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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확 뜯어 고쳐야죠"... 스러진 박원순의 꿈

[取중眞담 / 박원순과 나] 서울시청 출입기자가 본 박 시장의 마지막 3년

등록 2020.07.10 20:02수정 2020.07.1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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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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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 이희훈

 
"서울시청에 새로 출입하게 된 <오마이뉴스> 기자라구요? 20년 가까이 일했다고요? 근데 왜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나지?"
 

지난 2017년 12월 9일 오후 집무실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대면했던 순간에 그가 한 말을 기자는 이렇게 기억한다. 그해 1월 박 시장이 대선 캠페인에 나섰을 때 나는 그를 오찬 간담회에서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시장님이 사람들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배석한 서울시 간부의 귀띔에 나는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네요"라고 답했다.

서울대 입학하자마자 학생 시위에 참여했다가 제적당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한 수재. 검사 일이 안 맞아서 변호사를 개업했지만 조영래를 롤모델로 삼았던 인권변호사.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 손 대는 단체마다 성공시킨 시민운동계의 대부.

내가 박 시장에 대해 아는 것은 이 정도였다. 박 시장도 나에 대해 아는 게 없었으니 피장파장. 그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상금 받을 때마다 시민사회단체에 기부한 박 시장 

박 시장과 관련해 가장 놀랐던 사실은 그가 7억 원의 빚을 진 채무자였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변호사 시절 맡은 사건에서 져본 적이 없고, 시민단체 시절에도 외부 강의하면 월 1000만 원은 벌었는데, 젊었을 때 탕진을 좀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탕진'이라고 표현했지만, 젊은 시절부터 제법 많은 돈을 기부했다.

1998년 '우 조교 성희롱사건' 변호인 자격으로 받은 '올해의 여성운동상' 상금을 한국여성단체연합에 기부했고, 2006년에 받은 막사이사이상 상금 5만 달러는 필리핀의 비영리단체에 전달했다.

서울시장이 되기 전 맡았던 포스코 사외이사 퇴직금 7000만 원은 아름다운재단에 보냈고, 서울시장이 된 후에도 '예테보리 지속가능발전상' 상금 5000만 원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에 후원금으로 쾌척했다.

박 시장이 벌인 일들의 뒤처리는 부인 강난희씨가 도맡았다. 지난해 4월 8일 일부 기자들과의 만찬에서 박 시장은 "내가 집안을 전혀 안 돌봐서 집사람이 손댔다가 실패한 사업들이 꽤 있다"라면서 "그렇다고 그걸 집사람 탓하면 안 되지"라고 부인에 대한 감정을 표현했다.

2018년 박 시장은 3번째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가 보여준 시장으로서의 모습은 전혀 정치인답지 않았다.

그해 2월 26일 오후 2시 서울시청 6층 간담회장. 서울시 15개 산하기관의 노동자이사 20명이 한 자리에 모인 회의장에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 주~"


박 시장이 세종문화회관 합창단 출신 조영화 이사가 참석한 것을 보고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노래 한 곡 할까요?"라고 말했다. 조 이사로부터 "시장님이 먼저 하신다면..."이라고 선창을 요구받자, 박 시장은 "내가 못할 게 없죠"라며 가곡 <봄이 오면>(김동환 시, 김동진 작곡)을 불러제꼈다.

1절을 함께 완창한 뒤 박 시장은 "다음부터 회의할 때는 노래 한 곡씩 하자"고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서울시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돌렸다.

- 기자 "시장님이 회의석상에서 갑자기 노래를 부르시네요."
- 정무수석 "(대수롭지 않은 듯) 또 그러셨나요?"


정치에서도 '박원순만의 길'을 열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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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로 옮겨지는 박원순 서울시장 시신 10일 0시 1분경 서울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경찰이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 이희훈

 
"이렇게 순진한 양반이 대선 출마를 하려 했단 말이야?"라는 생각을 깨게 만든 사건은 2018년 5월 16일, 그와의 두 번째 인터뷰였다.

기자는 지방선거 후보 인터뷰를 마치면서 "박 시장과 문재인 대통령 삶의 궤적이 닮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당시는 판문점 정상회담 성사로 문 대통령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어서 여느 여당 정치인이라면 이런 말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박 시장의 반응은 의외로 뜨뜻미지근했다.

"닮긴 닮았죠. 닮았으면서도 또 많이 다르죠. 문 대통령은 지역에서 활동한 게 강점이었고, 나는 중심(서울)에서 활동하면서도 변경에서 활동했으니..."
 

그 후 몇 달이 지나서 박 시장의 공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을 때 박 시장은 "대통령이 될 기회가 주어지면 세상을 확 뜯어 고쳐야죠"라고 말했다. 그의 핵심 참모가 "박 시장께선 문 대통령을 좋아하면서도 문 대통령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의 권력의지는 분명해 보였다. 다만, 꿈을 드러낼 시기가 언제인지가 문제였다.

박 시장은 이런 꿈을 꾸면서, 정치에서도 '박원순만의 길'을 열고 싶어했다. 3선에 도전한 2018년 선거에서 박 시장은 자신의 선거는 물론이고 구청장과 구의원, 시의원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끄는 '서울 야전사령관'을 자임했다. 그러나 막상 선거가 끝나자 "내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해 6월 27일 오후 5시40분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유세를 동행취재한 기자 3명을 만난 자리에서 박 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불편했던 선거였어요. 유세차 올라가서 유세한다고 듣는 사람이 실제로 많지가 않아요. 그냥 우리끼리 하는 거야. 전통적인 민주당 방식이지. 사람들 여럿이 다니면 길 막히고. 사실 욕먹는 방식이야.

조용히 찾아가서 물건 사주고 얘기 나눠야 하는데 '박 시장님이 오셨습니다' 소리치는 게 난 불편해. 나만의 선거였다면 사람들 사진 찍어주고 페이스북에 다 올렸겠지. 그런데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있으니. 어쨌든 날 위한 선거는 아니었어."


메르스·코로나19, 성공적인 방역을 이끌었지만...

3선에 성공한 뒤 박 시장의 시계는 오는 2022년 대선에 맞춰졌다. 서울시장이 될 때부터 대통령을 꿈꿨던 건 아니다. 박 시장은 "처음부터 대통령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서울시장만으로도 세상을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권한은 중앙정부가 다 가지고 있더라"면서 생각이 바뀐 까닭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박원순식 정치'에 대중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쿨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면모도 보였다.

"내가 (대선후보 경선 2위를 한) 안희정이나 이재명에게 배워야 할 게 있어요. 나는 정치를 모르는데, 그 분들은 어릴 때부터 그런 세계에 눈을 떴어요. 이재명 지사가 한 번은 내게 그러더군요. '성남시장 1기에는 업무 50 대 홍보 50 비율이었다면, 2기에는 업무 30 대 홍보 70으로 바꿨다'고. 이 지사는 자기를 알리는, 좋은 아이디어를 계속 내놓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어요. 그것이 내가 부족한 점이죠." (2019년 4월 8일 일부 기자들과의 만찬에서)

박 시장은 인권운동과 시민운동을 줄곧 해오면서 진보적 이미지가 강했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의외의 소신을 내놓기도 했다.

뒤늦게 영어 공부를 시작했는데도, 제러드 다이아먼드 등 세계 석학들과의 세미나를 영어로 할 정도로 실력을 늘린 박 시장은 "우리는 영어를 배워 런던 같은 도시의 장점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데, 그들은 우리를 모른다"면서 "서울이 영어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도시가 돼야 한다, 법을 바꿔 외국인도 공무원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21대 총선을 앞둔 2019년 12월 3일에는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토크쇼에서 여야 갈등으로 지지부진한 민생법안 통과 상황을 개탄하며, 총선 결과에 따라 독일식 연정을 시도해 보자는 제안을 내놨다. 여당의 압승으로 연정 가능성은 사그러들었지만, 불신과 반목이 강한 한국 정치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보려던 박 시장의 제안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2015년 메르스의 교훈을 잊지 않고 음압병상 등 서울의 공공병원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 2020년 코로나19 국면에서 성공적인 방역을 이끈 것도 박 시장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생전의 박 시장은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와 나의 마지막 인연은 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아버지 장사 지내기 전 날인 지난달 29일, 박 시장은 코로나19 여파로 썰렁했던 빈소를 찾아준, 많지 않은 조문객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아는 이가 많지 않지만, 박 시장은 매일 밤 11시까지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상주의 입장에서 그의 방문이 반가우면서도 "대통령 나간다는 사람이 30분 이상 상가에 죽치고 있는 게 맞냐"는 생각이 언뜻언뜻 드는 밤이었다.

박 시장은 그 자리에서도 "평범한 시민들의 생전 모습을 미리 동영상으로 촬영해놨다가 나중에 파일별로 모아서 편집하면 후손들에게 (조상의)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거대한 온라인 라이브러리가 된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랬던 박 시장이 9일 실종됐다가 몇 시간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시신이 확인되기 전에는 그가 미투 사건으로 피소됐다는 뉴스가 나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성폭력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받은 뒤, 박 시장의 입장을 물었을 때 그는 "피해자가 성희롱으로 성적 모독감을 느꼈다면 피해자의 관점에서 보는 게 요즘의 보편적 이론"이라면서 "(판사가) 비판받을 대목이 있지 않냐"고 말했다. (2018년 8월 17일 <오마이TV> 인터뷰).

박 시장을 좋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얘기지만, 지금의 논란도 그가 만든 역사의 한 조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보다 많은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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