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은 서서히 바스라지며 사라진다

마음 속 응어리도 그렇게 사라지기를

등록 2020.07.07 08:19수정 2020.07.07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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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지나치게 적은 출근길엔 지난해 떨어진 낙엽이 여전히 나뒹굴고 있다. 이제는 파편이라고 해야 할 낙엽들이 어딘가로 날려가지도 않고 사람들이 오간 자리에서 밀려 길가로 포진하고 있다. 아침마다 갈라진 홍해처럼 늘어선 낙엽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을 하다 문득, 낙엽은 바스러지며 서서히 사라진다는 걸 알았다.


애써 찾아다니며 밟아대지 않아도 오가는 길에 자연스레 마주치고, 그 발길의 마주침에 서서히 제 모습을 잃어가는 낙엽들. 그 낙엽들이 일 년이 지난 지금 파편이 되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덕분에 그동안 밟지 않으려 애썼던 마음도 제법 무뎌져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그 위를 지나다니게 됐다.

 

거리를 가득메운 낙엽 ⓒ 남희한

  

어느새 홍해처럼 갈라 선 낙엽들 ⓒ 남희한

  

결국엔 바스라져 사라질 응어리들 ⓒ 남희한

 
늦은 아침 뜀박질에 으깨진 낙엽들과 바람 같이 달리던 나로 인해 흩날리며 쓸렸던 낙엽들이 아마도 이 파편 중에 있을 테다. 여러 사람의 수많은 발걸음에 결국 대부분이 가루가 되었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낙엽들을 보며 사람들이 가진 마음의 응어리도 서서히 가루가 되는 낙엽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해 전의 일이 아직도 속상할 때가 있다. 나의 잘못이든 타인의 잘못이든 내 마음 깊숙이 남아 가끔 나를 끌어내리는 일들. 그 일들이 떠오를 때면 그제야 마음속에 쌓여 있던 무거운 응어리를 실감하게 된다.

억울하게 오해받은 일과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준 일. 그럼에도 당당했던 그 사람과 뻔뻔하고 편협했던 나.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임에도 당시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여전히 아프고 부끄럽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옛 기억이 많이도 껄끄럽다. 즐겁게 웃고 떠든 즐거운 날의 잠자리에서 불현듯 떠오른 그날의 일들은 피곤한 나를 잠 못 들게 했고, 모두가 즐거워하는 순간에도 옛 기억이 떠오를 때면 마음 편히 웃지 못했다. 시도 없고 때도 없이 밟히는 기억에 참 많은 시간을 할애한 듯하다.


오늘도 출근길 바스라지는 낙엽을 보며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음을 생각한다. 떨어져 나왔든, 내팽개침을 당했든, 낙엽과 응어리는 그 모처에서 끈질기게 자리를 지킨다. 조각이 나고 파편이 되어도 모든 게 그 자리에 남아 서서히 사라진다. 그게 낙엽이든 마음이든 그저 바스라져 조금씩 조금씩 알아보지 못하게 희미해져 갈 뿐이다.

시절이 바뀐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렇게 남아 있다. 마치 미련 같다. 몇 년 전 힘들었던 기억도 사라지지 않고 그렇게 곁에 남아 조금씩 바스라지겠지. 떠올릴 때마다 떠오를 때마다 조금씩 옅어지면서...

오늘도 발길이 드문 길가의 낙엽 부스러기를 밟으며, 쉽지 않은 마음의 응어리들도 언젠가 이 낙엽들처럼 조금씩 바스라져 사라질 거라 믿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다.
#그림에세이 #심리 #응어리 #마음가짐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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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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