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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도 사는 게 아냐" 돌봄 감옥 갇힌 가족, 대책은 없다?

[TV 리뷰] SBS <뉴스토리> ‘어느 장애인 가족의 비극’ 편

20.07.26 15:44최종업데이트20.07.2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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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일, 광주광역시 외곽의 농로에 주차돼 있던 한 차량 안에서 60대 어머니와 20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아들은 중증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코로나19 사태로 학교와 복지관 등이 문을 닫으면서 가족들이 온종일 발달장애인을 돌봐야 하는 상황.
 
지난 25일 방송된 SBS <뉴스토리> '어느 장애인 가족의 비극' 편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돌봄으로 인해 겪는 고통을 살펴보고, 이들을 위한 복지 정책의 현황 및 대책에 대해 취재했다.
 

SBS <뉴스토리> ‘어느 장애인 가족의 비극’ 편의 한 장면 ⓒ SBS

   
어느 장애인 가족의 죽음
 
숨진 모자가 발견된 차안에는 어머니가 쓴 것으로 보이는 유서가 남겨져 있었다. "그동안 후회 없이 살았다"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20대 발달장애 아들과 그의 어머니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숨진 모자의 이웃들은 어머니가 장애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이혼 뒤 장애 아들 그리고 딸과 함께 살아왔는데,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극의 단초는 코로나19였다.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진 뒤 어머니 혼자 아들을 돌봐야 했다. 중증 자폐성 장애의 아들은 상태가 점점 악화됐다.

지난 2018년 주간보호센터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상태가 호전됐으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다시 악화된 것이다. 주간보호센터 직원은 "소리를 지른다거나 벽을 친다거나 주변에 뭐가 있으면 가서 발로 차거나 손으로 때린다거나 그것 때문에 저희들도 너무 힘들었다"고 하소연한다.
 
취재진은 또 다른 발달장애인의 어머니이자 숨진 어머니와 평소 마음을 터놓고 지내왔다는 김유선씨를 만나 숨진 모자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을 확인했다. 김유선씨는 "쿵쿵거리면 층간소음이 생기고 소리를 지르고 하니까 관리사무소에서 적잖게 전화를 받은 걸로 알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너무 불편해진 것"이라고 귀띔한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은 살뜰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마음껏 소리를 지를 수 있도록 외곽에 주말농장을 구해놓았다. 아들의 정서에 도움이 될까 싶어 구정 연휴에는 온가족이 3박4일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아들의 '도전적 행동(발달장애인 자신 또는 타인의 안전에 해가 될 수 있는 행동)'은 더욱 심해졌다. 특히 아들이 벌인 소동 때문에 모처럼 떠난 여행마저 망치고 만다. 어머니는 고심 끝에 지난 2월말 아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김씨는 "두 달 여 동안 어머님이 전화를 안 받았다"며 "나중에 얘기하기를 '생때같은 자식을 떼어놓고 누구랑 만나 마음 편히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아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뒤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 결국 그녀는 지난 5월말 아들을 퇴원시켰다. 돌봄에서 비롯된 고통스러운 일상은 이후에도 지속됐다. 김씨는 "너무 지친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아들 퇴원 뒤 일주일 동안이 마치 3년 같더라는 표현을 했다"고 말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학교와 복지관이 문을 닫으면서 지적 장애나 자폐성 장애를 가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상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최근 발달장애인 부모 15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사태 이후 10명 가운데 9명은 자녀 돌봄으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를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이들은 공통적으로 만성 피로감과 감정기복, 수면장애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SBS <뉴스토리> ‘어느 장애인 가족의 비극’ 편의 한 장면 ⓒ SBS

   
돌봄 감옥에 갇힌 장애인 가족
 
그렇다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겪는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일까. 취재진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25살 은주씨 가정을 찾았다. 그녀와 어머니는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복지관 등이 문을 닫으면서 온종일 집에서만 지낸다. 덕분에 은주씨의 체중은 크게 불었다. 어머니 김현숙씨는 "욕구 충족이 안 되면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굉장히 퇴행한다"며 "지금은 저도 소통이 잘 안 된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 같다"고 하소연한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면서 은주씨의 자폐 증상은 더욱 심해졌고, 욕구불만과 도전적 행동 또한 크게 증가했다.
 
쉴 새 없이 냉장고 문을 여닫거나 방과 거실을 분주히 오가는 은주씨. 언제 집밖으로 뛰쳐나갈지 몰라 현관 앞에는 늘 장애물을 쌓아둔 상황이다. 하지만 인터뷰 도중에도 돌발 상황은 멈추지 않았다. 은주씨가 무작정 현관 밖으로 뛰쳐나간 것이다. 어머니가 은주씨를 어르며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완력으로는 은주씨를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은주씨를 따라 나선 어머니. 한 상가 건물에서 30분가량 함께 방황하다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딸과의 전쟁을 6개월째 치르는 중이다. 김 씨는 "무엇을 원하는지 소통이 어려운 데다 욕구 충족이 이뤄지지 않으면 도전적 행동이 나타나기에 늘 살얼음판 위를 걷는 느낌"이라며 "폐쇄만 한다고 다가 아니다. 국가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증 뇌병변 장애로 태어난 8살 보배. 그녀는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한다. 혼자서는 앉지도 서지도 누울 수도 없다. 식사도 누군가가 떠먹여주어야 가능하다. 때문에 물을 마시는 일조차 보배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보배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꼴로 등교한다. 그러다 보니 늘 긴장의 연속이다. 보배 어머니는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잘못하다 부러지고 그러면 또 다시 병원에 가야 하기 때문"이라며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다. 쳐다보고 돌봐야 하니까 그런 생각을 잊게 된다"고 말한다. 보배 어머니에겐 고된 현실을 탄식하는 일조차 사치였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종술 대표는 "장애인 가족은 경제 문제와 돌봄 문제가 연계되어 악순환에 놓여 있다"며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돌봄이 부재하게 되고, 돌봄을 하게 되면 경제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주장한다.
 
중증 자폐성 장애를 가진 24살 조우진씨. 그는 24시간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하다. 어머니 이은정씨는 "한시도 가만히 못 있고 용변 처리를 위해 기저귀를 차고 있다"고 말한다. 성인이 된 뒤에도 매 끼니를 떠먹여주어야 하고 혼자서는 목욕조차 할 수 없는 처지이다. 그동안 우진씨가 복지관에 머무르는 낮 시간이 어머니에게 허용된 잠깐의 휴식시간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이제는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이씨는 "아플 수도 없다"며 "저에게는 365일 내내 토요일, 일요일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씨에겐 또 다른 고민이 있다. 시설 수가 워낙 부족하다 보니 신청한 지 7년 만에야 다닐 수 있게 된 복지관마저 2년마다 심사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 그녀를 늘 불안케 하는 것이다.
 

SBS <뉴스토리> ‘어느 장애인 가족의 비극’ 편의 한 장면 ⓒ SBS

   
발달장애인 돌봄 부담 완화 대책
 
국내 발달장애인 24만 명 가운데 성인은 15만 명에 달한다. 중증 장애인은 8만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들을 돌보는 주간보호 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윤종술 대표는 "예산이 4천 명밖에 확보가 안 돼 있다"며 "학교를 졸업한 청년을 24시간 어머니하고 같이 있으라고 해보라. 완전히 아수라장일 것"이라고 말한다.
 
정부는 지난 10일,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장애인 가족의 돌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추가 대책을 마련했다. 방학 중 돌봄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발달장애 학생에게는 한시적으로 월 20시간의 활동지원 서비스를 더 제공하고, 장애인 가족에 대한 정서 지원을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윤종술 대표는 "'발달장애인 긴급 돌봄을 실시한다'고 했는데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실시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며 "'그냥 한다' 라고만 되어 있고 누가 할 건지 예산이나 이런 게 구체적으로 뒷받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은 "우리나라가 지출하는 복지비용은 OECD 평균과 비교해서 절반 정도도 되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아주 얄팍한 예산 논리를 가지고 활동지원서비스를 깎아 주간활동서비스를 추가하는 등 서비스의 총량 자체를 늘리지 않는 방향으로 해왔는데 그건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현재의 장애인 복지 예산 수준으로는 땜질식 처방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최근 발달장애인을 둔 두 가족이 비극을 맞이했다. 지난 3월에도 제주 서귀포에서 40대 어머니가 10대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언제 종식될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코로나19 사태.

장애인을 비롯한 취약계층에겐 더욱 고통스러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발달장애인 가족의 고통을 덜고, 더 이상의 비극이 발생치 않도록 장애인 시설 확충과 활동 보조 시간 확대 등 정부의 보다 근본적이며 실질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발달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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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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