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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경주장 트랙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영풍과 환경오염 ⑫] 연화광산 태백 고수골 광미적치장 (2)

등록 2020.07.31 14:33수정 2020.07.3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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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시 동점동에 있는 모터스포츠 경기장 ‘태백스피드웨이’. ⓒ 손영호

지난 7월 4~5일 태백스피드웨이에서 국내 최장수 모터스포츠 대회인 '코리아스피드레이싱' 개막전이 열렸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무관중으로 치러진 대회에는 10개 클래스(배기량에 따른 등급)에 70개 팀 2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8월과 9월에는 같은 장소에서 2~4라운드가 열릴 예정이다.

태백스피드웨이에서는 2019년에도 '넥센타이어 스피드레이싱' 2라운드와 4라운드가 열렸다. 어린이날에 개최된 2라운드에는 전국 15개 자동차 동호회의 차량 1000여 대가 경기장을 찾았고, 고즈넉한 동네 태백은 스포츠카가 뿜어내는 요란한 배기음으로 떠들썩했다.

특히 2라운드 대회가 지역축제인 '태백 모터스포츠 페스티벌'로 펼쳐지면서, 대회 전날부터 숙박업소와 음식점 등 태백 곳곳이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대회 당일에는 가족단위 관람객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류태호 태백시장도 참석해서 "모터스포츠는 태백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다"라는 인사말을 했다.(<중앙일보> 2019년 5월 6일)

사람들이 태백스피드웨이를 찾은 것은 자동차 경주와 휴식을 즐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행사가 진행된 곳이 예전에 어떤 장소였고, 인적이 드문 태백 산골짜기에 어떻게 자동차 경주장이 들어서게 되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태백스피드웨이가 들어선 곳은 원래 고수골이라 불리던 골짜기였다. 영풍광업이 연화광산 개발 과정에서 폐석과 광미(광물찌꺼기)를 매립하면서 골짜기가 평지로 바뀌었고, 그 위에 모터스포츠 경기장이 들어선 것이다.

연화광산 폐광하면서 고수골 광미장 태백시에 기부채납해
 

연화광산 폐광 1년 전인 1997년 9월 고수골 광미적치장. 4년 뒤 이곳에 모터스포츠 레저단지가 들어섰다. ⓒ 국토지리정보원

연화광산은 영풍광업이 1961년부터 30여 년간 개발한 우리나라 최대의 납·아연 광산이다. 연화광산 개발 과정에서 폐석과 광미를 매립하는 두 개의 광미장(광미적치장, 광미침전지)이 만들어졌다. 하나는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 광미장'이고 다른 하나는 태백시 동점동 '고수골 광미장'이다.

광미는 묽은 진흙 상태로 광미장에 보내진다. 이후 침전이 이루어져 광미장 뒤쪽에 폐수가 형성되고 광미는 건조되어 굳는다. 광미 폐수는 주변 지하수와 하천에 흘러들어 수질오염을 일으키고, 굳은 광미에서 미세한 광미가루가 날려 주변 토양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연화광산 광미에는 납과 아연을 분리하고 남은 중금속 찌꺼기, 선광 시약으로 사용된 맹독성의 청산가리(시안화칼륨)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연화광산 개발 과정에서 주변 생태계는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특히 고수골 광미장 인근 마을에서 광미 폐수로 식수원이 오염되고 광미가루가 날려 주민들이 고통을 겪었다. 1993년 연화광산이 휴광한 후에도 광미장으로 인한 오염과 위험은 계속되었다.

연화광산 휴·폐광 과정에서 대현리에 있는 광산 터와 시설은 종교단체에 매각되어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개발 당시의 폐갱과 광미장 등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광해(광업 활동으로 인하여 생기는 피해)발생 위험이 늘 있는 상태이다. 현재 대현리 광미장은 광해관리공단이 관리를 하고 있다.

고수골 광미장은 대현리 광미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영풍광업(1992년 영풍산업으로 상호변경)은 고수골 광미장을 매각하지 않고 태백시에 기부채납 했다. 구체적인 과정은 확인되지 않지만, 일각에선 고수골 광미장 인근에서 식수원 오염과 주민건강피해가 나타나자 책임을 면하기 위한 방편으로 광미장을 태백시에 넘긴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모터스포츠 레저단지로 바뀌면서 광미장 관리 주체 사라져
 

2019년 4월 태백스피드웨이 서킷(경주코스). 직선 코스는 900m, 서킷 한 바퀴는 2.5km이며 코스 폭은 13~17m이다. ⓒ 손영호

1996년 정부는 고수골 광미장 일대를 폐광지역진흥지구로 지정했다. 침체된 지역 경기를 활성화하고 민자 유치를 촉진하기 위한 조치였다. 당시 태백시는 탄광촌이었던 태백을 고원관광휴양도시, 체육도시로 바꾸기 위해 여러 가지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고수골 광미장에는 모터스포츠 레저단지 건설이 추진되었다. 한국모터사이클연맹 회장이 대표로 있던 엠제이드림월드가 민자사업자로 지정되었고, 2000년 '환매특약부 매매' 방식으로 광미장의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엠제이드림월드는 광미장 위에 복토를 한 후 국내 최초의 국제규격 오토바이 경기장인 '태백준용서킷'을 개장했다.

이후 개발업체의 경영난 등으로 모터스포츠 레저단지의 소유권이 두 차례 이전되었고 운영주체도 변경되었다. 레저단지 이름도 '태백준용서킷'에서 '태백레이싱파크', '태백스피드웨이'로 변경되었고 지금은 자동차 경주대회가 열리고 있다.

고수골 광미장에 모터스포츠 레저단지가 들어서면서 광미장 관리 문제가 나타났다. 대현리 광미장이 원래대로 남아 있는 것과는 달리, 고수골 광미장이 레저단지로 바뀌면서 광미장의 외형이 사라진 것이다. 레저단지가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광해관리공단, 원주지방환경청, 태백시 등 어느 곳에서도 광미장에 대해 책임 있는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

레저단지 하부에 광미 400만t 묻힌 것으로 추정돼
 

태백스피드웨이 내부. 경기장 트랙과 관람석 등을 제외한 나머지 땅은 흙으로 덮여 있다. ⓒ 손영호

고수골 광미장에 복토가 이루어지고 모터스포츠 레저단지가 들어서면서 그전처럼 광미가루가 날리지는 않게 되었다. 하지만 20년간 광미장이 조성되는 과정에서 주변 토양이 중금속에 오염되었다. 환경부가 2000~2001년에 정밀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고수골 광미장 주변 표토에서 비소가 토양오염 대책기준(50㎎/㎏)보다 약 4배(196.50) 높게 나타났고, 심토에서도 평균치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강원도민일보> 2001년 5월 11일)

환경부가 조사한 지점이 어디이고 이후 오염 대책이 마련되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광미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광미장을 관리하는 행정기관이 없다 보니 정기적인 조사나 대책 마련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모터스포츠 레저단지는 경기장 트랙과 관람석 등을 제외한 나머지 땅이 흙으로 덮여 있다. 흙땅을 통해 빗물이 광미에 스며들면 침출수가 발생해 지하수와 하천을 오염시키게 되며, 광미가 물렁해져 지반이 불안정해질 수도 있다.

레저단지 하부에 묻힌 폐석과 광미의 양은 얼마나 될까? 태백시의 개발사업 고시에 따르면 모터스포츠 레저단지의 넓이는 24만 7132㎡(7만 4757평)이다. 대현리 광미장의 3배가량 되고, 영풍 석포제련소 1공장에 있는 침전저류조(8800평)의 8.5배나 되는 매우 큰 규모이다. 폐석과 광미의 양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강원도민일보>(2001년 5월 11일)가 '400만t의 아연 슬러지'가 매립되었다는 보도를 한 적이 있다.

2005년 환경부의 '폐금속광산 토양오염 개황조사'에는 연화광산에 폐석 400만㎥, 광미 200만㎥가 매립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대현리 광미장만 언급되어 있고 고수골 광미장에 관한 언급은 없다. 환경부 조사에 두 개의 광미장이 모두 포함되었는지, 각각의 광미장에 매립된 폐석과 광미의 양이 얼마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도수터널·비상수로 통해 광미폐수 흘러
 

고수골 모터스포츠 레저단지. 하부에는 도수터널(①→②)이, 외곽으로는 비상수로(③→④)가 설치되어 있다. ⓒ 구글어스

1970년대 중반 연화광업소에 채용되어 측량과 시추 일을 한 A씨에 따르면, 고수골 광미장 조성 과정에서 광미장 하부에 도수터널이 설치되었고 외곽으로는 비상수로가 설치되었다.

먼저 고수골을 따라 길이 1.3km의 도수터널이 설치되었다. 도수터널은 ∩형 콘크리트 도수관으로 만들어졌다.(폭 1m 80cm, 높이 2m가량) 도수관 상부에 일정 간격으로 구멍이 나 있어 침출수가 관 내부로 흘러들게 되어 있다. 도수관 내부에는 약 10m 간격으로 철제 H빔이 설치되었다. 폐석과 광미의 하중을 견디게 하기 위한 보강조치였다.

하지만 도수터널이 완성된 후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나뭇가지, 자갈 등이 빗물에 쓸려 도수터널에 유입되면 내부에 설치된 H빔에 걸려 도수관이 막힌다는 것이다. 해결책으로 빗물을 유도하는 별도의 우회 비상수로가 설치되었다. 비상수로는 도수터널처럼 콘크리트 관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주변 석회동굴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고수골에 광미가 매립되면서 폐수가 도수터널을 통해 하천에 유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비상수로를 통해 석회동굴에도 유입되었다. 1995년 석회동굴이 발견되어 태백시가 조사를 했는데, 당시 동굴 안에 직접 들어간 A씨에 따르면 동굴 크기가 기차터널 만하며 동굴이 구문소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고 한다. 석회동굴 발견 사실을 보도한 <연합뉴스>는 지하수 오염에 관해서도 지적했다.

"연화광업소측이 이 석회동굴 아래에 콘크리트벽을 쌓아 계곡의 물을 그대로 동굴 속으로 유입되게 만들어 놓아, 20여 년 동안 중금속에 오염된 고수골 물이 아무런 대책 없이 땅속으로 유입, 지하수마저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1995년 8월 18일)

낙동강이 시작되는 구문소에는 구문안들(구문소 안쪽 마을) 주민들이 식수원으로 사용하던 '용천'이 있다. 고수골에 광미장이 들어서면서 용천 샘물에서 악취가 나고 중금속 가루가 섞여 나와 식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광미 폐수로 인해 용천이 오염된 것으로 보인다.

도수터널·비상수로 관리되지 않고 오염 침출수 계속 나와
 

2019년 11월 광미장 위쪽의 비상수로 입구. 자갈과 흙 등으로 거의 막혀 있다. ⓒ 손영호

2019년 A씨와 함께 고수골 광미장 위쪽을 방문했을 때, 비상수로 입구와 도수터널 입구는 자갈과 흙 등으로 거의 막혀 있었다. 오랫동안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A씨는 빗물이 빠지지 않아 광미에 침투하면 광미장이 붕괴될 수도 있다며 걱정했다.

이후 A씨는 태백시에 자갈과 흙을 치워줄 것을 요구했고, 구문소동에서 임시 준설작업을 했다고 한다. 현재 A씨는 광미장 아랫마을인 구문안들에 살고 있다. 만약 광미장이 붕괴하면 광미가 마을을 덮칠 뿐만 아니라 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낙동강에도 유입될 것이라고 한다.
 

광미댐 하부에 있는 두 개의 도수관. 오른쪽에 있는 ∩관이 도수터널 출구이다. 왼쪽 도수관은 근처 큰구무골의 계곡물이 나오는 곳이다. 오른쪽의 침출수는 육안으로도 오염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 손영호

광미장 앞쪽 광미댐 아래에는 도수터널 출구가 노출되어 있다. 2019년 두 차례 방문했을 때 도수터널 출구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아 계곡 쪽의 도수터널 입구에 물이 유입되지 않는데도 출구에서는 물이 나오고 있었다.

A씨는 광미장 하부의 샘을 막지 않은 채 광미를 매립했기 때문에 샘물이 도수관에 유입되어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도수관 내부의 철제 H빔에 녹이 생겨 녹물이 섞여 나온다고도 했다. 도수터널 출구 앞쪽에 모인 물은 육안으로도 오염된 상태로 보였다. 광미에 포함되어 있는 중금속과 녹 등으로 인해 오염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수터널 침출수에 대한 관리는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수질조사 여부를 확인한 결과, 원주환경청에서 2017년 6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수질조사를 했고, 태백시와 광해관리공단이 합동으로 2018년부터 연 1회 수질조사를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7년 6월 이전 수질조사 기록이 없는데다, 최근 조사결과도 공개되지 않거나 일부만 공개되어 오염 정도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고수골 광미장에 대한 책임 있는 관리 필요해
 

고수골 광미장과 낙동강은 2km가량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 구글어스

현재 침출수에서 광미장 조성 당시처럼 심한 악취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 정도 오염된 상태임은 분명해 보인다. A씨는 침출수가 유입되는 개천에서 수중생물을 거의 못 봤다고 한다.

도수터널의 안전성도 문제다. 도수터널은 1970년대 초반에 만들어졌다. 50년이 다 되어 가는 콘크리트 도수관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다. 비상수로 역시 마찬가지다. 도수터널과 비상수로에 대한 정기적인 점검과 관리가 필요하다. A씨는 광미장 상부 외곽에 별도의 우수배제시설(콘크리트 ∪관)을 설치해 줄 것도 요구하고 있다.

고수골 광미장과 관련해서 가장 큰 문제는 관리 주체가 없다는 점이다. 최근 A씨는 광미장 관리 책임소재를 밝히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했다. 현재 광해관리공단과 태백시가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광미장 관리가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일이다 보니 행정기관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고수골 광미장은 영풍광업이 남긴 유산이다. 1959년 설립된 영풍광업은 연화광산 개발을 통해 굴지의 광산업체가 되었다. 광산 개발을 통해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영풍 석포제련소와 고려아연이 설립되었고 재벌 영풍그룹이 탄생했다. 하지만 연화광산이 폐광된 후 고수골 광미장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

고수골 광미장의 폐수와 침출수는 50년 가까이 낙동강에 흘러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400만t 규모로 추정되는 폐석과 광미가 묻혀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 오염 침출수가 나올 것이다. 뿐만 아니라 광미장 인근 주민들은 광미장 붕괴 위험을 늘 안고 살아야 한다. 고수골 광미장으로 인한 오염과 위험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덧붙이는 글 ※ 다음 연재는 ‘[영풍과 환경오염 ⑬] 제2연화광산과 광해’입니다.
#영풍 석포제련소 #연화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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