'에 빨리 사인하여 보내라고 다짐을 받아 둔다. "은경아, 고맙다, 고맙다!" 거듭거듭 고맙다 하며.
 
엄마의 시신기증동의서를 받다
 

의과대학에서 보내준 시신기증 안내문. 엄마가 그토록 원하셨던 시신기증 신청을 이제야 밟기 시작했다. ⓒ 강은경

 
엄마와 전화통화를 끝내고 한동안 가슴이 저릿했다. 오늘 도착한 서류봉투를 여는데 손끝이 떨렸다. 단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보내온 '시신기증 안내문'과 '시신기증서' 등 문서가 들어 있는 봉투였다. 당진집에서 가까운 (천안) 의과대학으로 며칠 전 내가 신청한 서류이다.
 
몇 해 전부터 엄마는 자나 깨나 이런 노래를 불렀다. '시신기증 절차 좀 알아봐라~ 늦기 전에 얼릉 신청해야지~'(돌아가신 나의 외할머니와 큰이모도 시신기증을 하셨다)라고. '연명치료거부신청'을 한 후로, 엄마의 노래가 더 다급해졌다. "응, 응!" 나는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까맣게 잊은 듯이 '쑈' 했다. 그렇게 하면 '엄마의 죽음'이라는 그 절체절명의 이별을 영원히 미룰 수 있을까 싶어서.
 
지난 6월에 엄마와 아버지가 내 집에 오셨다. 두 여동생이 250여 킬로미터를 공손히 모시고 왔다. 두 분은 그 이동만으로도 기력이 달려 맥이 탁 풀어졌다. 이젠 다시 못 올 먼 길이라며 가쁜 숨을 토했다. '이번이 마지막 방문이다!' 마당 가득 분홍낮달맞이와 우단동자 꽃이 환하게 핀 날이었다. 보리수나무 가지엔 붉게 익은 열매가 불멸을 소원하듯 다랑다랑 매달려 있었다.
 
몇 달 만에 만났나? 그동안 엄마가 홀쭉 야위셨다. 꼿꼿하던 허리가 굽고 다리가 휘었다. 몸피가 반으로 쪼그라들었다. 건강했던 분이 지난해 척추 골절사고로 시술을 받은 후, 하루가 가파르게 늙어가신다. 엄마의 '시신 기증' 노래를 더는 외면하며 미룰 수 없게 된 걸까. 결국 때가 온 걸까. 놀란 마음이 찹찹하게 내려앉는다.

"살아서도 필요하다면 남을 위해 쓰기도 하는 몸인데, 썩어 없어질 몸을 쓸 데가 있고 필요한 사람이 있다니, 얼마나 다행이고 좋은 일이니. 그런 걸 죽어서 그냥 태우거나 썩히다니 아깝지 않니?"
 
엄마의 그 뜻은 거역할 일이 아니다. 주저하고 말고 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시신기증 가족 동의서'를 펼쳐놓고, 선뜻 펜을 잡지 못하겠다. 시신기증 서류를 신청할 때 '담당자'와 통화가 길었었다. 담당자는 '감사함'이 진중하게 배어 있는 따뜻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시신기증 가족동의서 시신기증시 배우자와 직계가족의 동의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 강은경

 
신청 서류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시신기증서 1부, 가족관계증명서 1부, 증명사진 2매.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 동의서 1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배우자와 직계가족의 동의서.
 
"저희는 해부학실습 후 시신을 화장하여 유가족에게 인도하거나 저희 대학내 봉안당에 안치합니다."
"네, 그런데 요즘은 기증한 시신이 너무 많다는 말도 들리고, 함부로 다룬다는......"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의과대만 해도 기증 시신이 부족합니다. 혹시 종교재단의 의과대학에선 기증하는 신도분들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저 그런데 사실......"
 

내가 더듬더듬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찜찜하게 엉켜 있던 속에 말을 꺼냈다.

"저는 괜찮아요. 제 시신 해부 말이죠. 제 몸은 괜찮은데...... 우리 엄마는, 엄마는...... 실은, 모 의과대 해부학실습시간에 참관한(취재) 경험이 있어요(의대생이 1년 동안 1구의 시신을 해부하는 해부학실습은 의과대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커리큘럼 중 하나이다.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전문지식, 의술 등을 쌓는 시간이다). 그때,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발기발기 해부되는 시신을 보며, 우리 엄마는...... 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네, 시신해부를 지켜보며, 죽어선 몸은 그냥 물질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아무리 그래도 우리 엄마 몸이 그렇게 해부되는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어요. 제 몸은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이미 죽었는데, 물질인데...... 그런데 엄마는, 엄마는 도저히...... 이상하죠?"
"아, 그 마음 이해합니다. 저도 그랬어요. 저도, 저는 정말 괜찮은데 엄마는 망설여지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우리는 형이 반대했고, 또 어머니가 기증을 강력하게 원하지 않으셨어요. 이제 문제는 접니다. 저는 꼭 기증을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저의 아이들을 설득해야 하니까요. 흔쾌히 따라주면 좋겠지만..... 고인의 뜻에 동의했던 가족이 기증 후에 마음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꿈에 자꾸 고인이 보인다 하시며. 그러면 시신을 돌려받는 절차도 복잡하고 비용도 크게 발생하고....... 그러니 가족 모두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네, 그런데 제가 참관한 의과대에선, 가톨릭 재단의 의대였어요. 해부학실습이 끝난 후 학교에서 9분의 합동장례식을 치르는데 (의과대마다 실습 후 시신 인도 방법과 절차가 다르다) 유족들을 모시고요. 그토록 숭고한 분위기의 장례식은 처음이었어요. 고인을 모두 칭송하며 감사하며... 특히 그해 해부학실습을 했던 학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진심으로 감사하고 감사하는 모습이 뭉클했어요. 고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지만, 정말이지 그 죽음(떠남)은 의미 있고 아름답다 싶었어요."
 
그 장례식을 떠올리며 펜을 들었다. 그럼에도 '동의서'에 사인을 못 하겠다. 서류를 밀쳐놓고 컴퓨터를 켰다. 6월 방문 때 찍은 엄마의 동영상을 찾았다. 유튜브 <은경씨 놀다>에 내가 올려놓은 '옥상텃밭 농사' 편. 보고 보고, 또 보았다.

엄마와 지리산에서의 즐거운 추억
 
내가 지리산자락 산촌마을로 귀촌한 지가 벌써 아홉 해가 되었다. 그동안 두 해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은 해마다 이곳으로 몇 번이고 즐거이 걸음했다. 지리산 풍광에 취했다. 앞장서 마을 아래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물놀이 마을 아래 계곡에서 물놀이 즐기시는 몇 해전의 부모님 모습. 이젠 물가까지 걸어가는 것조차 힘들어 하신다. ⓒ 강은경

 
엄마는 70여 년 된, 헐고 낡은 나의 시골집을 나만큼 좋아했다. 소박한 나의 거처와 산촌 생활을 동경했다. 아파트 취향인 아버지가 혹시 먼저 세상 떠나면, 산중으로 들어가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살고 싶다 하시며.
 
그때 엄마는 정말 '마지막 방문'이다 싶으셨을까. 어느 때보다도 꼼꼼하게 집 주변을 둘러보셨다. 이전 창고 자리에 새로 지은 붉은 벽돌집도 구석구석 들여다보았다. '예쁘다, 참 좋다......' 하시며. 구옥의 정지(부엌)를 살펴보다가 '너도 나처럼 망가져 내리는구나' 쓸쓸한 목소리로 말 하셨다.

솥단지 뒤쪽 부뚜막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내가 이사 왔던 그해, 무너진 부뚜막과 아궁이를 새로 만들고 솥단지를 걸어준 사람이 엄마였다. 그때만 해도 엄마의 체력이 청년이었다니.
 

부뚜막 작업 9년 전, 엄마가 무너진 부뚜막을 고치고 솥을 걸어주셨다. ⓒ 강은경

 

부뚜막 공사 무너진 부뚜막에 붙이려고 볏집 넣고 흙을 찰지게 다지는 엄마. ⓒ 강은경

 
이젠 스러져가는 페허처럼 엄마의 몸이 서늘해 보인다. 그렇다고 바지런한 태생이 어디 가랴. '무릎, 어깨, 등...... 골다공증약으로도 통증을 잡을 수 없다' 하면서도 엄마는 꽃밭의 풀을 이 잡듯이 뽑아주었다. '그동안 몸을 너무 많이 썼나 보다. 그러니 안 아픈 데가 없지' 하면서도 마당의 잔디를 곱게 깎아 놓았다. 내가 여동생들과 밤늦도록 맥주를 마신 통에, 다음 날 아침 늦잠에 빠져 있는 동안.
 

엄마 잔디밭을 곱게 깎고 계신 엄마 ⓒ 강은경

  

옥상텃밭 엄마에게서 배우는 농사법. 엄마의 지혜와 바지런함을 따라갈 수가 없다. ⓒ 강은경

 
오후엔 옥상 텃밭에 같이 올라갔다. 엄마의 농사법을 가르침 받아야 했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무식자이니. 코딱지만한 텃밭의 푸성귀를 가꾸며 쩔쩔매고 있었다. 엄마는 수십 년 동안 1만여 평의 사과밭 농사를 지은 촌부이다. 근래 십여 년은 아파트 근처의 노는 땅 5백여 평을 개간하여, 소일거리로 밭농사를 짓고 있다.
 
그렇게 엄마가 익혀온 평생의 노하우. 농사법뿐만 아니라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갈 수 없는 엄마의 지혜와 총명함. 그리고 무엇보다 바름! 자신의 죽음도 소신대로 착착 준비해가시는 분. 반면 88세의 아버지는 할머니 산소 옆에 묘자리를 준비해 놓으셨다. 시신기증은? 펄펄 뛰신다. 아프고 무섭게 그게 무슨 짓이냐며. 아니, 죽었는데 아프고 무서운 게 어디 있냐며 엄마가 핀잔해도 아버지는 또 아버지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다.
 
며칠 후 엄마와 전화통화를 했다.

"보냈니?"
"뭐요?"
"시신기증 동의서."
"아직."
"사인해서 얼릉 등기로 보내라니까. 니 아부지랑 니 동생들 사인도 받아야 하고......"
"아이, 엄마! 알았어! 누가 안 하겠대? 뭘 그렇게 재촉해?"

 
내 목소리가 뾰족하게 일어섰다. '알았다고!' 짜증을 있는 힘껏 부렸다. 전화를 끊은 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죽음은 선에도 악에도 평등한 운명이요. 공동의 휴식처이다.'
- 에드먼드 스펜서
 
아, 젠장! 곧바로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넣었다.
 
"엄마! 안 죽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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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2017년도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출간. 유튜브 <은경씨 놀다>. 네이버블로그 '강누나의깡여행'. 2019년부터 '강가한옥펜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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