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도 체력처럼 매일 적립해야 한다

나를 벼리는 시간을 가지며 알게된 것들

등록 2020.07.02 17:04수정 2020.07.0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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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필사 ⓒ 김준정

"선생님, 플래너 쓰세요?"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건우가 물었다.

"안 쓰는데?"
"공부 좀 한다는 친구가 있는데, 걔는 계획한 것을 끝낼 때까지 잠을 안 잔데요."


건우는 이번 시험에서 수학점수로 반 1등이 되었다. 과학집중반이 있어서 등급상으론 3등급이긴 하지만 전보다 두 등급이 오른 성적이었다. '나도 하면 된다'는 생각에 제대로 해보고 싶은데, 실천이 안 돼서 고민이 많은 모양이었다.

내 마음을 이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만족스러운 글이 아니어도 글 쓰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에는 네 시간을 앉아 있어도 글 한 편 완성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는데 지금은 두 시간이면 거뜬히 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질이 문제겠지만) 예열하는 시간이 줄어서 덜 고통스럽다는 게 큰 소득이다. 집중을 못해서 책을 집어 들고 스마트폰을 켜고 손톱 깎게 되는 일은 (하긴 하지만) 줄었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그동안 쓴 글을 추려서 퇴고를 하려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그것만 빼고 다 하고 있다. 청소부터 하고 할까? 아 참, 이 책을 읽어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퇴고에 관한 강의를 들어볼까? 하다가 하루가 가버리는 날이 이어지자 의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어지고, 퇴고를 생각하면 묵직한 게 가슴 한가운데를 누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퇴고 대신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계획대로 한다는 게 힘들지 않아?"

질문을 한 게 아니라 나한테 하는 말이었다.

"맞아요. 친구들은 다 잘하고 있는데 나만 못하는 것 같고."

"의욕도 체력 같은 것 같아.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고, 매일 조금씩 적립해야 하는."


나이가 들면서 나도 모르는 새 체력이 떨어지듯, 의욕이나 열정도 새어나가는 것 같았다.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운동을 통해 체력을 키우는 것처럼.

그러고 보니 감사노트를 한 달째 쓰지 않고 있었다. 필사도 전처럼 열심히 하지 않고 말이다. 매일 다섯 가지 감사한 일을 쓰는 일과 <노인과 바다> 필사하는 일, 두 가지부터 다시 시작했다. 감사노트는 3분이면 쓰고(깨끗한 화장실, 시원한 물처럼 단어만 쓴다), 필사는 세 페이지 정도 쓰는데 십 분이면 충분하다. 스스로를 '작지만 꾸준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았다.

나한테는 등산이 그런 노력 중에 하나다. 주중 3회는 집 근처 산을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가볍게 걷고, 주말에는 6시간 정도 강도 높은 등산을 즐긴다. 흙 냄새, 바람냄새를 맡으며 햇볕을 받으며 걸으면 그 자체로도 흐뭇하지만, 어제와 같지 않은 자연에서 감동을 받는다. 늘 변하면서도 성실한 자연을 닮고 싶다고 생각한다.

콸콸 콸콸 세찬 물줄기를 뿜어내는 폭포와 바위틈을 비집고 뿌리를 내린 나무를 보면 경외심이 든다. 그 지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이 나에게도 전해지길 바라기도 한다.

자연과 가까이 하면서 다시 일깨우고 싶다. 사는 동안 언제까지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일에 공을 들이며 살기를 바란다. 잘 안 되는 날이 있어도 내일 다시 해가 뜨고 다시 봄이 오는 것처럼 다음날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은 긍정의 힘은 그저 잘 될 거야, 하는 낙관과는 다른 말이라고 한다. 현재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긍정이고, 내면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건 긍정의 힘도 훈련을 통해서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방법으로 김주환 교수는 <회복탄력성>에서 감사노트 쓰기, 운동하기, 강점활동하기를 제안했다.

'나는 왜 꽃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한 포기 풀로 태어났느냐'고, 자연은 원망하지 않는다. 당당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잡초가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잡초도 사람의 기준일 뿐 제 나름의 질서와 세계를 가지고 있을 거다.

내가 불행했던 이유는 남과 비교하면서 내 것을 긍정하지 못해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외부적으로 아무리 성공을 한다 한들 결국 나는 행복하지 못할 것 같았다. 3년전 지리산에서 어렴풋하게 느낀 이후부터 저금통에 저금한다는 생각으로 매주 산을 가고 있다.

새치가 늘어 반백이 되고 얼굴에 주름으로 가득한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포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더 이상 젊지 않지만 그만의 아름다움이 있고, 그건 온전히 인정하는 자가 누릴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약간 벅차다고 느낄 정도의 운동이 주는 것이 있다. 정기적으로 등산을 하면서 체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20대부터 주 3회 1시간 이상의 운동을 꾸준히 해온 나지만, 등산은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었다. 감기 같은 잔병치레도 없어지고, 몸을 무리하게 써도 다음 날이면 회복됐다. 그런 경험은 나이와 체력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실제로 내가 가는 산악회에는 60대 이상 회원들이 있는데 40대인 나보다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이를 먹는 걸 두려워하고 싶지 않다. 늙어가는 게 아니라 나를 벼리는 시간일 뿐이다. 더불어 오늘 못한 퇴고는 내일은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의욕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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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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