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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로 수감 중이던 억만장자의 죽음이 불러온 파장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

20.07.17 15:49최종업데이트20.10.2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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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 포스터. ⓒ 넷플릭스

 
지난해 2019년 8월 10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교정센터에 수감 중이던 억만장자 금융인 제프리 엡스타인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는 미성년자 인신매매 혐의로 수감 중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10여 년 전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학대하고 매춘을 목적으로 미성년자를 고용한 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한마디로 '성범죄자'. 

뉴욕시 검시관은 그의 죽음을 자살로 판명했으나 엡스타인의 변호사들은 다양한 정황에 비추어 그의 죽음을 타살이라 주장했다. 여기에 그가 죽기 하루 전 일명 '엡스타인 문서'로 불리는 법원 문서를 미 연방 항소법원에서 공개했는데, 엡스타인을 통해 미성년자 성매매를 중개받은 각계각층의 수많은 유명인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엡스타인 변호사들과 언론들이 그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명인사들 중 누군가가 엡스타인의 암살을 알선한 게 아닌가 하는. 드라마나 영화에만 존재할 것 같은 음모론이지만, 정황이 정황이니만큼 그냥 지나치기도 힘들다.

이 논란은 엡스타인이 죽고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와중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가 그의 빙퉁그러진 삶을 조명한다. 그는 어떻게 억만장자가 되었고 왜 괴물이 되었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 한장면. ⓒ 넷플릭스

 
다단계 미성년자 성매매

작품은,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위치한 제프리 엡스타인의 저택에서 벌어진 미성년자 성매매 피해자들의 생생한 육성으로 시작된다. 그들 중 상당수는 웨스트 팜비치라는 낙후된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단순히 마사지로 돈을 벌고자 했을 뿐인데 제프리 엡스타인과 그의 여자친구 길렌 맥스웰은 아이들에게 200달러를 지급하면서 성적으로 학대했다.

몇몇 아이들은 그 자리를 박차고 도망쳤지만 당시의 일은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도망치지 못한 몇 명은 돈을 많이 벌 수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권력자의 해코지가 무서워 몇 년간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도 피해자인 건 매한가지다.

그는 여자친구이자 오른팔이며 사실상의 총책임자 길렌 맥스웰과 함께 '다단계' 수법으로 미성년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학대했다. 그들로 하여금 친구나 심지어 가족을 데리고 오게 하고 이를 이행하면 현찰을 지급했던 것이다. 참고로, 길렌 맥스웰은 자신에게 부과된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며 명예훼손 소송까지 진행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게 2005년을 전후한 시기였는데, 엡스타인은 결국 2008년 36명의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한 혐의로 조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엡스타인 본인은 유죄를 인정하였으나, 이해하기 힘든 사법 거래로 단 2건의 성매매 혐의만 유죄로 인정받아 13개월 동안 수감됐다. 그는 호텔에서처럼 편안한 수감생활을 했거니와 풀려난 후 보호관찰 기간에는 마음껏 돌아다니기까지 했다.

제프리 엡스타인이 억만장자 된 경위

그의 성적 착취·학대의 양상은 그가 억만장자가 되는 양상과 비슷하다. 제프리 엡스타인은 뉴욕의 평범한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뉴욕의 명문 사립 단과대학을 중퇴하고 유명 사립 고등학교 달튼스쿨에서 물리와 수학을 가르쳤다. 그러던 와중에 월스트리트의 세계적인 투자은행 베어스턴스 회장 아들 과외를 맡으며 운명이 바뀌게 된다.

이를 인연으로 베어스턴스에 입사한 그는 VIP의 세금 업무를 도맡으며 승승장구했다. 입사 5년 만에 퇴사해 자신의 회사를 차린 그는 VVIP만을 대상으로 자산운용하는 방침을 고수했다. 그들의 돈을 아주 '잘' 관리해주며 자신 또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일례로 그는 '빅토리아 시크릿' 브랜드로 유명한 L브랜즈의 레즐리 웩스너 회장의 자금을 운용하면서 그의 돈을 빼돌리기도 했다. 천문학적인 액수였지만 레즐리 웩스너 회장은 그와 얽히고설킨 관계 때문에 대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엡스타인은 돈에 있어서도 사람을 통제하는 특출난 재능을 발휘한 것이다. 당하는 이로 하여금 빠져나갈 수 없게 그물을 쳐놓고는, 강제하진 않지만 당연한 듯 원하는 바를 얻는다. 그에겐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 아니, 마력(魔力)이 있었던 걸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 한장면. ⓒ 넷플릭스

제프리 엡스타인과 연루된 유명인

제프리 엡스타인과 연루된 유명인은 비단 레즐리 웩스너뿐만이 아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사람들, 도널드 트럼프 현 미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영국 엘리자베스 2세 둘째 아들 앤드루 왕자 등이 그들이다. 엡스타인이 살아생전 악명을 떨칠 때나, 죽고난 이후 지금도 꾸준히 언론지상에 오르내리는 이들이다.

트럼프는 지금은 확실히 엡스타인과의 관계에 선을 긋고 있지만 20여 년 전에 그와 오래 교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클린턴은 엡스타인의 전용기 최다 탑승자로 족히 수십 차례 여러 곳을 다녀왔다. 앤드루 왕자는 엡스타인의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핵심인물이다. 작품에도 나오는 것처럼 로버츠 주프레는 20여 년 전 미성년자일 때 앤드루 왕자와 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엡스타인이 긴급체포되는 과정은 '미투 운동'과 큰 연관이 있다. 지난 2018년 11월 <마이애미 헤럴드>는 피해 여성들을 인터뷰해 엡스타인의 범죄 혐의를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아울러 2008년 당시 이해할 수 없던 사법 거래의 정황을 토대로 당시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는 미투 운동이 시작된 후 1년여가 지난 시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미투'가 여론의 핵심 의제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에 뉴욕남부연방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했고 제프리 엡스타인을 긴급체포한 것이다.

잘 전달된 피해자들의 목소리

작품에 나오는 일련의 상황들은 대부분 이미 알려져 있다. 굳이 다큐멘터리까지 찾아보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여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답지 않게 아쉬움을 남긴다. 제프리 엡스타인 개인에 너무 천착하여, 그와 연계된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보다 '심층'적으로 파고들지 못한 느낌이다. 즉, 흥미 요소가 많지 않았다. 

반면 제프리 엡스타인 개인에 천착하다 보니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주가 될 수밖에 없었던 점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언론에서는 엡스타인과 그에 연루된 유명인들만 오르내렸지, 실질적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주목받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 작품에선 다양한 피해자들이 나와 당시 본인의 사정에 입각한 이야기를 전해 주어 '진실'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흥미를 버린 대신 진실을 마주하고자 한 작품에 박수를 보낸다. 개인적으로는 이 다큐멘터리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해자들이 아닌 피해자들을 위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이런 류의 범죄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조금의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제프리 엡스타인 피해자 미투 운동 성매매 미성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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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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