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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보내세요, 수능은 교과서 안 나와요" 담임의 말

코로나19가 심화시킨 교육 격차... 나는 오늘도 아이만 닥달했다

등록 2020.08.17 15:49수정 2020.08.1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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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학교가 문을 닫았다. ⓒ pexels


저녁을 먹고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내 아이들은 때 지난 무한도전 유튜브 영상을 보며 놀고 있었다. '그래, 온종일 모든 시간을 공부에만 할애 할 순 없는 일이지.' 속마음으로 나를 다독였다. 하지만 아이를 바라보며 속마음을 다독일수록 오히려 그 화를 참아낼 수가 없었다. 결국 밤 11시를 기점으로 큰아이에게 분노를 쏟아내고 말았다.


"그렇게 공부해서 어떻게 좋은 성적이 나오길 바라냐"는 말을 시작으로 '노력하지 않는데 어떻게 실력이 늘길 바라냐', '학원에서의 공부가 진정한 너의 공부가 아니다' 등등. 단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수많은 부정적 단어들을 쏟아 내 아이에게 상처를 줬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 분을 삭이지 못한 나는, 안방에서 큰 아이를 향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불안한 것이다. '공부의 질'이 아닌 '교육의 질'에 따라 귀결될 내 아이의 미래가. 내 아이도 나만큼이나 불안할 것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아이의 입장을 더 생각하고 공감하며 나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하지만 결국 아이를 금수저로 만들고픈 욕망이 승리했다.

불안의 원인

'코로나 발' 1학기 대면 수업을 강행하며 1차 지필고사를 치른 후 불과 20여 일 만에 2차 지필고사를 마쳤다. 결과는, 뻔했다.

대면 수업을 받은 시간이 아이가 학원에서 공부한 시간보다 짧았다. 그러나 빠듯한 학사일정에 맞춰 치러진 2차 고사의 시험 범위는 조정 없이 1학기 교과 분량에 맞춰졌다. '문제를 출제한 교사들은 대면 수업의 질과 시험문제의 난이도를 진정 동일한 수준에서 출제했을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공교육이 무너져 간다'는 이야기를 10년도 넘게, 우리 큰아이가 유치원 입학 전부터 들어왔다. 그 당시엔 '왜 공교육을 믿지 못할까?' 싶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게 다였다. 왜 그런 말들이 생겨났는지, 왜 해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에겐 그저 먼 이야기처럼 들렸을 뿐이다. '내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할 때쯤엔 무엇이든 바뀌어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하지만 나는 지금 누구보다 사교육의 절실함에 목메는 학부모가 되어가고 있다. 막연한 생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학부모에게 그 공교육은 '무너져 간다'가 아닌 '무너져 버린' 상태로 왔다. 아이의 학년이 높아질수록 공교육에 실망하고 절망하고 있다. 앞으로 두 아이가 더 이 날개 잃고 추락하는, 희망 없는 공교육의 틀 안에서 앞날을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수능은 교과서에서 안 나오는 거 아시죠?"

초등학교 때는 자기 주도적 학습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어려운 문제나 이해하기 힘든 문장들은 가정에서 틀을 잡아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전문적인 풀이 과정이 필요했고, 그 역할은 당연히 학교의 교사들이 담당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스스로 학습하며 힘듦을 토로할 때마다 담당 선생님께 도움을 청해보도록 이야기해주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손길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는 결국 학원에 보내 달라고 말했다. 

큰아이가 중학교 입학 후 첫 1차 고사를 치른 때 담임교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학업에 대한 상담이려니 생각하며 그동안 큰아이가 토로한 학업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했는데, 그때 담임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학원에 보내야 한다니까요. 수능은 교과서에서 안 나오는 거 아시죠?"

지금이라도 학원에 보내 현재 학년보다 선 학습을 해둬야 지역 고등학교 출신 학생들이 '성적 서열화'에서 그나마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여태껏 학원도 보내지 않고 무얼 했느냐는 질타가 따라왔다. 동시에, 공교육 교사인 자신도 자녀를 유명 학원에 보내어 '인 서울' 대학에 보냈다는 나름의 깨알 '자랑'까지 들어야 했다.  

그 순간 나는 죄인이 된 듯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학원에 보내는 것은 학부모로서의 마땅한 의무이자 책임인데, 난 그 당연한 의무를 내 아이에게 해주지 못한 무능한 엄마가 된 것이다.

사실 큰아이 주변의 또래 아이들은 모두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큰아이도 학교에서 듣는 수업만으로는 수행평가를 수행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나는 학원의 도움 없이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학습의 기본 틀을 잡아가길 바라는 욕심이 있었다. 또 자기 주도 학습을 통해, 사교육 도움 없이 학업을 잘 따라가는 공부 잘하는 자식을 둔 엄마가 되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의 욕심이자 욕망일 뿐 아이에겐 무엇도 도움 되지 않는 방법이었다.

결국 나는 아이를 학원에 등록시키며 사교육 대열에 합류했다. 공교육의 학습시스템을 믿으려던 학부모에게 엄청난 불신만 심어준 사건이었다.

큰아이는 친구들이 시험이 끝날 때마다 모의 답안을 맞추며 "선생님들은 거짓말쟁이"라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만큼만 쉽게 내겠다고 하지만 막상 시험지를 받아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의 하소연을 100% 신뢰할 순 없지만, 변별력을 기른다는 명목하에 수업시간에 배운 단계보다 문제를 더 어렵게 출제하는 교사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난 아이의 심정을 일정 부분 이해하며 그 의견에 동의한다.
 

내 아이만 닦달해대는 '대한민국의 학부모'가 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 Unsplash


아이만 닥달하는 대한민국 학부모

한 신문의 교육 지면에서 이런 기사를 보았다. '수능이 우리나라 수학교육을 망치는 주범이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수학교육혁신 센터장의 글이었다. '수학 과목의 교육과정은 학생 참여 중심, 역량 중심으로 변해왔지만 수능은 이러한 교육 과정의 철학을 무시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이라는 지적이었다.

또한 '교육과정과 수업방식의 괴리'에 따른 문제점과 '내신평가와 수업의 괴리'도 지적했다. 내신평가는 수업시간에 다룬 단원을 소재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변별력을 이유로 배우지 않은 개념들까지 평가 문제에 출제해, 결국은 '수포자'를 탄생시킨다는 것이다.

비단 이 문제가 수학이라는 과목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국, 영, 수, 사, 과 모든 과목이 같은 괴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과목별 차이는 어느 정도 있겠으나 이러한 문제가 사교육비 지출의 원인으로 작용하여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을 견고하게 지탱해주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대한민국은 '사교육 공화국'이 되었을까? 센터장은 기사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대입에서 수능의 영향력을 줄이지 않으면 우리 수학교육의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아이들의 학습권 격차가 빈익빈 부익부로 이어지고 있다. 교육격차가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소도시에서 중소도시로, 중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이어지는 교육의 질적 차이가 '실력의 양극화'라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했다. 하지만 10년은 고사하고 당장 1년 후의 입시 정책이 또 어떻게 바뀔 것인지 불안해하는 현실에선 수학뿐만 아니라 공교육의 미래도 대비할 수 없다. 내 아이에게도 수능은 먼 미래가 아닌 곧 다가올 현실이다. 공교육이 무너져 갈 때 먼발치에서 보고만 있다가 눈앞에서 무너져 내린 현실을 목도했던 나는, 오늘도 수능을 향해 내달리라 내 아이만 닦달해대는 '대한민국의 학부모'가 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 (https://brunch.co.kr/@rkh23475275)에도 게재됩니다.
#교육 #사교육 #공교육 #수능 #실력의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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