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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전 광복절 전날 국회통과한 이것... 일본의 '칼' 되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사과조항 없고, 어로수역 넓히고... '한일협정' 이용한 일본

등록 2020.08.14 08:28수정 2020.08.1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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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고 있다. 가문에서 전해지는 귀한 보검이라도 되는 듯이 한일관계가 불리할 때마다 끄집어내서 휘두르고 있다. 그때마다 일본이 내뱉는 것은 '모든 게 이미 해결됐으니 다물라'는 말에 가깝다.

한일협정으로 총칭되는 한일기본조약과 4개 부속협정은 1965년 6월 22일 일본 총리관저에서 체결되고 그해 12월 18일 발효됐다. 일본 중의원에서 비준안(승인안)이 통과된 것은 11월 12일이고, 한국 국회에서 비준안이 통과된 날은 하필이면 광복절 전날인 8월 14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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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8월 14일, 한일협정비준안이 야당없는 공화당 일당 국회에서 통과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합동통신


이 협정에 따라 과거지사가 다 해결됐다는 게 일본의 주장이지만, 그런 규정은 한일협정 어디에도 없다. 기본조약 제2조에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문구만 있을 뿐이다.

제2조는 1910년 8월 29일 이후의 식민지배에 법적 기초를 제공한 1910년 8월 22일 이전의 늑약들이 무효임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기본조약은 물론이고 부속협정 어디에서도 1910~1945년의 식민지배가 무효인지 아닌지를 선언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에 대한 법적 처리 역시 규정될 수 없었다. 다 해결됐다는 말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일본이 한일협정에 대해 애정을 갖는 것은 이 협정이 일본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기본조약 제2조를 통해 식민지배 문제를 살짝 비껴가면서 사과·배상 없이 국교를 정상화했고, 부속협정인 청구권협정에 따른 경제 지원 및 협력을 통해 한국 경제를 일본에 종속시킬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이 외에 또 다른 점이 한일협정에 대한 일본의 애정을 키웠다. 부속협정인 한일어업협정을 통해 독도의 지위를 모호하게 만든 점도 일본으로서는 커다란 수확이었다.

일본, 사과 없이 '경제 지원' 강조... 독도 지위도 모호하게 만들어    

1965년 6월 23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된 한일기본조약 조인식. ⓒ 동아일보


1946년 6월 22일 제정된 '일본의 어업 및 포경을 위해 승인된 구역(Area Authorized for Japanese Fishing and Whaling)'이라는 연합군최고사령부(SCAPIN) 지령 제1033호는 일본인의 어로 활동 범위에서 독도를 제외했다. 여기서 선포된 일명 '맥아더 라인'에 따르면, 독도는 일본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일본의 선박 및 그 인원은 독도(북위 37도 15분, 동경 131도 53분)에 대해 12마일 이내로 접근하거나 해당 섬과 어떠한 접촉도 할 수 없다(Japanese vessels or personnel thereof will not approach closer than twelve (12) miles to Takeshima(37°15' North Latitude, 131°53' East Longitude) nor have any contact with said island)."

이 규정은 일본 영해 범위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활동 범위를 독도로부터 12마일(19.2km) 이외로 한정함으로써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맥아더 라인이 법적 효력을 발휘한 것은 일본이 미군정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지배가 끝난 때가 1952년 4월 28일이다. 연합국과 일본의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1951년 9월 8일 체결)이 효력을 발휘함에 따라 미군정이 종료하고 일본이 주권을 회복한 그 날, 맥아더 라인도 함께 소멸했다.

강화조약 체결로 인해 맥아더 라인의 소멸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발표한 것이 있다. 국무원 고시 제14호인 '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에 관한 선언'이 그것이다. 이 선언은 독도를 명확하게 한국 영토에 포함시켰다. 맥아더 라인이 독도를 '일본인의 어로 활동 범위 밖'으로 규정한 것과 대비된다. 이 선언에 의해 생겨난 해양 경계선을 이승만 대통령이 '한·일 양국의 평화와 질서를 위한 평화선'으로 명명함에 따라, '평화선'이니 '이승만 라인'이니 하는 표현들이 나오게 됐다.

일본은 평화선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도를 지배하는 한국이 그렇게 선언했기 때문에 평화선은 규범적 효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친일파 지지를 받은 이승만 정권이 이런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식민지배에 대한 한국인들의 강렬한 한(恨)과 분노를 이승만 정권이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965년에 박정희 정권과 사토 에이사쿠 내각이 한일기본조약 부속협정으로 체결한 한일어업협정에서는 평화선이 인정되지 않았다. 어업협정 제1조는 "양 체약국은 각 체약국이 자국의 연안의 기선부터 측정하여 12해리까지의 수역을 자국이 어업에 관하여 배타적 관할권을 행사하는 수역으로서 설정하는 권리를 가짐을 상호 인정한다"고 선언했다. 해안으로부터 12해리(22.22km)까지를 배타적 관할이 가능한 전관수역으로 인정한 것이다.

종전의 평화선은 독도를 명확하게 한국령에 포함했다. 그런데 어업협정 제1조는 연안으로부터 12해리까지를 전관수역으로 인정했다. 독도가 한국령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해 해석의 여지를 남긴 것이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독도 주변 12해리를 전관수역으로 주장하는 게 가능했다. 일본은 이에 대해 이의를 걸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올해 4월 <일본문화연구> 제74집에 실린 최장근 대구대 교수의 '한일협정 이후 한일 간의 해양경계 변경이 독도 영유권에 미친 영향'이란 논문은 "이것은 문서상으로 합의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독도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또 제2조는 한국 본토와 독도 사이에 공동규제수역을 설정했다. 독도와 일본 본토 사이가 아니라 한국 본토와 독도 사이에 이를 설정했으니, 독도의 지위를 놓고 오해할 여지를 만들어놓은 셈이기도 하다.
 

한일기본조약.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촬영. ⓒ 김종성


기본조약에서 식민지배 문제를 모호하게 처리하고 어업협정에서 독도의 지위를 모호하게 규정하는 한편 일본의 어로수역을 넓혀놓았기 때문에, 한일협정은 일본에 이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베 신조 내각이 툭 하면 한일협정을 거론하는 것은 그런 정서를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한일협정에 대한 일본인들의 '애정'은 역사 교과서 서술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이에 관한 양국 교과서의 차이를 분석한 최영호 영산대 교수와 이유아 부산외대 교수의 논문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에 대한 한국과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기술'이 이런 문제를 다뤘다. 올해 5월 <한일관계사 연구> 제68집에 수록된 이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국교 정상화와 관련하여 한국의 교과서는 '한일협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반면, 일본의 교과서는 '기본조약'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1965년 6월에 기본조약과 4개의 협정이 체결된 것에 대해서 한국은 '협정'에, 일본은 '조약'에 각각 비중을 두고 관련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협정이란 표현보다는 조약이란 표현이 좀 더 국제법적 무게감을 갖는다. 일본 교과서에서 '조약'을 강조하는 이유는 중 하나는, 한일협정에 대한 일본의 긍정적 시선과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본 교과서들은 '조약'이란 표현을 선호하면서도 이것이 국교 정상화에 미치는 의미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 점에 관한 한, 한국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위 논문은 "한일 양국이 모두 역사로서의 국교 정상화에 대해서는 비중을 낮게 평가"한다고 말한다. 한·일 두 나라가 관계를 진지하게 발전시킬 필요성을 크게 고민하지 않은 결과로도 볼 수 있다.

한편, 한국 교과서에서는 한일협정에 대한 국민적 반대와 박정희 정권의 비민주성을 부각한 데 반해, 일본 교과서는 일본 정부를 부정적으로 서술하기보다는 한일협정이 미국 정부의 요청과 알선에 의해 체결됐음을 부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위 논문은 말한다. 협정을 체결한 일본 정부에 대한 일본 내 부정적 시선이 별로 없는 것은 한일협정 이후 일본이 커다란 이익을 본 것과 관계가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이 한일협정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면서 한국 측 권리행사에 제동을 거는 것은 한일협정 자체에 근본적 결함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한일협정에 기초한 1965년 체제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모색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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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저서: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신라왕실의 비밀,왕의 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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