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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터진 친구의 눈물... 하태경 "제3윤창호법 추진"

[20-20 / 음주운전 ②] 국회에 다시 온 윤창호의 친구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등록 2020.08.31 07:59수정 2020.08.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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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 기획 '지나간 20년, 앞으로 20년(20-20)'을 선보입니다. 2020년 현재, 2000년을 돌아보며 2040년을 그리려 합니다. 사회 각 분야별로 지난 20년 동안 성과는 무엇인지, 그럼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또 무엇인지,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가 마흔 살이 됐을 때 좀 더 나은 사회가 되려면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 기대하겠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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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처벌 기준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된 ‘윤창호법’을 대표 발의했던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과 청와대 청원 등 법안 발의에 힘쓴 고 윤창호씨의 친구인 이영광, 김민지, 예지희씨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누군가의 한 사람은 소중한 사람들의 소중한 사람"이라며 "음주 운전은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 유성호

 
끝내 눈물을 보였다.

앞서 "내가 시민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사회가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하던 친구였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창호 동생한테는 오빠였고, 창호 부모님한테는 자식이어서, 제가 힘들다고 말하는 게 죄송스러운데..."라면서도 "친구를 잃어보니까...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다시 입을 연 친구는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국회의원님들께서는 의원님들의 남은 몫을 다 해줬으면 좋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냥... 다들 음주운전을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 누군가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2018년 11월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윤창호씨의 친구, 김민진씨의 말이었다. 

18년이 걸렸던 그 일
 

윤창호의 친구들 “음주운전 안 하셨으면 좋겠다” ⓒ 유성호

 
2000년,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0% 이상이었다. 그 기준이 0.08%로 낮아지는데 18년이 걸렸다.

2000년에는 술을 먹고 운전하다 세 번 걸려도 면허 취소가 되지 않았다. 그게 2회로 바뀌는데 역시 18년이 걸렸다.

2000년에는 음주운전을 하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어도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전부였다. 이를 최소 1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처벌하도록 한 것이 2007년 12월이었다. 그 후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으로 바뀌는데 다시 11년이 걸렸다. 


모두, 2018년 11월과 12월에 걸쳐 '윤창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생긴 일이다.
 
스물 두 살 젊은 친구의 꿈은 산산이 조각났고,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으며, 그의 미래 역시 무참히 짓밟혀 버렸습니다... (중략) 헌법 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사회복지'의무의 측면에서 국가는 이에 확실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은 의무임과 동시에 국가의 존립이유이자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2018년 10월 2일, 청와대 국민청원 중)

십 수년 동안 이뤄지지 않았던 변화의 출발점에는 윤창호씨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그의 친구 10명(김민진, 김주환, 박주연, 손현수, 손희원, 예지희, 윤지환, 이소연, 이영광, 진태경)은 병상을 지키면서 자신들의 분노와 슬픔을 사회적 의제로 변화시켰다. 그 목소리가 실린 청와대 청원에는 사흘만에 20만 명이 동의했고, 또한 그들이 국회의원 299명에게 전달한 '윤창호법' 초안은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부산 해운대구갑)을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지난 6일, 하 의원과 고인의 친구들 중 김민진, 예지희, 이영광씨를 국회 의원회관 도서관에서 만났다. 그들과 함께 '시민입법'의 의미를 짚어봤다. 그리고, 친구들이 얘기했던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얘기해봤다.

국회의원 299명 중 3명에게 돌아온 답

- 사고 사흘 후부터 자료 조사를 시작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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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창호씨의 친구인 이영광씨. ⓒ 유성호

 
이영광 "울다가 멍 때리다가 또 울다가 그렇게 있다가... 가해자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찾아봤어요. 경찰청 데이터를 봤는데 창호가 죽게 되더라도 절반 확률로 집행유예로 나오게 되더라고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사고 나기 반 년 쯤 전에 창호랑 음주운전 뉴스 보면서 이런 사람 감방에 넣어야 한다고 열불 올렸던 기억도 나더라고요. 후회됐어요. 그 때 뭐라도 했으면 창호가 내 옆에 있지 않았을까. 창호 부모님 찾아가서 허락해주시면 실명으로 공론화시키고 싶다고(말씀드렸고),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 윤창호씨가 입원했던 부산 백병원에서 법 초안이 만들어진 걸로 알려져 있는데요.

예지희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중환자실 앞에 담요 깔고 노트북 놓고 그렇게 했어요. 병원 지하 1층에 있는 푸드코트에서도 조사하고 작업을 진행했고,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도 있어서 회의나 법안 이야기할 때 단톡방도 이용했어요. 처음에는 창호 면회 간다고 만들었던 단톡방인데..."

- 국회의원 299명 전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김민진 "입법이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그리고 현행법이랑 개정안을 비교해서 보내드렸어요. 그것만 보내면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각자 역할 분담해서 조사한 해외 사례라든가 그 근거를 나름 마련해서 함께 보냈죠."

- 몇 사람에게 답이 왔나요.

예지희 "세 분이요."

하태경 의원실에서 바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하 의원은 "관심 있게 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에게는 "지역구에서 일어난 사고고, 사고가 났던 길은 나도 자주 다니던 길"이었다. 하 의원은 "법이 꼭 바뀌어야 한다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친구들을 만나기 전만 해도 그 확신이 아주 높진 않았다"고 했다. 다만 "일단 이 문제를 파보자는 정도의 결심"에 병원을 갔고, 가족과 친구들을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회의도 여러 번 했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영상 통화도 이용했다.

"동그라미였던 내가 세모가 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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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처벌 기준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된 ‘윤창호법’을 대표 발의했던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과 청와대 청원 등 법안 발의에 힘쓴 고 윤창호씨의 친구인 이영광씨, 김민지씨, 예지희씨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윤창호법’ 시행 이후 현 상황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2018년 10월 21일, 하 의원이 윤창호법을 대표발의했다. 발의안에는 여야 국회의원 103명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1/3 이상의 국회의원이 이렇게 뜻을 모은 건 20대 국회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2018년 11월 9일, 윤창호씨가 사망했다. 그로부터 20일 후 음주운전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제1윤창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다시 일주일 후 음주운전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제2윤창호법)'이 역시 국회를 넘어섰다.

당시 국회에서 이를 지켜본 이영광씨가 한 방송 인터뷰를 통해 말한 대로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 다음도 기약했었다. 이영광씨는 "음주운전이 없어질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했다. 예지희씨는 "블로그나 SNS 그리고 음주운전 근절 프로그램도 계속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십 수년 간 국회가 해내지 못한 일을 이뤘지만 그들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스로에게 생긴 변화에 대해'. 돌아온 답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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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창호씨의 친구인 김민지씨. ⓒ 유성호

 
김민진 "어떤 사고나 이런 거 봤을 때 다 내 일 같고, 저건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도 주기적으로 들어가 보고, 창호 사고 이후 지금까지를 생각해보면 안 변한 게 없는 거 같아요. 가장 힘들었던 건... 창호가 삶에 있었을 때 제가 동그라미였다면, 사고 이후에는 세모가 된 거예요. 그런데 세모가 된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거예요. 그게 가장 힘들었어요. 이제야 변한 제 모습을 받아들이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에요. 미래를 위해 지금의 나를 포기하지 않고, 지금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영광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어요. 그 때 '예전처럼 행복해지고 싶다'고 하니까 교수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첫 번째 할 일이다'. 그 말씀이 맞아요. 죽음이란 거, 사실 스물 두 살의 저한테는 너무 먼 얘기였거든요. 내가 가진 시간이 한정돼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소중한 일들만 남기고, 쓸모 없는 것들은 털어내고, 진짜 소중한 거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하 의원 얼굴에서도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하 의원은 "이따금 친구들이 아프다는 얘기가 들릴 때마다 걱정이 된다"면서도 "잘 이겨낼 거라고 본다, 큰 아픔을 시민입법으로 승화시킨 특별한 친구들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생긴 변화에 대해서도 전했다. 하 의원은 "의정 활동의 DNA가 바뀌었다"고 했다.

하태경 "아주 큰 교훈을 얻었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법을 개정할 때 일반 국민들이 보는 상식보다도 전문가들의 법적 해석이나 논리, 이런 걸 중심으로 많이 봤어요. 동료 의원들 중에 율사(판사, 검사, 변호사 등을 일컫는 말) 출신이 많잖아요. 윤창호법은 기존 법률에 비해 과잉 입법이라는 주장도 있었죠. 그런데, 친구들이 법이 바뀌어야 하는 필연적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런 비유를 들었어요. '음주 운전은 아파트 옥상에서 돌 던지는 것과 같다, 맞는 사람 죽는다, 사고가 예정된 운전이다', 상식적으로 맞는 말이잖아요. 친구들과 계속 만나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법의 기본은 양심과 상식이다', '울림이 큰 상식을 이야기하는 법은 일단 존중해야 한다, '배격하면 안 된다'. 의정활동의 DNA가 바뀌었어요."

의정 활동 DNA 바뀌었다는 하태경 "제3윤창호법 추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 의원 말처럼 "여전히 음주운전은 존재한다". 벌을 받지 않으려는 꼼수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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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창호씨의 친구인 예지희씨. ⓒ 유성호

 
예지희 "재판에 쓰이는 반성문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나누는 음주 운전하는 사람들 커뮤니티가 있는데요. 일정 부분 제한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영광 "음주운전 단속 위치 알려주는 어플 다운로드 횟수를 보고 어이가 없었어요. 음주 운전 한 사람 명의로 돼 있는 번호판 색을 다르게 하는 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요. 함께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하 의원은 "음주운전자에 대한 치료를 의무화한다거나 음주운전 경력자에게 시동 잠금 장치 같은 걸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하는 등의 안이 지금까지 나와 있는데 시간을 갖고 음주운전 예방에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해 입법을 준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 제3윤창호법이 만들어진다고 봐도 되는 건가요?

하태경 "이번엔 예방법이죠."
 
#윤창호법 #윤창호 #하태경 #음주운전 #시민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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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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