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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원짜리 와인을 먹고 나서 벌어진 일

[아츄의 와인앤라이프] 내가 처음 마신 와인

등록 2020.08.10 21:12수정 2020.08.1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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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좋아하는 회사원 아츄의 와인 일기입니다. 인천지역 소모임 모임장으로 6년 동안 와인모임을 운영하며 발생했던 에피소드들을 풀어냅니다.[기자말]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시작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와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와인을 좋아하는 동네 형들을 만난 것이다. 사실 이 동네 형들은 같은 회사의 입사 동기들로 혼자 지내면 적적할 것 같아 같은 동네에 모여 살게 된 터였다.

각자의 숙소가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우리는 퇴근 후 자주 뭉쳐서 한 잔씩 하곤 했다. 식당에서 한 잔 하는 것보다 집에서 마시는 게 더 편했기 때문에 마트에서 마실 술을 고르고 집에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곤 했다.

이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마트에서 각자 먹고 싶은 음식과 술을 골랐다. 영훈이 형은 막걸리, 상민이 형은 소주, 난 맥주 코너에서 서성거리며 무엇을 마실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날은 이상하게도 와인 코너에 있는 와인에 눈길이 갔다.

'와인을 한번 마셔볼까?'

첫 와인, 선택의 기준은?
 

우리는 한 잔 하기 위해 모일 때마다 와인 다큐멘터리를 보며 와인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 Pixabay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와인을 마셔보고 싶었다. 흔하디 흔한 맥주, 소주, 막걸리를 떠나 다른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평소 포도 주스를 좋아했기 때문에 포도로 만든 와인을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와인 코너에 가서 와인을 고르려다 보니 너무 많은 와인들 때문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바로 가격이었는데 평소 천 원, 이천 원짜리 소주 맥주나 마시던 나에게 만 원, 이만 원씩이나 하는 와인은 심리적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순간적으로 '와인 비싼데, 그냥 마시던 대로 소주 맥주나 살까? 내 처지에 무슨 와인이냐?'라고 고민하던 찰나, 라벨에 발바닥이 그려져 있는 8,000원 짜리 와인을 보게 되었다. 몇 만원 짜리 와인에 비하면 다소 저렴한 가격이었기에 '그래! 이 가격이면 사도 될 것 같다!'라고 스스로를 납득 시키며 와인을 골랐다.

우리는 그렇게 마트에서 먹을 음식과 술을 골라 형의 방으로 돌아왔다. 영훈이 형은 전자레인지에 만두와 소시지를 돌렸고 우리는 그와 동시에 각자가 사온 술을 꺼내 놓았다. 내가 와인을 꺼내자 영훈이 형과 상민이 형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어 보았다.

"웬 와인이야?"
"응?! 우리 매번 소주 아니면 맥주만 마시잖아. 그래서 와인은 어떨까 해서 한번 사보았어."
"그래? 이번이 그럼 처음 와인을 사본 거야?"


상민이 형은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 보았다.

"대학생 때 몇 번 마셔보긴 했는데 와인 맛이 기억이 안나. 포도로 만든 담금주는 마셔봤는데 엄청 달았던 기억이 나네. 그것도 포도주가 맞겠지?"
"와인과 담금주는 차이가 큰데... 아무튼, 일단 와인부터 마셔보자. 우리 같이 나눠 마실 거지?"


영훈이 형은 우리에게 접시를 나누어 주며 질문을 던졌다. 

"응! 어차피 이거 혼자 다 못 마셔, 우리 같이 나눠 마시려고 산 거니까 나눠 마시자."

와인을 안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포도로 만들었으니, 와인도 달 줄 알았다. ⓒ Pixabay

 
나는 와인 뚜껑을 돌리며 흔쾌히 대답했다. 그때 당시 형의 집에는 와인잔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종이컵에 와인을 따라 마셨다. 농익은 와인이 왈칵왈칵 하며 종이컵 위로 쏟아졌다.

컵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같이 마시는 사람들의 문제였을까? 우리는 와인을 마치 막걸리 마시듯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다. 그런데 와인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이상하게도 내가 상상하던 그 맛이 아니었다. 그래서 난 너무나도 실망스런 표정으로 형들에게 말했다.

"이거 맛이 없는데? 무엇보다 하나도 달지가 않아!"

그러자 형이 놀랍다는 듯이 나를 보며 대답했다.

"맛이 없다고? 어느 면에서? 그리고 아니 왜 와인이 달 거라고 생각한 거야?"

나는 정색하는 형의 태도에 당황했다.

"어? 포도주 단 거 아니야? 우리가 먹는 포도도 엄청 달고, 그 포도로 만든 포도 주스도 달잖아. 그렇다면 포도로 만든 술도 달아야 하는 거 아닌가?"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형은 말꼬리를 흐렸다. 뭔가 할 이야기가 많은데 설명이 쉽지 않아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생각이 정리가 되었는지 형은 대답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일반적인 레드 와인은 포도 주스만큼 달지 않아. 달달한 와인도 물론 있지. 하지만 평소 레드 와인을 마신다고 한다면 달지 않은 드라이 한 와인을 생각하는 게 보통이야. 와인을 처음 마시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 아니 착각인데 와인은 달 거라고 느끼는 것. 나중에 네가 와인을 좀더 마셔보면 알겠지만 단 와인을 마시면 쉽게 질리기 때문에 반 병 이상 마시기가 쉽지 않거든. 그래서 단 와인은 식후에 마시는 게 일반적이야."
"그럼 오늘 우리가 마신 와인은 어때?"


난 호기심이 생겨 형에게 물어 보았다. 질문 몇 번에 와인이 점차 흥미로워졌다.

"음... 단것에 대한 기준점을 포도 주스에 두면 안되. 일반적으로 드라이한 레드 와인을 기준점으로 한다면 오늘 우리가 마시는 와인도 충분히 단 축에 속하는 거야."

형은 와인을 목에 털어 넣으며 대답했다.

"아니?! 이게 단 축에 속한다고? 그럼 얼마나 달지 않은 와인을 마시는 거야? 그리고 달지 않은 와인이 맛있어?"

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형에게 따지듯 물어보았다. 그러자 형은 단오하게 대답했다.

"응!"
"오! 꽤 자신만만하네? 그래도 난 잘 모르겠는데?"
"와인의 세계는 복잡하고 심오하지. 그리고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어.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 받았다면 그 이유가 있겠지? 바로 맛있기 때문이야. 네가 와인을 좋아하게 되면 소주나 맥주보다는 와인을 더 찾게 될지도 몰라. 비록 처음엔 어렵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와인은 마셔본 만큼 또 아는 만큼 맛있어 지는 음료거든."


형은 자신에 찬 투로 대답하였다. 아니 그런데 이 형이 이렇게 와인에 대해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던가? 자신은 어느 정도 와인을 마셔본 투다. 평소에 와인 마시는 모습을 전혀 본 적이 없는 터라 나는 의아해 하며 형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형, 와인 좀 잘 아는 것 같네? 우리 몰래 와인 마시고 다녀?"
"아... 우리 집이 마트를 하잖아, 더군다나 우리 가족들이 와인을 좋아하기 때문에 집에 가면 종종 마시는 편이야. 잘은 모르고 그냥 좋아하는 정도지."


알고 봤더니 영훈이 형의 부모님은 아주 큰 마트를 운영하고 계셨다. 마트에서 와인도 취급하기 때문에 꽤 오래 전부터 와인을 소주 마시듯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고 했다. 오늘 와인을 마시지 않았다면 몰랐을 배경이었다. 형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네가 고른 와인은 '베어풋'이라고 정말 유명한 와인이야. 그만큼 대중적이라는 말이지. 그런데 이 대중적이라는 게 맛있다 맛없다를 구분 지어 주지 않아. 그 이유는 사람의 입맛은 상대적이기 때문이야. 즉 많은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와인이지만 그것이 꼭 맛 때문이 아니라 가격적인 이유 혹은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환경 때문일 수도 있어. 또 사람의 입맛은 매우 주관적이라 지금은 맛있더라도 나중에는 질릴 수도 있는 거지."

형은 지치지도 않고 술술 말을 이어갔다. 형의 이런 모습이 정말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형의 설명을 들을수록 또 와인에 대해 알아갈 수록 점점 흥미가 생겼다.

"와인의 세계는 정말 심오하구나."
"심오한 것보다는 즐겁지. 재미있어. 와인은 알면 알수록 맛있는 술이니까 앞으로 시작해 봐도 나쁘진 않겠다."


영훈이 형은 빙긋이 웃으며 의미 심장한 말을 날렸다. 그때는 몰랐다. 이것이 나의 와인 인생에 시발점이 될 줄은. 우리는 이날 이후로 본격적으로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니 이날 이후로 영훈이 형이 소주와 맥주 등 다른 술들은 배제한 채 와인만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반 강제적으로 와인의 세계에 점차 입문하게 되었다. 그렇게 와인이 일상처럼 습관화 되다보니 낯선 술이 아닌 소주처럼 친숙한 술이 되었고 우리는 점차 와인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한 잔 하기 위해 모일 때마다 와인 다큐멘터리를 보며 와인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와인에 대해 지식이 쌓이다 보니 그제서야 형의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와인을 안다는 것은 와인을 더 맛있게 마시는 방법을 터득해 간다는 것을 뜻했다.

깊은 맛의 와인처럼 우리들만의 모임도 점점 깊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들만의 작은 동네 모임에서 인천 지역을 대표하는 와인 모임을 만들게 되는 것은 조금 더 훗날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아츄의 와인 인생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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