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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의거 뒤 피신했다가 임시정부 재건 참여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 / 30회] 이시영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자리나 감투를 탐하지 않았다

등록 2020.08.06 16:31수정 2020.08.0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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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신안의 중학생 29명이 지난 10일~16일 중국 난징(南京)-항저우(杭州)-상하이(上海)를 찾아 한국의 독립운동 현장을 답사했다. 13일 학생들이 찾은 항저우 임시정부 옛터(오복리 2롱[弄] 2호 건물). ⓒ 소중한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일어난 윤봉길의거는 임시정부는 물론 한국 독립당 요인들에게도 더 이상 상하이에 머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김구에게는 거액의 현상금이 붙고, 여타 요인들도 일경이 눈에 불을 켜고 뒤쫓았다.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될 때부터 상하이는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요람이 되었다. 외국 조차지가 있어서 신변보호가 가능하였다. 이제 모두 13년 만에 제2의 고향과도 같았던 이곳을 떠나야 했다. 피신은 각자도생의 길이었다.

이시영은 멀리 북쪽 국경 지대로부터 남으로는 창사(長沙)에서 윈난(雲南)까지 피신생활을 하였다. 1933년 여름, 서호(西湖)에 머물고 있을 때 임시정부 국무위원이던 송병조와 차리석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이시영에게 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이 모두 존재조차 없이 되었으니 중심에 서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한 이시영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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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가 의거 직전에 마지막으로 찍은 모습. 윤봉길 의사가 의거 직전에 마지막으로 찍은 모습.

 
원래 기미 3ㆍ1운동 당시 임시정부가 탄생할 적에 선열들의 뜨거운 피가 얼마나 많이 뿌려졌소. 그리고 정부가 건립된 후로도 수많은 애국지사가 계속적으로 희생되었음은 다 잘 아는 사실이 아니오. 일본인이 우리 나라를 병합하고 세계를 정복하고자 하는 망녕된 생각을 품을 때 가장 유감된 바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간판을 없애지 못한 것이오. 미약하나마 국제상으로는 일황을 대항함이 쉴 새 없을 뿐 아니라, 일본인의 물자와 군사력을 소모시킨 것도 막대하오.

수년간 모든 난관을 무릅쓰고 내가 정부를 지켜온 것은, 순국 선열들의 영령이 내 머리 위에서 질책하시는 듯 두렵고 송구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 뿐, 내 일신의 고통을 돌볼 여유가 없었던 까닭이었소. 염량(炎凉)을 따라 모이고 흩어짐이 상도(常道)가 없고 사상에 현혹되어 이합하고 표변하는 무리들이 각기 책임을 다하거나 직분을 지키지 못하여 이 지경에 이른 게 아니겠소.

그러나 정부나 당의 일은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니, 난징(南京)에 있는 김구나 쟈싱(嘉興)에 있는 이동녕을 방문하고 협상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주석 8)


이시영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자리나 감투를 탐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양보하고 겸양하면서 주어진 위치에서 헌신하였다. 리더형이기보다 참모형에 가깝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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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후비엔춘 임시정부 기념관 항저우 서호 주변인 후비엔춘에 위치한 항저우 임시정부 유적지 ⓒ 조창완

 
얼마 뒤 이시영은 쟈싱에서 김구ㆍ이동녕ㆍ송병조ㆍ차이석ㆍ조완구ㆍ김명준ㆍ양우조 등과 만나 주석 자리는 윤번제로 하는 등 임시정부 개조에 합의하고 임시정부를 재건하는데 일역을 아끼지 않았다. 이때에 국무위원 겸 법무위원으로 천거되었다.

임시정부가 출범한 이래 어느 때라고 평탄한 시절이 없었지만, 윤봉길 의거 뒤 항주에서 지낸 기간(1932. 4. 13~1935. 11. 24) 3년 6개월은 그야말로 형극의 길이었다.

일제의 줄기찬 추적과 함께 독립운동가들이 천지사방으로 흩어져 있어 국무회의나 의정원회의가 정상적으로 열리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 시기에 이시영은 정신적 지주가 되고 폭넓은 아량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그래서 임시정부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주석
8> 박창화, 앞의 책, 74~75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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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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