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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집에 갇혔는데... 모르는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리뷰] 영화 <비바리움> 여러 층위에서 발현하는 현대의 공포

20.07.19 14:39최종업데이트20.07.1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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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바리움> 포스터 ⓒ (주)루믹스미디어


톰(제시 아이젠버그 분)은 여자 친구 젬마(이모겐 푸츠 분)와 함께 지낼 안락한 집을 알아보다가 부동산 중개인 마틴(조나단 아리스 분)으로부터 욘더 마을을 소개받는다. 두 사람은 똑같은 모양의 주택들이 세워진 욘더 마을의 9호 집을 둘러보다가 기묘함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마틴이 사라지고 둘은 어떤 방향으로 가도 다시 9호집에 통하며 마을에 갇히게 된다.

며칠 후 9호 집 앞에 아기를 담은 박스가 도착한다. 박스엔 "아기를 기르면 풀려난다"고 적혀있다. 욘더 마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된 톰은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나가는 길을 찾기 위해 마당을 파기 시작한다. 반면에 젬마는 아이를 키우며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영화 <비바리움>은 완벽한 삶의 공간을 찾던 커플이 미스터리한 마을의 9호 집에 갇히게 되는 상황을 소재로 한다. 로칸 피네건 감독과 각본가 가렛 샌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작된 부동산 시장 침체가 야기한 아일랜드의 유령 부동산과 그곳에서 집을 팔지 못해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목했다. 그 결과 주택 단지에 갇힌 젊은 커플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 영화 <여우들>(2011)을 만들었다.

장편 영화 <비바리움>은 <여우들>의 설정을 바탕으로 정치, 사회, 문화 문제들을 공상과학적인 상상력으로 덧붙인 일종의 '확장판'이다. 로칸 피네건 감독은 "딜레마에 직면했을 때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극단적 상황에 처한 인간의 본능을 보고 싶었다"라고 연출 의도를 설명한다.
 

영화 <비바리움>의 한 장면 ⓒ (주)루믹스미디어


'비바리움'은 관찰이나 연구를 목적으로 동물, 식물을 사육하는 공간을 뜻한다. 욘더 마을의 수많은 집은 모두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거리도 규격화된 모습이다. 흡사 공장의 생산 라인처럼 꾸며진 욘더 마을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중요시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풍자한다. 이 속에서 톰과 젬마는 노동, 육아(생산)를 하며 대량으로 만든 식료품, 생활용품을 배달(소비) 받는다.

욘더 마을은 저항과 변화를 거부한 채로 전통적인 가족상과 남녀 역할을 강요하는 사회 시스템이기도 하다. 욘더 마을에서 톰과 젬마는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낸다. 톰은 아침이면 마당에 나가 종일 구멍을 판다. 직장에서 일하는 남편처럼 말이다.

젬마는 요리, 빨래 같은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보살핀다. "욘더의 집들은 정말 이상적"이라는 마틴의 말은 곧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는 집안일을 하는 성 역할에 충실한 삶이 이상적이라는 주장이다. 시스템인 욘더 마을은 이것을 생명의 순환 같은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길 요구한다.

두 사람은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공포를 경험한다. 탈출구는 없다. 아기를 기르면 풀어준다고 했지만, '기른다'의 정의는 모호할 따름이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를수록 둘의 관계엔 균열이 점차 커진다. 그렇게 집은 스스로 판 무덤처럼 변한다. 영화는 자신의 목소리와 선택의 자유를 상실한 채로 누군가 정한 기준에 맞춰 욕망하며 순응하는 삶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갇혔다고 본 것이다.  
 

영화 <비바리움>의 한 장면 ⓒ (주)루믹스미디어


<비바리움>에서 이야기만큼이나 강력한 건 시각의 힘이다. <비바리움>의 미술 콘셉트는 단순함과 반복적임이다. 영화는 르네 마그리트의 <빛과 제국>과 같이 구름을 반복적으로 배치하고 마치그림을 그린 것처럼 욘더 마을의 하늘을 꾸몄다.

<비바리움>은 색상을 통해 인공적인 면을 강조했던 <트루먼 쇼>(1998)나 <플레전트빌>(1999)처럼 색을 활용한다. 화면의 주된 톤으로 사용된 녹색은 원래 생명력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하지만, 녹색은 욘더 마을에 위치한 집에 과장스럽게 칠해져 인공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관객의 불안감을 유발한다.

로칸 피네건 감독은 <비바리움>을 만들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붉은 사막>(1964), 제프 머피의 <조용한 지구>(1985), 데이비드 린치의 <로스트 하이웨이>(1997), 로이 앤더슨의 <2층에서 들려오는 노래>(2000)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테시가하라 히로시의 <모래의 여자>(1964)의 영감을 받은 듯한 장면도 나온다.
 

영화 <비바리움>의 한 장면 ⓒ (주)루믹스미디어


해외 평자들은 <비바리움>이 TV 시리즈 <환상특급> 5시즌 30번째 에피소드(미국에서 1964년 4월 24일 방송)인 '조용한 마을에서의 체류(Stopover In A Quiet Town)' 편에서 무의식적으로 영감을 받았을 것이라 언급한다. 사람, 동물, 음식, 나무 등 모든 것이 가짜인 마을에 갇힌 부부, 출구가 없는 공간 등 설정의 유사성이 깊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 가족, 생명의 순환 등 테마의 다양함은 <비바리움> 쪽이 훨씬 뛰어나다. 

한편으론 금융위기가 정점이었던 2010년을 배경으로 중산층의 불안 심리를 방공호를 만드는 남자로 그렸던 <테이크 쉘터>(2011)가 떠오른다. <테이크 쉘터>와 <비바리움>은 초현실적인 화법으로 묘사한 불안과 벙커(구멍)를 공유하고 있다.

현실적이면서 현실적으로 오늘날 부부의 삶을 묘사한 <비바리움>은 훌륭한 가족 영화이자 공포 영화다. 영화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은유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묻는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2019년 제72회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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