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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후천적? 차별금지법 반대하는 개신교인에게

개신교인 가정의학과 의사가 과학으로 본 '동성애의 원인'

등록 2020.08.08 14:57수정 2020.08.0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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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이 논란이다. 보수 개신교의 반대에 더불어민주당은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인은 대부분 동성애가 후천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의해 정해진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자기가 하지 않은 일을 '죄'라고 규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본 기사에서는 차별금지법의 핵심인 동성애 이슈 중 '동성애의 원인'에 대해서 살펴본다. 국민들과 보수 개신교인의 인식과 과학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그리고, 과학적 사실이 왜곡되어 알려진 이유를 분석해본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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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9일 정의당 심상정 대표, 배진교 원대대표, 장혜영, 강은미, 이은주, 류호정 의원과 부문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21대 국회 차별금지법 발의 기자회견을 열어 입법 취지를 설명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6월 29일 정의당은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6월 30일 평등법 시안을 제시하면서 누구도 차별 없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국회에 입법을 촉구하였다.

보수 개신교계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사불란하게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개신교 반동성애 활동가들이 '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상임대표 전용태 변호사)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복음 법률가회'(상임대표 조배숙 변호사)를 만들어서 법률지원을 하고 있다. 개신교 대형 교단이 연합해 반대하고 있고 한국 교회에 영향력이 큰 대형교회들도 반대 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개신교 내에서 비교적 건전한 대형교회로 알려진 분당우리교회와 온누리교회가 참여할 정도면 거의 모든 보수 개신교회가 대동단결하여 반차별금지법 전선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왜 보수 개신교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지 생각해보자. 일부 반동성애 활동가들과 교단의 기득권 세력들은 현 정부를 불신한다. 좌파정권으로 규정하고 공산주의가 했던 것처럼 기독교를 말살시키려 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현 정권이 하는 모든 일을 반대하고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하지만 다수의 개신교인이 그렇지는 않다.

핵심은 동성애 문제다. 보수 개신교인들은 성경을 삶의 표준으로 생각하고 가장 큰 가치로 본다. 이들은 성경에서 '동성애를 죄'로 규정한다고 들어왔고 알고 있기에 동성애를 인정할 수 없고 동성애 확산을 용납할 수 없다. 또한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 때문에 멸망했고 유럽도 동성애 때문에 교회가 쇠락했다고 믿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동성애가 확산하면 교회가 무너질 뿐만 아니라 가정이 파괴되고 나라도 위태로워질 것으로 생각한다.

보수 개신교인과 토론하면서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은 '동성애가 죄'라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사람은 '동성애의 성적 지향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선하신 하나님이 동성애자들을 평생 죄 가운데 살아가도록 만들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 동성애자들이 성경대로 '죄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로 죄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저는 동성애는 타고 나는 게 아니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이게 제 신앙 고백입니다."

한국교회에서 여러 가지 개혁적인 행보로 존경받는 목사 중 한 명인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는 설교 시간에 동성애와 관련해서 이런 발언을 했다. 동성애가 만약 타고나는 것이라면 성경에 '동성애가 죄'라고 나와 있더라도 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성애의 원인에 대해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2019년 5월 한국갤럽에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 조사를 했다. 선천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25%, 양육과 사회적 환경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47%였다.

과학은 무엇이라고 얘기하는가? 

2018년 KBS <심야토론>에 패널로 나왔던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과 조영길 변호사가 '동성애의 원인이 선천적이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라는 주장을 할 정도면 다수의 국민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사실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의 구분보다는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알아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본인의 선택은 적어도 성에 대해 눈을 뜨는 사춘기 이후에 동성애 성향이 정해질 때 가능하지만, 그 원인이 유전이든, 태아로 있을 때 엄마에게 받은 호르몬의 영향이든, 생애의 초기에 정해진다고 하면 그것을 개인의 의지적 선택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2013년 미국의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에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대상자의 41%는 동성애로 태어난다고 응답했고, 42%는 자신의 선택이라고 응답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응답자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동성애로 태어난다는 응답이 늘어서, 대학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응답자들의 58%가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동성애로 '결정'된다고 응답했다.

분당우리교회의 이찬수 목사는 동성애가 타고 나는 게 아니라고 '믿는다'고 했지만, 이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고 '과학'의 영역이다. 동성애와 관련된 수많은 연구 결과가 있지만 과학계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서 알기 위해서는 관련 학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미국 심리학회가 2011년에 작성한 '성적지향과 젠더 정체성'이라는 문서에는 '성적 지향이 자발적으로 바꿀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국 신경정신의학회에서 2014년에 발표한 '성적 지향에 관한 선언문'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인생의 어느 시기에 '동성애자'나 '이성애자'로 '결정'된다고 명시한다.
 
현재의 문헌과 관련 분야에 있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개인의 성적 지향은 선택이 아니라고 말한다. 성적 지향의 발달에 대해서 불확실한 것이 많지만, 비정상적인 양육, 성폭행이나 인생에서의 부정적인 사건이 성적 지향에 영향을 주었다는 근거는 없다. 현재까지의 지식은 성적 지향이 주로 초기 아동기에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 소아과학회에서 2004년에 발표한 '성적 지향과 청소년에 관한 선언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초기 아동기는 2~7세의 시기를 말한다. 성적 지향이 주로 이 시기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결정'된다고 선언한다.

2016년 세계 신경정신의학회에서 '젠더 정체성과 동성애 성적 지향, 매력과 행동에 대한 선언문'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성적 지향은 선천적(innate)이라고 단언한다. 길지 않은 선언문에서 '선천적'이라는 용어를 두 번이나 언급하면서, 선천적인 성적 지향이 바뀔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동성애가 후천적이라고 '믿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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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서울 중구 인권위 사무실에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차별금지법) 제정 필요 의견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한 가운데, 회견장 입구에서 일부 시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해외의 권위 있는 과학자 단체에서는 명확하게 '동성애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는데 왜 우리나라 사람 중 소수만이 선천적이라고 알고 있고, 선천적이라고 알고 있는 보수 개신교인은 거의 없는 것인가?

첫 번째 이유는 보수 기독교 언론의 역할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반동성애 신념에 유리한 해외 연구 사례만 소개한다거나 때로는 해외의 연구결과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반동성애 신념을 강화하게 했다. 대표적인 언론이 <국민일보> <크리스천투데이> <기독일보>다.

2019년 12월 20일 <국민일보>에 실린 "'동성애 치료 연구 결과 평균 79% 효과'… '선천적' 주장 뒤엎어"라는 기사를 보자. '2002년에 버드와 니콜로시라는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동성애 전환치료를 받은 사람의 평균 79%에서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마치 전환치료가 효과가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전환치료에 대한 여러 전문 학회의 입장은 분명히 다르다. 2009년 미국 심리학회에서 '성적지향에 대한 적절한 치료적 반응'이라는 제목으로 기존에 나와 있는 전환치료에 대한 연구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1960년부터 2007년까지 발표된 동성애 치료 관련 논문 중 분석 기준을 충족하는 논문 55개를 검토했는데, 결론은 '전환치료가 효과가 있다(성적지향이 바뀐다는)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과 오히려 '치료 참가자의 우울증이나 자살 생각 등 정신질환을 유발시킬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전환치료의 효과가 있었다는 논문들은 대부분 연구의 질이 낮고 여러 가지 '연구의 방법론적인 문제들'이 관찰되어서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영국정신치료협회의 '전환 치료에 대한 합의문'도 전환치료를 과학적으로 효과가 없고 부작용만 많은 사이비 치료로 규정한다. 세계신경정신과학회, 미국신경정신과학회, 영국신경정신과학회 입장도 다르지 않다.

2019년 9월 11일 <크리스천투데이>는 "'동성애 유전자 없다'는 과학적 사실 대중에 알려야"'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아마도 이 기사를 본 대부분의 보수 기독교인은 '동성애가 후천적'이라는 믿음을 강화할 것이다. 기사는 동성애 유전자와 관련해 2019년 8월 30일 <사이언스> 논문을 근거로 '동성애는 후천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논문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 연구는 '동성애를 유발하는 단일 또는 소수의 유전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이언스> 논문의 저자는 결론에서 '동성애는 단일 또는 소수의 유전자가 아니라 많은 유전자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소수의 동성애 유전자는 찾지 못했지만 동성애가 수많은 유전자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양식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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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이 이제라도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셨던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 땅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의 친구가 되어 줄 수는 없을까? ⓒ unsplash

 
두 번째 이유는 반동성애 활동을 하는 보수 개신교 과학자들의 영향력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반동성애 이념에 유리한 자료를 적극적으로 생산해내는데,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는 논문이나 과학적 결과만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학계의 정설과 다른 내용을 전파하면서 전문가의 권위를 이용해 보수 개신교인들을 설득해왔다.

2014년에 보수 개신교의 반동성애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성과학연구협회'가 만들어졌고 반동성애 활동을 위한 과학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이 단체의 회장은 민성길 전 연세의대 교수로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을 역임했고 한국 신경정신의학계의 대표적인 인사 중 한 분이다.

이 단체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발간한 책이 <동성애 과연 타고나는 것일까? - 동성애 유발요인에 대한 과학적 탐구>(라온누리)다. 저자는 길원평 교수(부산대 물리학과, 생물 물리 전공)와 두 명의 의사를 포함한 몇 명의 과학자인데, 동성애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는 자신들의 신념을 지지하는 논문들을 설명하면서 동성애 성향을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동성애 성향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학자적 권위를 이용해 학계의 정설을 왜곡해왔고, 대부분의 보수 개신교인들은 이들의 주장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면서 동성애 성향은 후천적이고 당사자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세 번째로 국내 영향력 있는 학술단체의 역할 부재도 중요한 원인이다. 해외의 권위 있는 학회 여러 곳에서 동성애자 인권 보호를 위한 입장문을 발표했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발표를 했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한국에 있는 수많은 의학회들 중 단 한 곳도 성적지향 원인을 포함해 동성애나 동성애자에 대한 선언문을 발표한 적이 없다. 한국의 여러 심리학회들도 마찬가지다.

해외 학회가 입장문을 발표하는 이유는 동성애자들의 정신, 심리 상태와 관련이 있다. 동성애자들의 정신 질환 유병률은 양성애자의 두 배 이상으로 높고 청소년 성 소수자의 자살률은 네 배 정도가 높은데, 이들의 기본적 인권이 보장될 때 정신 건강 상태가 개선되기 때문이다. 국내의 학회들도 학술 단체로서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동성애는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결정'된다는 것을 현대과학이 입증하고 있다. 동성애를 바꾸는 전환치료는 효과가 없고 부작용만 많은 사이비 치료로 규정한다. 이것은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처럼, 지구의 나이가 6000년이 아니라 수십억 년이라는 것처럼, 과학이 입증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시행돼도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로 바뀌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과학이 말하고 있다. 성적지향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고.

양식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고민을 해봐야 한다. 과연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이 만드신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정죄하는 것이 옳은지를.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결정된' 동성애자가 사회적 낙인과 배제와 차별 가운데 고통받고 있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과연 '이웃 사랑'을 최고의 계명을 알고 있는 기독교인에게 합당한 일인지를.

동성애자에게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이 많고 그들의 인권이 보호되면 정신질환이 감소한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기독교인들이 이제라도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셨던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 땅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의 친구가 되어 줄 수는 없을까? 차별금지법 찬성. 그것이 출발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베리타스>와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동성애 #차별금지법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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