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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도중 결혼하는 손정우, 이틀에 한번씩 반성문 쓰는 조주빈

[진단 / 어이없는 판결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법정 주변 어슬렁거리는 '가해자 매뉴얼'

등록 2020.07.09 14:36수정 2020.07.0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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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성범죄 가해자 측이 피해자에 일방적으로 거액을 입금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 변호인에게 항의한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 ⓒ 피해자 제공

 
지난 5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가해자의 2심 선고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다급한 목소리의 피해자는 "○○○(가해자)가 저한테 갑자기 돈을 보냈어요"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통장엔 400만 원이 찍혀 있었다.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은 가해자는 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다. 그 돈의 정체는 무엇일까. 피해자는 가해자의 변호인에게 "(가해자가) 제 의견은 묻지도 않고 돈을 입금했네요, 이게 무슨 경우입니까"라고 문자를 보냈다. "공탁의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피해자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가해자의 합의 요청을 거절해왔다.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거액의 돈이 들어왔으니, 피해자 입장에선 이 사실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 앞섰다. 가해자 측이 '피해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고 주장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분을 참지 못한 피해자는 결국 눈물을 쏟아냈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계좌번호를 알아내 돈을 되돌려 보냈고, 다음날 재판이 열린 법정을 찾았다. 가해자 측의 통보를 받은 재판부는 거액이 피해자에게 전달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피해자는 강하게 항의했고, 재판부는 선고 날짜를 미뤘다.

며칠 후 열린 선고 재판에서 가해자의 형량이 징역 6월로 깎였다. '400만 원' 때문에 감형이 이뤄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소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감형 사유에 들어가 있었다. 가해자가 "앞으로 피해자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사실확인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앞서 가해자는 사업 관계에 있던 피해자를 상대로 맞고소(횡령 혐의)를 진행한 바 있다. 가해자는 이를 합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사건을 '혐의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때문에 더 이상 맞고소할 사안도, 명분도 없었다. 가해자가 또다시 맞고소를 진행한다면 이는 명백한 2차 가해로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재판부는 '가해자의 의미 없는 다짐'을 이유로 형량을 대폭 깎아준 셈이다.

솜방망이의 이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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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우 미국 송환 불허 판결 규탄 '사법부도 공범이다' eNd(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회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앞에서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에 대한 미국 송환 불허 판결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 권우성


법원이 손정우씨를 미국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분노의 근원에는 한국 법원에서의 '솜방망이 처벌'이 있다. 법원이 애초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 사이트를 운영한 이'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렸다면 "손씨를 미국으로 송환하라"는 요구도 들끓지 않았을 것이다. (관련 기사: "미국 인도 거절" 다크웹 운영자 석방... "왜 가해자만 고려하나" 여성계 반발 http://omn.kr/1o7y3)
  
손씨는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대법원에 한 상고를 취하해 징역 1년 6개월로 형이 최종 확정됐다. 재판부는 "(해당 범죄가)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크다"라면서도, 여러 이유를 들어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 그의 1, 2심 판결문에 담긴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이다.
  
1심 : 피고인의 나이가 어리고, 피고인에게 별다른 범죄전력이 없다. 피고인이 일정 기간 구금돼 있었고 이 사건 범행을 시인하면서 반성하고 있다. (해당 사이트에는 손씨가 아닌) 회원들이 직접 업로드한 음란물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2심 : 피고인이 범죄 사실을 모두 자백하고, 어린 시절 정서적·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성장 과정에서도 충분한 보호와 양육을 받지 못했다. 달리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 이 사건 범행에 이용된 음란물 중에는 회원들이 업로드한 것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범죄수익 대부분이 몰수보전 또는 추징보전처분을 통해 환수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4월 17일 혼인신고서를 접수하여 부양할 가족이 생겼다.
 
손씨 재판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이, 처벌 전력, 자백 여부 등 비교적 객관적 요소는 그렇다 하더라도 다소 이해하기 힘든 감형 요소가 여러 재판에서 자주 목격된다. 앞서 소개한 디지털성폭력 사건에서처럼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합의도 없이 거액을 입금하고, 앞으로 맞고소를 하지 않겠다는 황당한 다짐을 내놓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것이 재판에서 먹힐 것으로 예상되거나 실제로 먹히기 때문이다.

여러 성범죄 피해자를 변호한 이은의 변호사는 "법원이 재량권을 만끽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성범죄 가해자의 형량을 정하는 과정에서 재판부의 주관적 판단이 지나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판결문을 보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내용을 자주 볼 수 있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아도 그저 자백했단 이유로 감형되는 경우도 많다"라며 "피해자와 범죄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재판부에 싹싹 비는 것을 우린 반성이라고 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가해자의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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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씨가 6일 오후 법원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으로 석방되어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2020.7.6 ⓒ 연합뉴스

   
성범죄 재판을 취재하다 보면 '가해자의 매뉴얼'이 있단 느낌을 자주 받는다. 우선 피해자와의 합의는 '절대 반지'다. 여기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합의가 피해자의 용서 혹은 가해자의 반성을 담보하지 않음에도 양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는 성범죄를 '저지르면 안 되는 범죄'가 아닌 '잘 합의하면 되는 범죄'라고 인식하게 만든다. 합의를 거부하는 피해자가 2차 피해에 노출된다는 점도 문제다. 가해자 측이 과도하게 접촉해 고통을 겪는 피해자가 적지 않다.

합의와 함께 반성문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것'이다. 가해자는 재판부에 '무한 반성문'을 써낸다. 인터넷이나 로펌을 통해 '성범죄 맞춤 반성문 양식'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변호인들은 가해자에게 헌혈, 장기기증, 자원봉사 등을 권하기도 한다. 여성단체 기부, 정신과 진료기록 제출도 단골 소재다.

지난 2월 방청한 디지털성범죄 2심 재판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가해자는 2심 재판 도중 또 범행을 저질러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다. 2심 재판부는 다시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이같이 말했다.

판사 : "재판부도 많이 고민했습니다. 정신과 치료 단단히 받도록 하세요. 피고인 이거 외에 다른 전력은 없죠? 이번에 뼈저리게 느껴 다시는 법원에 이런 일로 오지 않길 바랍니다."
가해자 : "네."


여러 성범죄 피해자의 재판을 지원한 김미리내 광주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은 "여성단체에 익명으로 거액이 들어와 확인해보면 가해자였던 경우가 있었다, (재판부에 제출하기 위해) 여성단체에서 교육받길 원하는 가해자들도 많다"라며 "그 분야 전문 변호사들이 '감형해드립니다', '무죄 만들어드립니다'라고 홍보하며 그렇게 조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해자 측이 그렇게 나오는 데에는 실제로 그런 요소가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며 "가해자 측도 문제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법원도 문제다"라고 비판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양형이 이런 식으로 널뛰기를 하면 피해자 입장에선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라며 "실제 전관예우가 아니더라도 법원의 쓸데없는 온정과 양형의 사유들이 전관예우에 대한 판타지를 불러오게 만든다"라고 지적했다. 또 "성범죄를 비롯해 아동학대, 직장 내 괴롭힘 등 최근 잇따라 불거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선 법원이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라며 "성범죄의 경우 전담 재판부가 존재하지만, 이 재판부의 자격요건이나 교육과정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법원 홈페이지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주범 조주빈씨의 재판 진행내용을 검색해봤다. 지난 4월 13일 공소장이 접수(기소)된 이후 진행된 여러 절차들이 기록돼 있었다.

그 중 '피고인 조주빈 반성문 제출'이 41건이나 됐다. 그는 5월 1·7·11·13·19·20·21·22·25·26·27·28·29일, 6월 1·2·3·4·5·8·9·10·11·12·15·16·17·18·19·22·23·24·25·26·29·30일, 7월 1·2·3·6·7·8일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어제(8일)도 냈다.

재판에 넘겨진 후 이틀에 한 번 꼴로 제출된 반성문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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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주범 조주빈씨 재판의 사건진행내용 중 일부. ⓒ 대법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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