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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 다 죽인다"... 수사관과 검찰 모두 한통속이었다

[김성수의 한국현대사] 차풍길 간첩조작사건

등록 2020.08.08 15:36수정 2020.08.0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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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풍길은 1944년 일본에서 태어났고 그 다음 해인 1945년 해방된 해 부모를 따라 귀국했다. 그러나 그의 부친은 1946년 다시 도일했다. 한국에서 대학까지 나온 차풍길은 전남 장성에서 농사를 짓다가 1976년 6월부터 79년 3월 사이 일본에 사는 부친의 초청으로 세 번 일본에 갔다. 일본에서 차풍길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폐기물처리업체에서 근무했다. 그 후 1979년 귀국한 차풍길은 동두천에서 양복점을 하다가 서울 쌍문동에서 포목점을 운영했다. 귀국하고 두 해가 지난 1982년 8월 7일 어느 날 갑자기 차풍길은 국가안전기획부(아래 안기부)로 끌려갔다.

전두환 정권의 안기부는 왜 조용하게 포목점을 운영하며 평범하게 살던 차풍길을 갑자기 영장도 없이 불법연행 해 간 것일까?

전두환은 1979년 12.12 쿠데타와 1980년 5.18 광주학살을 자행한 피 묻은 손으로 정권을 탈취했다. 그러고는 언론을 통폐합하고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각종 악법을 동원해 민주화운동을 탄압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두환은 정권의 불안을 해소하고 정통성을 찾기 위해 박정희가 그랬던 것처럼 반공주의 즉 '간첩 색출'로 눈을 돌린다.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안기부와 보안사령부는 전두환에 충성 경쟁을 벌이며 국가보안법을 남용한다.

그런 맥락에서 안기부는 1982년 8월 7일 차풍길을 연행해 66일 동안 가족이나 변호사의 접견도 없이 불법 구금 한 상태에서 가혹한 고문 조사를 자행했다. 안기부는 차풍길이 지난 1976년부터 1979년 일본에 있을 당시 조총련계 대남공작원들에게 지령을 받고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했다는 등의 간첩 혐의로 서울지방검찰청으로 송치했다.

머리채를 잡아 책상에 내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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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국가안전기획부 청사의 시설물. 1995.12.29 ⓒ 연합뉴스

 
차풍길은 지난 1983년 5월과 6월 서울고법에 제출한 항소이유서 등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진술했다.
 
1982년 8월 7일 오전 안기부 수사관들이 남산 안기부로 연행해 도착하자마자 옷을 벗기더니 7~8명의 수사관들이 달려들어 무자비하게 폭행을 가해 정신을 잃었다. 수사관의 질문에 부인하면 하체를 책상 위에 올리게 하고 상체는 바닥에 '엎드려뻗쳐'를 시키고는 옆구리를 차서 넘어지면 짓밟았다. 볼펜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관절 마디를 꺾고, 머리채를 잡아서 책상에 내리치는 등의 폭행을 가했다. 연행된 지 20여 일 지나서 YH 사건, 사북 사건, 100억불 수출 달성 등의 기사, 일본에 가서 했던 일, 동두천에서 양복점을 운영할 당시 미군부대 주변 상황 등을 외우게 하고, 위 내용을 바탕으로 5일간 문답 형식으로 내용을 주지시켰다.

검찰 조사 때 범죄 사실은 모두 허위 자백해 조작된 것이며, 관광 비자로 도일해 취업한 죄밖에 없다. 그러니 재수사해 결백을 밝혀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담당 검사가 내 요청을 묵살하고 조사를 종료했다. 검찰에서 대기하던 안기부 수사관이 구치소 지하실로 끌고 가 구둣발로 발등을 짓이기며 검사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도록 협박했다.

고문 당하다 검사를 만나 혐의를 부인하면 검사가 '역시 빨갱이는 틀리구나'라며 얘기를 듣기는커녕 다시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니들 가족 다 없애버린다'는 협박을 들었다. 정말 간첩 짓이라도 했으면 분통이라도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차풍길은 지난 2007년 필자가 몸담았던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실위)에서 1982년 당시 상황을 이렇게 진술했다.
 
큰 주전자와 긴 호스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의자에 묶고 한 사람은 뒤에서 붙잡고 한 사람은 얼굴을 붙잡고 입에다 물을 부었다. 숨을 못 쉬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반복했다. 처음에 있었던 방은 바닥에 얇은 카펫이 깔린 곳으로 공간도 넓었는데, 두 번째 있었던 방은 의자만 하나 있었고, 바닥은 시멘트 바닥같이 물이 흘러도 닦아 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수사관이 '검찰에 가서 안기부에서 진술한 대로 말하지 않으면, 일본에서 번 돈에 대해 복리이자로 계산해 재산을 몰수하고, 어린 자식들도 안기부로 불러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고, 검찰 조사 때 수사관이 옆방에서 항시 대기, 조서 작성시에는 입회했다.
 
한편 당시 차풍길 간첩 조작 의혹 사건의 수사와 1심 공소 유지를 맡았던 이종찬 전 서울고검장은 차풍길의 피의자 신문조서 작성 때 안기부 수사관을 입회시켰다. 이후 이종찬 전 고검장은 법무부 검사적격심사위원장을 거쳐 지난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지냈다.

'식구 다 죽인다'는 협박

차풍길은 또한 안기부에서 자신을 어떻게 간첩으로 조작했는지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안기부에서 고문당하는 동안 조사관이 신문을 보여줬다. 사북 탄광 노사분규 기사를 보여주며 '아느냐?'고 물어 '신문에서 봤다'고 답하면 '노사관계 동향파악'으로 적었다. 수출 100억불 달성 기사를 보여주며 '아느냐?'고 물어 '안다'고 답하면 '경제동향 파악'으로 몰았다. '팀스피릿 훈련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 '2사단 앞에서 장사해서 본 적이 있다'고 답하면 '군사기밀 탐지'로 몰아 그렇게 나를 간첩으로 만들었다.

안기부에서 66일 동안 햇빛도 못 보고 지하실에서 생활했다. 6일 동안 한잠도 안 재워 몽롱한 상태에서 고문을 받았고 '죽인다'거나 '식구를 다 죽인다'는 협박을 당했다. 수사관들이 일방적으로 조작한 '팀스피리트 작전 내용, 군사 기밀, 근로자 보수 문제' 등은 그들이 누렇게 퇴색된 신문을 오려다 주며 3일 동안 외우라고 해서 외운 것이다. 외우지 못하자 '보고 쓰라'고 했다. '너 혼자 3년만 살아주면 된다. 우리 좀 살려달라'는 말까지 했다.
 
차풍길의 아내는 진실위에서 지난 1982년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1982년 8월 7일 남편(차풍길)이 연행된 후 8월 12일 경 '남편을 잘 보호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의 발신자 미기재의 엽서를 받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안기부 수사관이 집으로 찾아와 남편 사진, 아이들이 오려놨던 신문, 고장난 라이터 등을 압수해갔다. 그리고 두 달 뒤 저녁 뉴스에서 남편이 고정 간첩으로 활동, 출국하려다 공항에서 붙잡혔다는 기사를 봤다. 그리고 며칠 후 검사실로부터 '참고인 자격으로 내사 요망' 엽서를 수신했다. 그리고 (남편이 끌려간 후) 4개월여 만에 서울구치소에서 남편과 첫 면회를 하게 되었다.
 
당시 차풍길의 변호인 임태선은 진실위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진술했다.
1차 공판에서 변론 연기, 접견금지 해제 요구 신청 후(1981년 12월 20일, 차풍길이 강제수감 된 지 4개월이 넘어서) 처음으로 면회했는데, 차풍길은 변호인인 나를 보자마자 안기부와 검찰 조사에서 고문·가혹행위로 인해 간첩으로 조작된 것이라고 호소했다. 당시에는 그런 사건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조작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차풍길에게 외견상 폭행의 흔적은 없었지만, 일관되게 주장해 거짓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검찰 조사에서도 허위 자백한 것을 보니 강압수사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결정적인 증인 입국 막은 안기부

차풍길은 법정에서 안기부가 조총련 공작원에게서 받은 물품이라고 주장하는 물품은 일본에 사는 누나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차풍길의 변호인이 일본에 살던 차풍길의 누나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러자 진실을 밝히겠다던 안기부는 일본 주재 한국 정부 파견관에게 '간첩 차풍길 연고자(의 누나) 차기순 입국 저지 지시'라는 제목의 전문을 보내 오히려 결정적인 증인의 국내 입국을 막았다.

국정원 진실위에서 차풍길 사건을 조사했던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한홍구 교수는 당시 안기부의 조작행위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국정원 진실위 시절 내가 조사한 차풍길 사건은 영사 증명이 어떻게 날조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안기부는 일본에 취업한 차풍길을 고용한 사장을 조총련에서 활동하던 제주도 출신 재일조선인으로 의심했다. 그러나 일본에 파견되어 있는 안기부 영사가 주변을 탐문하고 다른 사람을 시켜 본인에게 확인하고 일본 공안당국에 문의해 보아도 틀림없는 일본인이었다. 일본 파견관은 이런 사실을 안기부 본부에 보고했으나 본부에서는 전문을 보내 '첨부확인서 내용과 같이 영사증명을 작성 송부'할 것을 지시했다. 그 내용은 안기부 영사가 파악해 본부에 보낸 것과는 정반대로 일본인 사장이 조총련 간부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위와 같은 가혹한 고문 조사와 조작 수사를 거쳐 검찰은 1982년 11월 15일 차풍길을 간첩 혐의로 기소했다. 이때 안기부나 경찰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차풍길은 간첩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수백 명의 차풍길의 이웃들이 쓰고 서명해 검찰과 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1983년 3월 31일 서울형사지방법원은 차풍길에게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차풍길은 당연히 위 판결에 불복해 항소와 상고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은 각각 차풍길의 항소와 상소를 기각해 형이 확정되었다.

차풍길은 당시 돈이 없어 변호사 선임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빚을 얻어 변호사 4명을 선임하느라 재산을 다 탕진하고 빚더미에 앉았다. 결국 차풍길은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7년 6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하다 지난 1990년 2월 가석방되었다.

차풍길이 가석방 된 후 17년이 지난 2007년 진실위는 차풍길 사건에 대해 이렇게 진실규명을 내렸다.
 
차풍길에 대한 안기부 조서는 불법 구금 및 강압적 상태에서 자백한 것이므로 임의성이 인정되지 않고, 검찰의 조서는 수사관이 안기부에서 진술한 대로 검찰에서 진술하라고 협박했을 뿐만 아니라 수사관이 입회한 상태에서 작성된 것이므로 그 자백에 임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 조서는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 조총련 찬양 고무에 대해는 참고인의 진술도 안기부 수사관들의 강압 내지 기망(欺罔,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고 하거나, 진실을 은폐하는 행위)에 의한 것으로써 임의성이 인정되기 어렵고, 달리 범죄사실을 인정할 자료가 없다. 더구나 그 발언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자유민주질서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위해를 초래하는 내용이라 볼 수 없어 찬양고무죄를 구성하지 않는다.
 
사법개혁 절실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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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30일 민모 씨 등 참여연대 간사 9명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경찰이 서울광장을 전경버스로 에워싸 시민 통행을 막은 것은 위헌이라며 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낸 헌법소원 청구사건에서 재판관 7(위헌) 대 2(합헌)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30일 서울 종로구 북촌로 헌법재판소 대법정에 조대현 헌법재판관(오른쪽에서 두번째) 등이 입장하고 있다. 2011.6.30 ⓒ 연합뉴스

 
위 진실위 진실규명을 근거로 차풍길은 재심을 신청했다. 그리고 지난 2008년 7월 31일 서울중앙지법은 차풍길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재판부는 "안기부와 검찰에서의 진술 외에는 차씨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 차씨가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고 대한민국에 잠입했다거나 반국가단체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 그 구성원과 회합했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차풍길은 "불법 구금 및 수감생활을 한 8년의 공백으로 자식들과도 관계가 소원해지고 부모님도 전 재산을 팔아 구명운동을 하다 화병으로 돌아가셨다"며 재심 후 씁쓸한 감회를 밝혔다.

한편 조대현(1951- )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 1982년 서울형사지법 판사였다. 그는 당시 차풍길 간첩조작 사건의 1심 배석판사였다. 차풍길은 1982년 공판에서 자신이 불법으로 안기부에 연행된 뒤 안기부 요원들로부터 가혹한 물고문과 구타를 당했다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당시 판사 조대현 등에게 차풍길의 하소연은 우이독경에 불과했다. 조대현을 비롯한 판사들은 차풍길의 억울하다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결국 차풍길은 존재하지도 않는 조총련계 대남공작원의 지시를 받아 국가기밀을 탐지했다는 혐의로 징역 10년 형을 받았다.

지난 2010년 1월 14일 국민일보 기사 '과거사 반성없는 사법부'에 따르면 차씨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데 대해 조 재판관은 비서관을 통해 "전혀 기억이 없다"고 전했다.

남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치고도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아무 기억이 없다"는 머리 좋은(?) 판사!

이 나라에 사법개혁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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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국민권익위윈회 청렴포럼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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