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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임시정부 살림살이 맡는 재무부장에 선출돼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 / 36회] 그는 언제나 '광이불요'의 존재였다

등록 2020.08.12 16:50수정 2020.08.1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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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단장한 충칭임시정부 새롭게 단장한 충칭임시정부 ⓒ 조창완

 
일제는 1942년 12월 8일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독립운동가들이 예상했던 일이 현실화되었다. 임시정부는 많은 사람이 참여하기 위해 우선 정부의 적제를 개편하기로 했다. 이미 1942년 10월 열린 임시의정원회의에서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혁명자연맹 인사 16명을 새로 의정원 의원으로 선출하여 의정원을 대폭 확대하였다. 지금까지는 임시정부 계열 출신들만이었던 의정원이 명실상부한 '통일의회'로 바뀌게 되었다.

충칭에 자리잡은 임시정부는 할 일이 많아졌다. 미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총력전에 대비하여 지도체제를 변경하기로 하였다. 전시체제를 갖추기 위해 집단지도체제를 단일지도체제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개헌이 필요했고, 새헌법(약헌)에 따라 의정원회의에서 김구를 행정수반인 주석으로 선출하였다.

이어 실시된 선거에서 이시영ㆍ조완구ㆍ조소앙ㆍ차리석ㆍ조성환ㆍ박찬익을 국무위원으로 선임하고, 국무위원회에서 행정 각부의 장을 호선하였다. 이때 선출된 각료 명단은 다음과 같다.

주석 : 김구
내무부장 : 조완구, 외무부장 : 조소앙
군무부장 : 조성환, 법무부장 : 박찬익
재무부장 : 이시영, 비 서 장 : 차리석

이시영은 칠순이 넘은 나이에 다시 재무책임을 맡았다.

임시정부 창립 당시에 이어 두 번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임시정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고, 그 막중한 역할을 다시 맡게 된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임시정부의 살림살이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1940년 9월에 창설된 광복군의 경비까지 맡게되면서 재원조달이 중요한 과제였다.

이 시기 이시영은 물론 임시정부는 출범 이래 가장 분주하고 많은 일을 하였다.

1941년 12월 10일 김구 주석과 조소앙 외무부장 명의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선전성명서」를 발표했다. 국치 31년 만에 우리 정부가 일본에 공식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이에 앞서 11월 28일에는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명의로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채택했다. 일제 패망 후 고국에 새로운 정부를 세울 때 실행할 주요 정강과 정책을 담은 내용이다. 1940년 9월 17일 광복군이 창설되면서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되었다.

일제의 패망전망이 짙어 가면서 연합국의 수뇌 즉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 처칠 수상, 중국 장개석 총통이 카이로에서 전후 처리문제를 논의할 때, 임시정부는 장개석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약속받기로 '카이로선언'에서 확인하였다. 임시정부가 해낸 중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카이로선언은 그동안 분열과 대립을 거듭해 온 독립운동계에 자극제가 되었다. 공전을 거듭하던 임시정부 의정원회의가 정파 간에 타협의 분위로 돌아선 것도 이같은 정세의 변화에 힘입은 바 컸다.

각 정파는 1944년 4월 21일 제26차 의정원회의를 열어 '임시헌장(헌법)'을 개정하여 4월 29일에 이를 통과시켰다. '임시헌장'에서도 주석의 권한을 강화하여 비상시국에 대처하도록 하면서 김구를 주석에 연임시켰다. 행정부는 국무위원회와 행정연락회로 이원화했다. 

국무위원회에는 독립운동의 영수들과 각 정당의 대표자들을 안배하여 정책결정의 기능을 하도록하고, 정책집행과 행정사무는 주석이 임면하는 각 부장들이 맡도록하였다. 정쟁을 완화하기 위해 마련한 타협의 소산이었다.  또 부주석제를 신설하여 외교 분야에 능력을 갖춘 조선민족혁명당 위원장 김규식을 뽑고,  역시 같은 당 핵심인 김원봉을 군무부장에 선임했다. 정파 간의 안배가 크게 작용한 인선이었다.

이때에 선임된 임시정부 요인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주석 : 김구
부주석 : 김규식
국무위원(14명) : 이시영, 조성환, 황학수, 조완구, 차리석, 장건상, 박찬익, 조소앙, 김붕준, 성주식, 유림, 김성숙, 김원봉, 안훈(본명 조경한)

임시정부가 1919년에 수립된 이래 좌우 정파의 지도급 인사들이 망라해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국독립당, 조선민족혁명당, 해방동맹, 아나키스트들까지 참여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시영의 숨은 역할이 적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광이불요'의 존재였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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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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