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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우정어린 질책과 황염배의 의도성 비판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 / 33회] 이시영은 대단히 역사에 밝고 박학다식했다

등록 2020.08.09 14:57수정 2020.08.0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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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1868-1953) ⓒ 독립기념관

 
피난지의 망명객에게 자료나 사료가 있을 리 없다.

젊은 시절의 공부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읽었던 우리 역사의 지식을 바탕으로 반박문을 썼다. 중국에서, 중국인들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한자로 지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다(誣史辨正)"의 정신이었다.

『감시만어』는 "내용 중에서 약 50%는 한국과 중국의 우호론 내지 연대론을 주장하는 내용이고 25%는 황염배의 『조선』을 비판하는 내용이며 나머지 25%는 대종교적 역사인식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였다." (주석 9)

먼저 중국인들에 대한 '우정어린 질책'이다.

이제 한국사람들은 오래동안 나라를 잃어버린 경험을 해오면서 바야흐로 새로운 살길을 찾아 나서고 있는데, 중국 사람들은 한국인의 발자취를 뒤따라 밟아 오면서 아직도 둥지 속의 제비와 같은 단꿈에 젖어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정녕 나의 괴로움으로 겨를이 없는데 다시 다른 사람의 슬픔까지 보태어 지는 것인즉 어찌 끝없는 통한으로 울고 싶어도 눈물마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삼가 뜨거운 눈물 가득히 중국의 인사들에게 경고하련다. 앞으로 한국사람들의 복국사업을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대해주어야 하며 더 이상 일시적인 흥분으로 시작만 있고 끝이 없어서는 안 되며, 또한 어느 한 구석의 재난을 구제하는 것처럼 겉치레 말만 질펀하게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진실된 마음과 진실된 힘으로 그 일을 원조해주어야 할 것이다. 중국은 일찍 청나라(光緖) 때부터 한국으로 말미암아 쇠약해지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위태로워졌는데, 따라서 중국을 구하려면 반드시 먼저 한국을 구해야 한다. 이는 논리학에 있어서 삼단논법인 것이다. (주석 10)


이시영의 중국 '간사한 소인배들'에 대한 질책과 우호협력의 중요성은 이어진다.

하늘이 혹시 우리 두 민족에게 복을 내려 주어 세상을 구해 줄 큰 별을 내어 주실 지는 모르겠지만 옛 말씀에 백성이 원한다면 하늘도 이에 따른다고 하였고 또 인재를 다른 시대로부터 빌어 올 것이 아니라고 하였거늘 비록 지금의 세상이라도 어찌 세상을 구제할 인물이 없겠는가?

이어서 원컨대 두 나라 인사들이 과거의 실패를 뉘우치고 그런 일이 장차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삼가 경계하면서 허심탄회하게 함께 도모하고 생사의 일선의 같은 처지에서 마치 자석이 바늘을 끌어당기듯이 지내어 간사한 소인배들이 투기하면서 장난하지 못하게 한다면, 비록 지금은 칠흑 같은 긴 밤이라 온전하게 살아갈 길이 없는 것 같지만 한 점의 서광이 대지를 밝게 비추고 있으니 국권을 회복하여 활약할 그때가 결코 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주석 11)


다음으로 황염배의 '일본미화'에 대한 비판이다.

황염배 씨가 호기심을 갖고 다시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사를 기술하여 거울로 삼자고 한 것은 물론 그 본의가 역사의 실상을 왜곡하자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오로지 일본을 대신하여 저들의 거짓된 인(仁)과 위선의 설을 선양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이상한 것은 우리 나라의 고전을 조사하고 유풍을 탐방하면서 어찌하여 은인문사(隱人文士)들을 찾지 않고 일본사람들의 일방적인 말에만 오로지 의존하였으니 그야말로 본(本)을 버리고 말(末)을 좇으며 사실을 버리고 그릇된 것만 입증하는 것이 되었다.

황씨가 참고로 사용한 소위 행정연감은 일본의 범죄행위의 기록에 해당하는 책이었고 저들의 허상을 자랑하기 위한 비본(秘本)을 절세의 희귀본으로 알고 자랑하고 만족스러워 하는 것은 결국 일본사람들의 말투를 따라 한국을 모욕하는 셈이 된다. 일본사람들을 상대로 한국사의 진수를 검토하겠다는 자체가 너무 질성을 모르고 하는 짓으로서 여우와 더불어 그 가죽을 도모하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주석 12)


『감시만어』에 대해 연구한 학자들은 이시영이 이 책을 저술하면서 다른 자료(사료)는 몰라도 대종교의 자료를 참고ㆍ인용한 것으로 분석한다.

"이시영이 크게 참고한 『신단민사(神檀民史)』는 김교헌이 대종교신자의 입장에서 근대적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유교중심ㆍ중국중심의 국사체계를 부인하고, 배달족이라는 단일민족은 설정하여 민족사체계를 통사로서 구성한 책이다.(…) 따라서 이시영은 대종교의 영향을 받아 종교적인 믿음이 결부된 대종교적 민족주의 사관이라 할 수 있다." (주석 13)

이시영은 망명기에 대종교 신도가 되고 해방 뒤 환국하여 분망한 시기에 활동하면서도 대종교에 깊히 관여하였다. 『감시만어』의 저술은 이같은 사관에서 저술되었다고 할 것이다.

독립운동가 중에는 빼어난 사학자가 적지 않았다. 박은식ㆍ신채호ㆍ김교헌ㆍ장도빈ㆍ정인보 등이 꼽힌다. 이시영은 누가 봐도 사학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감시만어』에 나타난 기록은 전문 사학자 못지 않는 전문성과 독창성이 적지 않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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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1월 5일 상하이 비행장에서 임정 요인들의 귀국을 환송하는 모임 사진. 화환을 걸친 김구 주석 왼편으로 조완구, 김규식 선생이 보이고 오른편으로 며느님 안미생, 이규열(이시영 선생 차남), 이시영 선생이 보인다. 김구 선생 앞에 태극기를 든 소년이 어린 시절의 이종찬 전 의원이다. 1945년 11월 5일 상하이 비행장에서 임정 요인들의 귀국을 환송하는 모임 사진. 화환을 걸친 김구 주석 왼편으로 조완구, 김규식 선생이 보이고 오른편으로 며느님 안미생, 이규열(이시영 선생 차남), 이시영 선생이 보인다. 김구 선생 앞에 태극기를 든 소년이 어린 시절의 이종찬 전 의원이다. ⓒ 우당기념관

 
그는 유학자 출신이면서도 실학적 실용주의적 역사인식을 갖고 이 책을 저술하였다. 다음의 내용을 주목해보자.

조선왕조에 이르러 고려 때의 상무정신을 꺼리는 폐습이 생겨 전적으로 수문일도(修文一道)에만 치달아 대현(大賢)과 거유(巨儒)가 각 세대를 거쳐 계승하였으며, 유도(儒道)가 홍장되고 문덕이 보급되었으나, 정도에 너무 경주한 나머지 후생에 결(缺)한 바가 되고 돈학지사는 인의ㆍ성리의 과목만을 힘 쓸 뿐 달권ㆍ변통의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한 결과 자양(紫陽)의 조백(糟粨)으로 지리멸렬하다가, 이것이 다시 변하여 노예의 도습으로까지 화하였으니 저 역사적으로 전승되어 오던 강의하고 활발한 기풍은 일소되어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이 어찌 한탄스럽고 애석한 일이 아니겠는가. (주석 14)


 이시영은 1930년대 초반의 시각에서 국내외의 이른바 '신지식인들'을 비판한다.

요사이 자칭 문명한 신지식인으로서 세계 대사에 통요한 외교인들이 강국의 위세 앞에서는 습복을 하거나, 꼬리를 치고 불쌍히 여겨 줄 것을 애걸하면서도, 자국민 앞에서는 교만을 부리는 자들과 대원군 당시의 일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주석 15)

그는 한말 국난기 자신이 몸담았고 지켜보았던 정계, 특히 이완용과 송병준 그리고 왕실 척족을 겨냥한다.

조선조정은 수차례의 변란을 맞으면서도 징전비후(懲前毖後)의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흥방계성(興邦啓聖)의 덕이 없었으니, 광무의 말기 19년간은 악하고 혼탁한 부패정치로 조선개국 이래 가장 혹독하고 심각했던 시기였다.

매국의 적으로 이완용과 송병준의 도배들을 사람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나라는 점점 망해가고 있는 판국에 김씨 외척이 씨를 뿌리고, 민씨 족속들이 더 완숙시켜 놓았으므로 이들은 이루어진 결과를 받아들인데 불과하다고 하였다. (주석 16)


이시영은 대단히 역사에 밝고 박학다식했다. 그리고 우리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정평구(鄭平九)의 비차(飛車)는 임진왜란 때 진주목사 김시민이 사용하여 왜군 3만 명을 섬멸시켰는데, 이 비차는 가죽으로 만들었고 4명이 탈 수 있으며, 생김새가 마치 나는 황새와 닮았다고 한다.(…) 아무튼 비차는 세계항공의 비조(鼻祖)이다. 한국의 문자를 말하자면, 상고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많은데 마치 진나라의 전자(篆字)나 범자(梵字) 같은 것이어서 사용하기에 불편한 것이었다.

하늘이 내리신 거룩한 임금이신 세종대왕께서……멀리는 고대의 문자형을 본 뜨시고 새로운 글자를 창조하셨는데, 기묘하고 신통하여 세계의 온갖 인간과 물질의 음향을 옮기는데 조금도 부족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점이 전혀 없으므로 동서고금의 문자 가운데 그 우두머리가 되었다.

러시아의 어느 학자는 한글을 아주 과학적이며 수학적이어서 세계에서 이와 견줄만한 문자가 없다고 하였으며, 영국이나 미국의 인사들도 한국은 보배롭고 귀한 문자를 가진 나라라고 격찬하였다. 원세개는 오랫동안 서울에 주재한 바 있는데 한글의 영묘한 이치를 배워서 깨닫고 그가 중화민국 대통령을 지낼 때 한글을 채용하여 널리 중국에 시행하자는 주장을 폈었다. (주석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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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9. 23. 우천 조완구 동암 차리석 선생 회갑기념(앞줄 왼편부터 조성환 김구 이시영 선생, 뒷줄 왼편부터 송병조 차리석 조완구 선생) 중경 우리촌에서. 1941. 9. 23. 우천 조완구 동암 차리석 선생 회갑기념(앞줄 왼편부터 조성환 김구 이시영 선생, 뒷줄 왼편부터 송병조 차리석 조완구 선생) 중경 우리촌에서. ⓒ 역사공간

 
이시영은 총 23장, 70여 쪽의 『감시만어』를 1934년 3월 항주의 여관에서 1년여 만에 집필하여 100여 부를 찍어 중국 각지의 유명 서점에 배포하였다. 국내에서는 49년 만인 1983년 일조각에서 번역본이 햇볕을 보게 되었다.

"이시영은 『감시만어』를 통하여 황염배가 잘못 인식하고 기술한 조선의 역사를 변정(辯正)하면서 한국사의 독자성과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주석 18)

글이나 책은 언제 어디 누가 왜 무엇을 썼느냐가 중요하나 이시영이 망명지에서 『감시만어』를 쓰고 있을 때 국내에서는 최남선ㆍ이병도 등이 참여하고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사편수회에서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조선사』 37책, 『조선사료총간』 20종, 『조선사료집진』 3책 등을 간행하였다.  

모두 식민주의 역사학 즉 식민사관에 기초를 둔 책들이다. 이시영의 책은 잊혀지고, 식민사학자들이 만든 자료집은 해방 뒤 한국사학계의 '사료'가 되었다.

선생은 필자(황염배)의 위인이 조야하고 비루하여 무식함을 보고 같잖게 여겨 웃었다. 그러고는 항주의 여저(旅邸)에 돌아와서 붓을 들었다.

선생은 우리나라의 반만 년 전통인 풍속ㆍ정치ㆍ사회ㆍ경제ㆍ문화 등 모든 방면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증거가 뚜렷한 실상을 약술하여, 우리 한국이 비록 충분히 개발되지 못한 단점이 전혀 없지는 않으나, 황염배가 본 것과 같은 한국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논박하고 있다. (주석 19)


『감시만어』는 이시영 한 개인의 역사의식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사학사의 관점에서도 볼 때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첫째, 중국에서 출간된 대종교적 역사인식에 기반을 둔 역사평론서이다. 중국인이 저술한 조선학 총론의 성격을 띤 저서를 중국에서 한국인의 입장에 서서 반박한 최초의 저서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를 지닌다.

둘째, 『감시만어』는 임시정부 요인인 이시영이 저술하였다. 임시정부를 이끈 민족주의 우파 지도자들 중에서 역사관련계통의 저서를 간행한 사람은 이시영이 유일하다. 또한 이 저서로 인하여 당시 민족주의 우파 지도자들이 지닌 역사인식의 일단을 규명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그동안 민족주의사학을 연구하던 대상이 주로 한정된 사람과 한정된 저서에 국한하였으나, 『감시만어』의 출현은 그 외연의 확대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감시만어』에서 설명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이 지금의 입장에서 볼 때, 오류와 황당한 면이 보인다. 그가 역사학자가 아닌 탓도 있겠지만, 엄밀한 사료비판과 실증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그대로 준용하였다는 점은 『감시만어』가 지닌 가장 큰 결점이다. (주석 20)


주석
9> 정욱재, 앞의 책, 주석 44.
10> 권혁수, 앞의 책, 재인용.
11> 앞과 같음.
12> 권혁수, 앞의 책.
13> 정욱재, 앞의 책.
14> 이시영, 『감시만어』, 26쪽, 일조각, 1992.
15> 앞의 책, 32쪽.
16> 앞의 책, 47~48쪽.
17> 앞의 책, 22~23쪽.
18> 정욱재, 앞의 책.
19> 박창화, 앞의 책, 76쪽.
20> 정욱재, 앞의 책.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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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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