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저는 학교에 가야하는지 몰랐어요" 어느 장애여성의 고백

[인터뷰]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가 꿈꾸는 사회

등록 2020.08.30 15:56수정 2020.08.30 17:18
3
원고료로 응원
최근 차별금지법 제정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며 소수자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장애인은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데 특히 교육에서 차별이 심각하다.

지난 8월 13일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장애 당사자이자 인권 활동가인 박김영희(59)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대표를 만나 차별 실태에 들어봤다. 장애인 인권 문제에 대한 기자회견을 방금 마치고 왔음에도 박김영희 대표는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애여성이라서" 
 

8월 13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박김영희 장애여성 인권 활동가를 만났다. ⓒ 김남희


"저는 학교가 당연히 가야 하는 곳인지 몰랐어요."

그녀는 입학통지서가 나와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무도 그녀에게 8살이 되면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제가 장애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할 거라고 여겨 학교에 대해 정확하게 말씀해주지 않으셨어요. 학교란 단순히 한글을 배우러 가는 곳이라고만 하셨죠. 이미 5살 때부터 할머니에게 글을 배운 저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같이 놀던 친구들이 학교 간다고 하나둘씩 사라지고 홀로 남았을 때야 8살이 되면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죠."

박 대표는 동생의 입학에 맞춰 10살에 학교에 입학했다. 자신보다 2살 어린 동생과 같이 학교에 보내면 동생이 곁에서 그녀를 지켜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동생과 같은 반이 됐어요. 반 친구들은 절 언니라고 불렀죠. 학교에 매일 가는 것도 아니었어요, 당시에는 일일 학습이라고 해서 학습지 같은 것이 집으로 왔는데, 저는 주로 집에서 학습지 공부를 하고 시험 때만 학교에 갔어요."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저를 업고 등하교를 시켜줬는데 이사를 가게 됐어요. 작은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조카들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부모님도 일해서 저를 업어 학교에 데려다줄 형편이 안 됐어요."

2020년, 박 대표가 초등학교를 중퇴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장애인의 교육 배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2018년 한국장애인개발원 장애인삶 패널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이 원하는 학력 수준은 중학교 0.9%, 고등학교 23.6%, 대학교 56.4%, 대학원 4.5%로 나타났다. 하지만 실제 학력 수준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2017년 보건복지부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만 졸업하거나 학교에 다니지 않은 장애인이 37.7%로 나타났다. 이는 중학교 졸업 16.7%, 고등학교 졸업 30.4%, 대학 이상 15.1%와 비교하면 가장 높은 수치다.

최종 학력이 초졸 이하인 장애인 비율 ⓒ 김남희


"저는 특히 장애여성이기 때문에 교육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은 항상 저를 보호해야 한다고 여기셨거든요. 저를 홀로 학교에 보내는 것에 대해 강한 불안감을 가지고 계셨어요."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교육에서의 배제는 장애남성보다 장애여성이 더 심각하다. 2017년 보건복지부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만 졸업하거나 학교에 다니지 않은 장애남성이 24.5%, 장애여성은 55.6%로 나타났다.

지난 11일에 만난 삼육대 사회복지학과 정종화 교수는 장애여성이 특히 교육에서 배제되는 이유를 전통적 가족주의 유교관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여성의 가족부담률이 낮다고 여겨 남성보다 여성의 교육을 중요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이로 인해 학업을 더 이어갈 수 있는 많은 장애여성들이 가족들의 반대로 학업을 포기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지표를 보면 가정 내 남녀의 교육차별은 더 두드러진다. 2018년 한국장애인개발원 장애인삶 패널조사에 따르면 장애여성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위 두 번째 이유로 집에서 못 다니게 해서(13.5%)를 꼽은 반면 조사에 참여한 장애남성은 집에서 못 다니게 해서를 단 한 명도 응답하지 않았다.

교육 차별이 빈곤의 악순환을 만든다

박김영희 대표는 만 36세의 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진 부모님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중졸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독립을 하고, 경제적 자립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이력서를 쓰는데 학력란에 쓸 내용이 없는 거예요. 초졸 검정고시 수료, 이 한 줄이 다였죠."

그런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임금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텔레마케터밖에 없었다.

"여성민우회 소개로 텔레마케터가 됐어요. 전화비를 직접 내는 조건으로 건당 10만 원을 받기로 했죠. 2개월을 꼬박 일해서 20만 원을 채웠지만, 회사가 부도나서 결국 그 돈을 받지 못했어요. 그다음에 찾은 직장이 114가 마련한 장애여성을 위한 일자리였는데, 정규직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야간에 근무하는 하청 업체 소속 비정규직 텔레마케터였어요. 그곳도 결국 손이 불편해 상담내용을 빨리 타이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교육만 받고 그만둬야 했죠."

이후 박 대표는 자신이 받는 대우가 부당하다고 생각해 장애여성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학력은 인권운동을 하는 데에도 큰 걸림돌이 됐다.

"제가 장애여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가 텔레마케터 경력도 있으니 전화로 장애여성의 이야기를 듣는 건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원에 지원했죠. 그런데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려면 전문대를 졸업하거나 관련 기관에서 3년 이상 근무를 해야 했어요. 그때 당시 저는 검정고시로 중졸 자격증까지 딴 상황이었으니까 자격 미달이었죠. 그래서 쉽사리 채용이 안 됐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고민 끝에 일단 그녀를 채용하기로 했다. 그 당시 발달장애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배경이 그녀의 채용에 한몫했다. 장애여성의 성폭력 사건 상담은 장애여성 당사자가 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녀의 앞엔 '조건부'라는 말이 붙어야 했다.

박김영희 대표는 학력 때문에 노동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차별받는 일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여성 인권운동을 20여 년간 했어도 장애인 인권교육을 하러 강사로 나갈 때 낮은 학력 때문에 강의비를 다른 사람들보다 적게 받아요. 또 관련 단체에서 연구 사업을 진행할 때 관련 학위가 없으니 참여하지도 못하고요."

실제로 직업을 갖고 직접 돈을 버는 장애인의 비율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보건복지부의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경제활동을 하는 장애인은 전체의 약 37%뿐이다. 이는 박김영희 대표가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던 17년 전(34.23%)과 비교해 거의 나아지지 않은 수치다. 특히 장애여성의 인구대비 취업자 비율은 23.4%로 장애남성(47%)의 약 절반 수준이다.  

장애인 인구 대비 취업자 비율 ⓒ 김남희


   
직업이 있는 경우에도 대체로 단순한 육체노동을 하는 직무에 머물러 있다. 장애인삶패널조사에 따르면 직업을 가진 장애인의 41.3%가 단순 노무 종사자다. 특히 경제활동을 하는 장애여성의 절반가량(51.5%)이 단순노무자이며 이는 장애남성보다 15.1%p나 높은 수치다. 단순 노무직은 대부분 일용직이거나 임시직이고, 근무환경이나 임금 수준이 열악한 곳이 많다.

정종화 삼육대 교수는 "많은 장애인이 학교에 가지 못해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없어 빈곤해지고 보호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 또한 2012년 발간한 '세계장애보고서'에서 상당수의 장애인이 낮은 교육 수준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저소득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 교수는 "장애인들이 겪는 빈곤의 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선 교육 수준을 올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교육이 장애인 빈곤 탈출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장애인을 가난으로 몰아넣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장애가 아니라 마땅히 받아야 할 교육을 받지 못하게 제약하는 우리 사회일지 모른다.

장애의 유무나 남녀에 상관없이 당연히 학교에 갈 수 있는 사회, 그간의 배움을 바탕으로 노동시장에서 제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사회,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회. 박김영희 대표는 그런 사회를 꿈꾼다. 그녀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그 발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장추련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애쓰고 있다.  
#장애인 #교육 #차별 #장애여성 #박김영희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열심히 발로 뛰며 세상을 밝히는 글을 쓰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단독] 김건희 일가 부동산 재산만 '최소' 253억4873만 원
  4. 4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