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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원 세금 낭비' 용인경전철, 주민소송 길 열렸다

[용인경전철 주민소송 대법원 판결 의미]

등록 2020.08.12 17:46수정 2020.08.1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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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직 시장 3명 등 다시 판단하라" 판결
"주민소송 대상 법리 오해, 원심 판단은 잘못"

 

용인경전철로 인해 1조원 이상의 세금이 낭비됐다며 주민감사청구로 시작된 6년여에 걸친 용인경전철 주민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지난달 29일 나왔다. 주민소송단과 법률대리인들이 대법 판결 직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용인시민신문


잘못된 수요예측과 졸속 행정으로 1조원 이상의 세금이 낭비됐다며 주민감사청구로 시작된 용인경전철 사업의 손해배상 책임 여부를 주민소송으로 다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지난 7월 29일 '용인경전철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이 전직 용인시장 3명 등 관련자들의 책임을 물어 용인시가 1조127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라고 낸 주민소송 상고심에서 사실상 원고 패소를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소송단이 제기한 주민소송이 적법하지 않다며 청구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원심 판단은 주민소송 대상 등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으니 손해배상 책임을 다시 심리해 판단하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전직 용인시장 3명과 수요예측을 맡은 용역기관 등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판결문에 명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이어서 당시 경전철 사업 관계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가능성이 커졌다.

주민소송은 지방자치단체의 불법 재무회계 행위를 방지·시정하거나, 이로 인한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주민들이 제기하는 소송이다. 소송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뿐만 아니라 주민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지자체 전체 주민에 대해서도 모두 효력이 있다.

용인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은 경전철 사업으로 1조원 이상의 세금이 낭비됐다며 2013년 4월 11일 경기도에 주민감사를 청구했다. 이어 10월 10일 용인시장을 상대로 전·현직 시장과 공무원, 수요예측을 맡은 용역기관 등 경전철사업 관계자들에게 전체 사업비 1조127억원을 청구하라는 주민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가 김학규 전 용인시장과 박순옥 전 보좌관에게 용인시는 5억5000만원을 지급하도록 청구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그러나 이정문·서정석 전 시장을 비롯해 연구기관과 공무원 등 32명을 상대로 한 1조44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와 부당이득반환청구에 대해서는 모두 각하 또는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학규 전 시장 정책보좌관 박순옥씨에 대해 1심이 인정한 배상액 5억5000만원보다 늘어난 10억2500만원을 배상액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공동책임을 물었던 1심과 달리 김 전 시장은 대상에서 제외하며 과실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 판결 내용 살펴보니
 

용인시민들은 2013년 10월 10일 용인시에 전직 시장 등에게 1조127억 손해배상 청구를 하라는 주민소송을 냈다. ⓒ 용인시민신문



◇주민소송의 대상 판단 기준= 원심은 원고들이 주장한 청구 사유를 개별적으로 나눠 △주민소송 대상 해당 여부 △손해배상책임 유무 등을 판단해 주민소송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적법하지 않다고 보거나,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감사청구사항에 포함되지 않았고, 다른 감사청구 사항과 관련이 있는 사안이라고 볼 수 없다거나, 재무회계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주민감사청구'는 지자체장의 권한에 속하는 사무 처리가 대상이다. 그에 반해 (지방자치법에서 정한) 주민소송은 감사청구 사항과 관련이 있는 위법한 행위나 업무를 게을리 한 사실에 대해 제기할 수 있다. 대법원은 주민소송의 대상은 주민감사를 청구한 사항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충분하고, 주민감사를 청구한 사항과 반드시 같을 필요는 없다고 봤다. 

특히 주민소송은 공금 지출, 계약 체결과 이행 등 재무회계행위에 대해 감사를 청구한 주민들이 그 사항과 관련이 있는 위법행위나 업무를 게을리 한 사실에 대해 해당 행위 관련자 등에게 손해배상청구, 부당이득반환청구 등을 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이라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이정문 전 시장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요구= 소송단은 이정문 전 시장에 대해 △철제차량 선정 및 공사비 과다 지출 △램프 업(운영초기 위험도를 낮추기 위해 이론수요를 실제수요에 가깝도록 조정하는 것) 협상 미비 △분당선 연장 지연에 따른 손실 보상 △하도급업체 선정 관여 등에 대해 용인시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법원은 "실시협약 체결행위와 관련 있는 모든 적극적·소극적 행위를 확정하고, 법령 위반 등의 잘못이 있는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따져본 다음, 전체적으로 봐서 그 위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이 전 시장에 대한 1조32억원의 손해배상청구와 각각의 손해배상청구 요구 부분은 모두 파기돼야 한다고 사실상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이 전 시장의 행위를 개별적으로 나눠 각각 민사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그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는지 여부 등을 판단한 원심이 주민소송 대상에 대한 법리를 오해했다는 것이다.
 

ⓒ 용인시민신문


◇서정석 전 시장 추가사업비 부담협약에 대한 판단= 소송단은 용인시가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체결한 '조기개통 구간(죽전~기흥) 추가사업비 부담협약'에 따라 공단에 조기개통 추가사업비 209억원을 지급한 데 대해 서 전 시장은 용인시에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원심은 추가사업비 부담협약 부분이 감사청구사항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면서 손해배상청구를 요구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용인시가 부담하기로 한 209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요구는 분당선 연장지연에 대한 보상규정 부분의 주민감사청구 사항과 동일하거나, 적어도 그로부터 파생한 것으로 주민감사청구사항과 관련성이 인정된다"며 이 역시 원심이 주민소송 대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김학규 전 시장의 사업방식 변경, 재가동 업무대금에 대한 판단= 원고 측은 용인시가 실시협약을 위반해 용인경전철 준공검사를 내주지 않고, 최소운영수입 보장방식에서 연간사업운영비 보전방식으로 변경함으로써 용인시에 126억원의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또 2012년 4월 용인경전철(주)와 재가동 약정을 체결하면서 업무대금을 지급해 시에 350억원의 손해를 입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위법 사유로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준공검사를 내주지 않아 실시협약을 위반한 점, 무자격자를 공무원으로 채용한 점 등 모두 9가지를 들었다. 이에 원심은 주민소송 대상인 재무회계행위로 볼 수 없어 부적법하다거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은 "원고 측 주장은 지방자치법에서 정한 계약의 체결·이행에 관한 사항으로 재무회계행위에 대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사업방식 변경, 재가동 업무대금 부분은 주민소송 대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만큼 원심 판결을 모두 파기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순옥 전 정책보좌관의 위법한 공무원 임용에 대한 판단= 소송단은 박순옥씨가 정책보좌관으로 임용된 것이 무효인 이상 그가 재직하는 동안 용인시가 실시협약을 체결한 것도 위법하고, 재가동 약정 체결 등으로 용인시에 손해를 입힌데 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뒤집고 '위법한 공무원 임용' 부분은 재무회계행위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만큼 원고 측 상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용인시청 앞을 달리고 있는 경전철 모습(사진 용인시) ⓒ 용인시민신문



◇한국교통연구원 및 연구원들에 대한 판단= 소송단은 수요예측 및 용인경전철 측과 협상을 담당했던 한국교통연구원과 소속 연구원들과 관련, 수요예측에 명백한 오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중대한 과실이 있으므로 이 전 시장과 연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사업비 1조32억원 또는 용역계약대금 3억1450만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원심은 용역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용인경전철 실제 수요를 예측하지 못했더라도 이를 재무회계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어 주민소송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오류가 있는 용역보고서는 재무회계행위와 관련 있는 위법한 행위이거나 업무를 게을리 했다"며 "이러한 용역업무 수행이 민사상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에 해당할 때 용인시는 한국교통연구원이나 연구원들에게 손해배상청구 등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역시 주민소송 대상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므로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밖에 시 공무원, 시의원 및 사업관계자, 건설회사 등에 대한 원고 측 청구는 모두 기각됐다.

주민소송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한계

대법원은 "민간투자사업은 장기간에 걸쳐 지방자치단체 재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파급력 있는 재무회계행위에 해당한다"며 "지방자치단체장이 관련 법령을 위반했거나 사업 적정성 등에 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민투사업을 추진해 지자체에 손해를 입혔다면, 주민들은 지자체장이나 민간투자사업 관련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금 청구를 요구하는 주민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을 명시적으로 밝힌 사례"라고 의미를 부연했다. 용인경전철 주민소송은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주민소송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자체가 시행한 민투사업 관련 사항을 주민소송 대상으로 삼은 첫 사례다.

대법원은 "지자체와 계약을 체결하고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지자체에 손해를 끼친 경우에도, 주민들이 지자체에 그 계약당사자를 상대로 손해배상금 등의 청구를 요구하는 주민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을 밝힌 최초의 사례"라고 덧붙였다.

주민소송단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이정문 전 시장, 한국교통연구원 등의 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이 가능하다고 판시한 것은 대법원 스스로 새로운 법리를 선언한 것으로 전향적인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주민소송단은 그러나 "용인경전철에 관한 일련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주민소송을 제기했지만 원고가 모든 것을 증명하고 입증해야 해 제대로 된 책임추궁을 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이어 "파기환송심에서 적극적인 재판준비로 지방행정사무의 적정성 통제 및 지방행정의 감독에 관한 주민의 직접 참여를 실효적으로 보장하는 수단이라는 주민소송의 의미를 확립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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